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의 시험
2024년 05월 22일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시험
2024년 05월 30일요나가 받은 시험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시련, 유혹, 그리고 믿음의 시험”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역사 속에는 위대한 도시들로 가득 차 있다. 아브라함의 출생지이기도 한 우르는 인구가 십만 명에 달하는 최초의 도시였다고 추정된다. 바벨론은 웅장한 공중정원을 자랑했으며, 로마는 그 위대함과 영향력에 있어 비길 곳이 없었다. 오늘날에는 런던, 로스앤젤레스, 도쿄, 뉴욕과 같은 큰 도시들이 있다. 도시는 오랫동안 문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니느웨 역시 역사상 그런 도시들 중 하나였다.
니느웨는 큰 도시였다(욘 1:2). 앗수르의 수도였으며 크고 유명한 도시였다(3:3). 니느웨의 인구는 최대 13만 명에 달했을 것이라고 본다. 니느웨는 강력했고 악이 가득했던, 말하자면 그 당시의 뉴욕과도 같았다. 앗수르의 수도로서 앗수르의 모든 것을 대표했으며, 거기에는 무자비함도 포함되었다.
앗수르가 오늘날 존재했다면 테러 국가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웃 나라에는 재앙이었다. 앗수르인은 잔인하고 야만적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다. 적들을 극도로 잔인하게 몰살하고 기둥으로 찔러 전시해 놓았다. 어느 누구도 앗수르에게 호의적일 수 없었다. 이스라엘 민족도 그중 하나였고 요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와 믿음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했을 때, 요나가 주저한 것은 이해가 될만하다. 그러나 요나의 불순종은 정의감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반항심에서 온 것이었다. 요나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원수이니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의 원수들을 향한 것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 자체가 요나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의 원수들을 향한 것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 자체가 요나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시험 중 하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그분의 사랑받는 자들은 아니었다. 우리는 한때 하나님의 원수였고(롬 5:10), 죄에 종살이하며 불순종하여 그분의 진노 아래 있었다(엡 2:1~3).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종이요, 그릇인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자신이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결코 잊지 않았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 칭함 받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전 15:9). 그는 자신이 한때 패역하고 불순종하며 신성모독의 죄를 저질렀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바울은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도 깨달았다(딤전 1:13~16).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와 사랑으로 바울을 변화시키셨고, 이것은 다른 사람을 향한 바울의 사랑의 원동력이 되었다(고전 15:10). 요나는 이것을 잊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늘 직면하는 시험이다.
요나는 자비가 풍성하시며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도 알았다(욘 4:2). 요나는 이를 경험했고, 자신의 삶으로 이를 증명했다. 그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2:8~9). 요나가 니느웨에 갈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것이, 은혜와 사랑을 베풀게 하지는 못했다. 요나는 자신이 니느웨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나가 받은 시험은 요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나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요나는 자신이 니느웨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아무도 그분의 은혜를 얻을 자격이 없다. 요나는 이것을 잊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자주 이것을 잊어버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랑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불경건한 자들, 거룩하지 않은 자들, 가치가 없는 자들, 사랑스럽지 않은 자들을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을 사랑하셨다. 그분은 원수를 사랑하셨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예수님은 당신과 나를 사랑하셨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며 괴롭히는 자들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다(마 5:43~44). 니느웨인들은 멀리 있는 적이 아니다. 우리에게 니느웨인들은, 어려운 이웃들, 무감각하고 배려심 없는 시댁, 무례하고 반항적인 자녀들, 인종차별하는 동급생이나 직장동료들, 정치적으로 나와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이다.
요나는 원수를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기쁜 소식은 요나와 예수님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의 복음은, 예수님이 요나보다 더 위대하시다는 것이다(마 12:41). 예수님은 사랑받을 수 없는 이들을 사랑하신다(롬 5:6~1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원수였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고, 하나님과 평안을 누리게 하셨으며, 그 평안을 세상에 전하라는 사랑의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고후 5:19). 요나와 요나가 받은 시험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원수들이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때에도 그들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한때 우리도 그분의 원수였다는 것을 생각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