시련, 유혹, 그리고 믿음의 시험
2023년 8월호에는 시련, 유혹, 그리고 믿음의 시험을 주제로 한 기사가 게재된다. 시련과 죄에 대한 유혹을 통한 믿음의 시험은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데, 직접적인 가르침 혹은 큰 시험의 순간을 견뎌낸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의 형태로 주어진다. 여러 세대의 기독교인들이 이를 인식하고, 교회 역사에서 시련과 유혹, 믿음의 시험에 대한 많은 성찰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고, 신앙이 시험에 들었을 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번 호에서는 시련과 유혹, 믿음의 시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독자들이 다가올 어려움에 대비하도록 돕고, 현재 힘든 시기를 겪고 있고 많은 도전들을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고자 한다.
2024년 05월 14일
"죽을 것 같이 힘든 고통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격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근심, 비참함, 고난 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기 위해 이 말을 붙든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성경의 가르침을 반영하기도 한다(롬 5:3~5; 약 1:2~4, 12; 벧전 4:12~19). 실제로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고 확고하게 만든다. 고난은 우리를 성숙시키고 우리의 성장을 돕는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성경적 이해의 한 조각일 뿐이다.
2024년 05월 14일
때때로 죄는 우리에게 시련과 유혹, 믿음의 시험을 불러일으킨다(시 106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8.4절은 우리의 죄가 구원의 확신을 약화시킬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024년 05월 14일
창세기 22장의 이야기는 유대 전통에서 아케다(“결박”)로 알려져 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로 향한 여정을 다룬 이 사건의 힘과 신랄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극적인 아이러니를 통해 독자들은 아브라함이 몰랐던 사실, 즉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었다(1절)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
2024년 05월 14일
욥기는 다른 문제들 중에서도 “의인은 왜 고난을 당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다루고 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고통의 문제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고통의 문제 이상의 문제이다. 그것은 고통의 양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인은 왜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겪는가?
2024년 05월 22일
광야로 들어서는 이스라엘 백성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오랜 이집트의 압제와 수개월의 재앙 끝에 그들 앞에서 홍해가 기적처럼 갈라지고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넜으니 말이다(출 14장). 게다가 그들을 추격하던 이집트 군대와 전차들이 물에 휩쓸려 침몰되는 것을 지켜보았으니, 이제 그들의 고난은 확실히 끝난 듯했을 것이다. 이제 몇 주만 더 걸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고, 주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속히 물리쳐 주셔서 주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2024년 05월 22일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당신의 백성이 가혹한 시련과 유혹 받는 것을 허락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시는 구체적인 이유는 그분만이 아시겠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시련과 유혹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준비시키신다는 사실이다. 다윗의 삶은 이러한 진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2024년 05월 22일
역사 속에는 위대한 도시들로 가득 차 있다. 아브라함의 출생지이기도 한 우르는 인구가 십만 명에 달하는 최초의 도시였다고 추정된다. 바벨론은 웅장한 공중정원을 자랑했으며, 로마는 그 위대함과 영향력에 있어 비길 곳이 없었다. 오늘날에는 런던, 로스앤젤레스, 도쿄, 뉴욕과 같은 큰 도시들이 있다. 도시는 오랫동안 문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니느웨 역시 역사상 그런 도시들 중 하나였다.
2024년 05월 30일
오늘날 교회의 큰 실패 중 하나는 아마도 타협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일 것이다. “퀴어” 정체성을 포용하고, “게이” 목회자에게 안수하고, 동성 커플(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을 축복해야 하는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기독교 형제자매들은 현대 서구의 목회자와 교회, 교단이 어떻게 이교도 문화에 순응하고 성적 및 성 정체성의 우상에 무릎을 꿇고 있는지에 대해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2024년 05월 30일
나는 25년 동안 목사로 사역했다. 부목사로 8년을 사역한 후, 루이빌 남부에 있는 한 지역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는데, 당시 그 교회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곳에서 17년 동안 사역하면서 첫 5년은 정말 힘들었다. 그 5년간 세 번 해고당할 뻔했고, 폭력적인 위협도 있었다. 나를 고용했던 교회의 리더들은 그 지역에서 내 이름을 비방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그 5년의 끝무렵에 교회의 재정은 바닥났고, 나는 스트레스로 인해 34세의 나이에 '노년'에나 생길 법한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2024년 05월 30일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영광스러운 진리들이 있다. 그중에는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라는 것과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되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봤을 때, 예수님은 항상 죄가 없으셨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 있었던 유혹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분의 유혹을 최소화해서는 안 되지만, 모든 면에서 우리의 유혹과 똑같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2024년 06월 01일
우리 큰아들이 태어난 다음 날 아침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집에서 무사히 출산을 마친 후, 조산사는 우리가 쉴 수 있도록 짐을 싸서 귀가했다. 그날 밤 우리 모두 평온한 밤을 보냈고, 남편은 아빠 노릇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일찍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주려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지난 9개월 동안 첫 출산 계획을 세우면서도 물티슈 한 통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024년 06월 04일
혼란과 어려움은 인생의 일부이다. 우리는 각자 성격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불안을 경험하는 방식도 다르다. 신변의 안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물질의 공급과 관련된 문제는 누구나 걱정하는 문제들이다. 어느 정도의 걱정은 자연스럽고 좋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생존 본능과 이성적 능력을 주셨다.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개를 만나면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생겨 급히 안전한 곳으로 피한다.
2024년 06월 05일
열왕기하 2장은 위대한 두 선지자의 중대한 과도기를 보여준다. 엘리야가 떠나고 엘리사가 사역을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1장의 아하시야 왕 사건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엘리야는 오실 구세주의 그림자이며, 엘리사는 크신 성령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2024년 06월 10일
유다가 쓴 짧은 편지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이는 사람들이 몰래 교회에 들어와 거짓 교리와 거짓 생활을 부추기려고 할 때마다 필요하다. 유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2024년 06월 10일
2024년 06월 10일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헌신을 방해하는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인가? 내가 어렸을 때 누군가 가끔은 이런 질문을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준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바로 우상 숭배이다.
2024년 06월 10일
존 칼빈은 에베소서 4장 15~16절을 이렇게 주석했다.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를 확고히 붙잡아 사탄의 모든 계략과 공격이 우리를 가야 할 길에서 끌어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충만하고 완전한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죽기까지 전진해야 한다.
2024년 06월 23일
몇 년 전, 목격하는 것 만큼이나 처음 듣는 것이 낮설었던 현상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 렌즈가 없는 안경을 쓰고 다니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발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과거보다 안경을 쓰는 것이 문화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나도 안경을 착용한다. 안경이 나를 더 똑똑해 보이게 해주는 것 같아서이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