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가 받은 시험
2024년 05월 30일
고난, 유혹, 시험의 시간을 지날 때
2024년 06월 01일예수님의 시련, 유혹, 시험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시련, 유혹, 그리고 믿음의 시험”의 열 번째 글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영광스러운 진리들이 있다. 그중에는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라는 것과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되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봤을 때, 예수님은 항상 죄가 없으셨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 있었던 유혹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분의 유혹을 최소화해서는 안 되지만, 모든 면에서 우리의 유혹과 똑같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첫째, 예수님은 실제로 유혹을 견뎌내셨다. 히브리서뿐만 아니라 복음서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마 4:1-2; 막 1:13; 눅 4:2). “유혹하다”라는 헬라어는 “시험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일반적으로 죄와 관련된 내용일 때 가장 좋은 번역은 “유혹하다”이다. 또한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유혹에 고난이 수반되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히 2:18).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사역 초기의 유혹 외에도 사역 말기에 자신을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유혹을 세 번이나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마 27:39-44). 그러나 예수님은 사명을 위해 이기심 없는 순종 가운데 끝까지 인내하셨다.
예수님은 사명을 위해 이기심 없는 순종 가운데 끝까지 인내하셨다.
둘째, 예수님께서 고난을 통해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으셔야 했다(히 2:10). 완전하게 될 필요성은, 하나님의 아들의 도덕적 완전성이 부족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하신 아들이 인간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에서 완전하게 될 필요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아들이 구원하러 오신 사람들과 연대하여 참된 인간으로서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11절). 영원한 아들은 참 사람이 되심으로써 죽음의 권세를 가진 마귀를 정복하여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고난과 죽음까지 당하셨으며(14-17절) 영광스러운 부활로 죽음을 이기심으로써 우리의 선구자가 되셨다(10절). 예수님은 태초에 아담에게 주어진 인간의 존엄성과 목표를 실현하셨고(5-9절), 이를 순종하고, 고난을 받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실현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시험을 받으실 때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시험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다(18절).
동시에 고난과 죽음을 통해 정복하신 예수님에 대한 이 영광스러운 진리는 고난을 받으신 분이 하나님의 신적인 아들이시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이 합당하다고 말한다(10절). 예수님은 아들이시지만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5:8). 예수님 자신은 죄가 없으셨지만, 인간의 본성에 따라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시며 속죄해야 했다. 이 형벌을 감당하려면 고난이 필요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아들에게 고난은 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분의 완전하심에는 그분의 부활과 영광이 포함되며, 불멸하는 생명의 능력에 따라 신실하고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영원히 거하시기 때문이다(5:9-10; 7:16-17, 20-28).
셋째, 유혹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는, 우리의 구원을 확보하는 방식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인내하는 본보기가 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자 우리의 모델이시다(벧전 2:21-24). 그분은 십자가 저편에 있는 부활의 기쁨을 바라보시며 십자가의 수치를 견뎌내셨다(히 12:2). 이런 사실은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릴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1절).
넷째, 예수님의 유혹과 우리의 유혹 사이의 차이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아담 이후 태어난 모든 사람은 선천적으로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죄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죄의 본성이 없으셨다. 또한 예수님의 인간 본성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성육신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신적 인격이 행동하는 주체이다. 이러한 신학적 진리는 유혹과 고통의 문제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강한 연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남아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외부적으로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유혹에 직면하는 타락한 존재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외부적으로는 실제적인 유혹에 직면하셨지만, 내적으로는 죄에 이끌리지 않으셨다. 그분의 인간적인 의지는 항상 신적인 뜻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예수님의 제사장직에 관한 히브리서의 가르침은 좋은 소식으로 가득하다.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셨을 뿐만 아니라 고통과 유혹에 직면하셨고 이를 극복하셨다. 참된 인간 본성을 지닌 하나님의 신적 아들로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순종을 하셨고, 우리가 얻을 수 없는 승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이 예수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시다(7:26). 그분은 우리 영혼의 확실한 닻이 되어 내적 성소로 승천하셨고, 그곳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영원히 제사장 역할을 하신다(6:1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