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영토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성경의 주요 주제
2024년 01월 10일
하나님 나라 소유하기
2024년 01월 16일
성경의 주요 주제
2024년 01월 10일
하나님 나라 소유하기
2024년 01월 16일

하나님 나라의 영토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하나님 나라”의 네 번째 글입니다.

왕의 권위는 그 나라의 국경으로 제한된다. 이 이치를 그리스도의 왕국에 적용하면 믿음과 보이는 것 사이에 긴장이 생긴다. 성경은 땅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시 24:1).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에 적대적이며, 하나님과 그분의 주권에서 벗어나려고 한다(시 2:3). 이러한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름 부은 왕을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우겠다고 선포하셨다(6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굴복시키시고 다스리시며 보호하시고, 우리 모두의 원수를 제지하고 정복하신다는 그리스도의 중재적 통치에 대한 믿음(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6)은 하나님 나라 시민들에게 위로를 준다. 그러나 성경이 고대하는 그리스도의 왕권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권적인 머리가 되시고, 교회를 영적으로 통치하시는 것 이상이다(엡 1:22; 골 1:18).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지리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분의 통치는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땅 끝까지’ 이른다(시 72:8)고 말한다. 스가랴 14장 9절은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실 그날을 예언하고 있다. 다니엘은 세상의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서게 될 한 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다(단 2:44). 이 지리적인 특성은 영원에 이를 때 성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은 옛 창조 세계를, 완전한 의로 채워진 새 에덴 같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다(사 65:17; 벧후 3:13; 계시록 21:1). 이 미래 왕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왕이 시민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점일 것이다(슥 2:5, 10~11). 오늘날 교회는 적대적인 상황 속에 있지만, 이 세상의 모든 나라는 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승리할 것이라는 복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교회는 갈등을 겪고 있지만, 교회는 승리할 것이며 왕이 함께하시는 평화와 의의 참된 영토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 왕국 신학에 대한 교훈은 구약 전체에 걸쳐 약속의 땅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 구약성경 신학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이 땅을 정복하고, 상속받고, 추방당하고, 되찾는 것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에서 이 땅에 대한 약속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하나님은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지리적으로 표시한 땅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창 12:7; 15:18~17:8).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이 땅을 영원히 소유할 것이라고 보장하셨지만, 아브라함이 소유한 것은 고작 동굴 하나였기에 단지 상징적으로 그 땅을 소유한 것이었다(창 13:17; 23). 아브라함은 약속된 땅이 이 지구상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주된 관심은 더 나은 하늘나라에 있었다(히 11:16). 어떤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경험은 교회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지금” 땅을 소유했지만 그것은 “앞으로” 소유할 땅과 동일하지 않다. 이 영토에 대한 신학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표가 되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은 영토를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확실했지만,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 의해서도 실현되지 않은 지리적인 요소가 있었다.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타국의 노예로 살았기에 옛 약속의 땅을 상속받을 가망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갱신하셨고(출 6:8; 13:5, 11) 하나님의 백성은 그 유업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그들은 약속을 믿었으나 성취를 보지는 못했다. 애굽을 떠난 세대는 요단강을 건너지 못했다. 지금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믿음으로 우리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며(마 5:5),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들이 세상의 상속자가 될 것을 알고 있다(롬 4:13). “지금”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셨다는 것이다(요 14:2; 히 6:19~20).

둘째, 하나님의 영토는 풍요로웠다. 주님은 그 땅을 아름답고 광대하며 젖과 꿀이 흐른다고 묘사하셨다(출 3:8). 이것은 그 땅의 풍요를 말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 땅의 번영은 구속받은 자들에게 그들이 받을 축복을 생생하게 묘사해 준다.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 중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영적인 풍요로움 속에 거하는 것이다.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엡 1:3).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늘나라와 동일하다.

셋째, 하나님의 영토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은 그들이 애굽의 속박 아래 있던 모든 기간 동안 휴면 상태였거나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아니었다. 그 땅에는 이스라엘보다 더 크고 강한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신명기 7:1). 이 족속들의 존재는 믿음에 걸림돌이 되고, 신앙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그 족속들과 함께 그 땅에 거주하지 말라고 경고하셨고, 하나님께 죄를 짓게 만드는 어떤 조약도 그들과 맺지 말라고 경고하심으로써 위협에 대처하셨다(출 23:32~33). 그들의 우상을 “다 깨뜨리며” “부수”라고 명령하셨다(24절). 이스라엘은 이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그 땅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다.

믿음에 대한 문제도 아주 현실적이었다. 가나안 족속들은 매우 강하고 유능한 전사들이었고, 이스라엘은 매우 약한 데다 전쟁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그 땅을 어떻게 차지할 것인가가 시급한 문제였다. 그 땅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선물이라는 것과 그 선물을 소유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처럼 보였다. 가나안 족속들이 자발적으로 물러설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그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땅을 소유하는 과정에 대한 주님의 설명은 신자가 죄의 지배를 이기는 방법에 대한 중요한 영적 교훈을 담고 있다.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고, 이스라엘도 스스로 싸워야 했다. 주님은 원수를 물리치고 멸하시며 후퇴시키겠다고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다(출 23:23, 27). 하나님은 천사를 그들 앞에 보내셔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0, 23절).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기 위해 전쟁을 지휘할 천사와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 앞에 위엄과 왕벌을 보내실 것이라고 하셨다(27~28절). 이 둘은 공포심을 일으킬 것이라는 비유적 표현이다.

땅은 하나님의 백성의 궁극적인 목적지와 그 목적지를 향한 매일의 여정 둘 다를 가리킨다.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협력전이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땅을 주시고, 약속을 방해하는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심으로 승리를 이루시고 확증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치열한 전쟁을 통해 적군을 몰아내야 했다(신 9:3).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을 믿고 그 땅에 들어갔고, 확실한 승리의 빛 아래서 싸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자신들의 칼을 사용해 그 땅을 차지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한 끝없는 전투 속에서  새로운 영토는 서서히 점령되었다.

땅의 정복은, 신자가 죄에 맞서 싸우는 것과 점진적인 성화를 예시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승리를 이루시고 죄의 지배를 멸하셨지만,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죄가 도망치지는 않는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죄와 싸우려 한다면 패배는 확실하다. 왜냐하면 죄는 우리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갑옷을 입고 죄와 열심히 싸우지 않는다면 패배는 확실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승리를 주장하며 싸움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승리를 누릴 수 있다. 또한 특정한 죄에 대한 승리를 경험하더라도 결코 방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나안과 같은, 죄와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승리는 다음 싸움으로 이어질 뿐이다. 이 죄와의 전쟁은 현재 왕국을 경험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넷째, 그 영토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었다. 홍해 바다를 건넌 후 모세의 노래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실 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출 15:17) 그 땅에 거주한다는 것은 특별한 영적 의미에서 주님이 계신 곳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이다. 은혜롭게도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친히 가셔서 그를 쉬게 하시겠다고 확신을 주셨다(출 33:14). “안식”이라는 개념은 땅과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시 132:13~14). 안식은 주님이 계신 곳이고 주님이 함께하심의 표시였다. 이런 의미에서 땅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이자 신자의 영원한 집인 하나님의 천국에서 모든 신자가 경험하게 될 마지막 안식을 가리킨다(벧전 1:4). 다른 의미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만나시는 예배 장소에서 신자가 누리는 안식일의 휴식과 유사하다. 또한 예배 장소는 하나님 나라의 영토를 나타낸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 나라의 신학과 관련이 있다. 둘 다 실제 장소이다. 그 땅은 구속받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과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을 상징했다. 마지막으로 땅은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그로 인한 평안을 궁극적으로 경험하는 하나님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나라의 전형적인 예표이다. 땅은 하나님의 백성의 궁극적인 목적지와 그 목적지를 향한 매일의 여정 둘 다를 가리킨다. 신자의 최종 목적은 안식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마이클 베렛
마이클 베렛
마이클 베렛(Michael P.V. Barrett) 박사는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 위치한 청교도 개혁신학교의 학술 부총장이자 학장, 구약학 교수이다. 『Beginning with Moses: A Guide to Finding Christ in the Old Testament』와 『Wisdom for Life: 52 Old Testament Meditations』 등 여러 책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