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는 장애를 가진 성도를 어떻게 돌볼 수 있는가?
2026년 08월 04일
인간 본성은 근본적으로 선한가, 전적으로 악한가?
2026년 08월 04일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고 거룩함을 추구하는 법
퍼거슨(Ferguson) 박사는 『온전한 그리스도』(The Whole Christ, 디모데 역간)에서 율법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의를 제시한다. “율법주의란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의 인격과 분리하는 것이다……그분의 율법을 사랑 많고 너그러우신 그분의 인격에서 떼어 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과 그 요구를, 율법의 주인이신 사랑 많고 너그러우신 하나님에게서 떼어 내면, 거룩함을 추구하는 우리의 노력은 도움이 되지 않는 율법주의적 방향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함을 추구하되, 언제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왜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부르시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고린도후서 1장 3,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놀랍게 묘사한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자비의 아버지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우리의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하셨다. 아버지는 크신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 빠져든 거룩하지 못함에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자기 앞에서 의롭게 하시려고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롬 5:1,2 참고).
그러나 자비로운 우리 아버지는 단지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그분 앞에서 바르게 세우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신이 거룩하신 것같이 우리도 거룩하기를 원하신다(벧전 1:15,16 참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새롭게 빚어 가신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6문의 답변은 이러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잘 보여 준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함이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목적이며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그 안에서 위로를 얻는 가운데 거룩함을 추구하도록 부름받았다. 우리는 그 일에 참여하고 협력해야 한다. 다만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사역이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고, 그 역사의 주체이신 삼위 하나님께 달려 있다. 성령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24절에서 이 진리를 확증하신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를 원하신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친히 역사하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화와 새롭게 됨에 그토록 깊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살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의가 없이는 하나님 나라의 평강과 희락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아신다. 인간의 타락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되돌아보라. 우리는 의에서 불의로 돌아섰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누리던 평화를 깨뜨리고,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서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그분에게서 멀어진 비참함과 맞바꾸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의와 평강과 희락 가운데서 그분과 함께 살도록 지으셨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역사를 시작하셨다(창 3:15 참고).
자비로운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시편 1편에서 말하는 사람처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기를 원하신다. 왜 그러할까? 다음 말씀에 그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복되게 하는 율법’임을 깨달을 때, 그 율법을 즐거워하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룩함을 추구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지금부터 영원토록 뿌리를 잘 내리고 열매를 맺으며 시들지 않고 형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뜻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0문의 답변에 잘 나타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마음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거룩함을 추구할 때, 그리스도를 향한 감사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강력한 해독제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속과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새롭게 하심에 감사하여 거룩함을 추구한다. 또한 우리는 기쁨으로 거룩함을 추구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처음 지음을 받고 다시 새롭게 지음을 받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0).
우리가 거룩함을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율법주의에서 지키시고, 그분의 은혜와 성령으로 인도하시기를 바란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