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하고 순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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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하나님 나라”의 열다섯 번째 글입니다.
시편 131편에서 다윗 왕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1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왕으로서는 이상한 고백처럼 보일 수 있다. 모든 사람 중에서 큰일을 알고, 분석하고, 나라를 위해 지혜로운 행동 방침을 세워야 하는 것은 왕의 소명이 아닌가? 시편 131편을 계속 읽다 보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길 수 있다. 다윗은 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2절)라고 고백할까?
다윗의 간증을 이해하려면 이전 어떤 시점에 다윗의 영혼이 혼란스러웠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요하게 하는 과정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우리 너머에 있는 것을 이해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은 흥분하기도 한다. 시사 문제를 분석하고, 비극을 설명하거나, 난해한 질문을 풀려고 잠을 설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너무 지나치면 은연중에 우리의 교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을 알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모든 것을 알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우리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것을 하실 수 있다.
지나친 분석을 내려놓으라는 다윗의 오래된 간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중대한 사안”이 넘쳐나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접속하여 최신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경각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전 세계의 문제를 우리 어깨에 짊어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해결책을 마련할 수도 없다. 조심하지 않으면 개인적인 시련에 대해서도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될 수 있다. 더 나은 방법이 있으며, 주님은 다윗에게 그것에 대해 증거하도록 영감을 주셨다.
다윗이 자신을 젖을 뗀 아이에 비유한 것은 도움이 되는 그림이다. 고대에 아이들은 우리의 문화권에서 흔히 보는 것보다 늦게 엄마 젖을 떼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젖먹이 아이보다 인식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젖을 떼는 것이 어려운 시기였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고형 음식물(固形 飮食物)을 먹는 데 적응하고 과거의 좌절감을 떨쳐버릴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간증이었다. 즉 다윗은 일생 동안 수많은 시련과 섭리를 거스르는 “발길질과 비명”을 겪은 끝에 하나님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는 이제 젖을 뗀 아이처럼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에 만족하지만 영양분을 갈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윗의 간증에는 단순한 “내려놓음(letting go)”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백성들을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3절) 우리가 주님을 소망할 때, 그분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분이 모든 것의 주권자라는 확실한 지식을 갖게 된다. 그분이 자기 백성의 선을 위해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