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2021년 11월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요를 제시한다. 예수님 설교의 중심 주제인 하나님 나라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증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은 혼란이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 하나님 나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어 왔다. 일부 신자들은 십자군 전쟁의 폭력이나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세속적 권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자 했다. 어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현재의 현실로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 어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전적으로 미래의 것으로 보았다. 독자들이 이러한 혼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번 호에서는 하나님이 선택한 왕을 통해 특정한 장소에서 그의 소원하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한다. 만물에 대한 창조주의 주권적 통치와 구별되어야 하는 이 왕국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도래했으며, 그분은 지상 사역을 통해 그 왕국을 시작하셨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는 아직 온전히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2024년 01월 03일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는 간단히 말해서,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최고 주권적 통치와 다스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종합하여, 이에 대한 답을 포괄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하나님 나라가 언제 어떻게 임하는지에 대해서도 성경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2024년 01월 05일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성경의 모든 부분이 다른 모든 부분에 합치되거나 동의한다고 가르쳤다. 하나의 참믿음이 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난다. 일관성 있는 신앙 체계, 하나의 이야기,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이 따라야 할 하나의 삶의 여정이 그것이다.
2024년 01월 07일
고대 세계에서 왕은 공공 건설 운동을 감독하고, 전투에서는 군대를 이끌고, 사법 제도를 관리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모든 노력 속에서 지혜를 전파했다. 왕은 왕국의 정체성을 구현하고 국민을 완벽하게 대표하는 존재였으며, 종종 국가의 아버지라고 묘사되어 왕과 국민의 관계는 단순히 정치나 정부에 관련된 것보다 더 깊은 관계임을 암시했다.
2024년 01월 11일
왕의 권위는 그 나라의 국경으로 제한된다. 이 이치를 그리스도의 왕국에 적용하면 믿음과 보이는 것 사이에 긴장이 생긴다. 성경은 땅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시 24:1).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에 적대적이며, 하나님과 그분의 주권에서 벗어나려고 한다(시 2:3).
2024년 01월 16일
교부 제롬은 “선지자 중 누구도 다니엘만큼 그리스도에 관해 분명하게 말한 사람은 없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현대 복음주의자들의 정서는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책의 후반부에 제시된 종말론적 비전은 모호해 보이며, 예언을 현재 사건에 잘못 적용하여 명확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4년 01월 16일
예수님은 마가복음 4장에서 세가지 씨앗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 하신다. 1~9절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 뿌려진 씨, 씨가 떨어지는 다양한 토양에 대해 말씀하시고, 13~20절에서는 이 비유에 대해 설명하신다. 26~29절에서는 씨에 관한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자라나는 씨’의 비유로 알려져 있다.
2024년 01월 19일
어떤 것이 정말, 진심으로, 심지어 궁극적으로 좋다는 것을 알면 보통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맛보지 못하게 막거나 흥을 깨는 냉소적인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형제자매가 아끼는 장난감을 부수고 즐거움을 망치려는 아이처럼 폭력이 수반될 수도 있다.
2024년 01월 23일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부터 “하나님의 나라 복음”(눅 4:43)을 전파하셨다. 누가복음에만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서른한 번이나 언급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무엇인가?
2024년 01월 23일
십자군 전쟁, 박해, 반란, 교육, 사회 정의에 대한 세속적 개념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오용되어 온 수단들이다. 잘못된 행동이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통치가 땅을 다스리기에 앞서 영혼을 다스리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2024년 01월 26일
2021년 여름, 많은 사람이 올림픽을 보기 위해 도쿄로 향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대회는 국가적 자부심을 위한 시간일 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켜지기 전 수년 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수년 동안 기록된 것이었다.
2024년 01월 30일
바울의 모든 서신서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은 14번만 사용된다. 대부분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에 경험될 일로 묘사했지만, 로마서 14장 17절에서는 현재 일어나는 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2024년 02월 01일
2024년 02월 05일
시편 107편은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를 널리 선포하고 있다. 우리는 깊은 재앙 가운데서 신실하신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은 그의 백성이다. 이 시편에서는 재난의 깊이가 간략하게만 표현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빠져든 깊은 수렁을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네 가지 생생한 그림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2024년 02월 06일
하나님의 성품을 알면 어떤 사람도 그분을 의심할 수 없다(신 32:3~4). 그러나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하나님의 의도를 의심한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과 동기를 계속 의심해 왔다. 우리의 불신은 하나님을 악하거나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고 의심하게 한다.
2024년 02월 09일
시편 131편에서 다윗 왕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1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왕으로서는 이상한 고백처럼 보일 수 있다. 모든 사람 중에서 큰일을 알고, 분석하고, 나라를 위해 지혜로운 행동 방침을 세워야 하는 것은 왕의 소명이 아닌가?
2024년 02월 11일
알래스카 앵커리지 남쪽에 있는 수워드 고속도로에서 친구가 길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케나이반도에 위치한 외딴 어촌 마을인 호프로 가는 길이었다. 마침 주유소를 발견했고 거기서 일하던 한 노인에게 “호프(소망)로 가는 길은 어디죠?”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교회에 가서 기도해 보구려.”라고 마치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가 능숙하게 대사를 내뱉듯이 말했다.
2024년 02월 13일
교회를 고려할 때 도움이 되는 신학적 구분은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하게 하나의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와 우리의 교회라는 두 가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진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교회는 그분의 택하신 자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