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된 하나님의 속성

2022년 5월호에서는 오해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살펴본다. 우리의 하나님 중심 신학은 주님의 성품의 충만함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강조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성경과 우리의 신앙고백 전통이 하나님의 단순성, 사랑, 진노, 선하심, 편재하심, 전능하심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의미를 오해하기 쉽다. 주의하지 않으면 성경의 의인화된 언어를 잘못 읽어서 주님을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어버릴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하나님의 여러 속성의 의미를 살펴보고, 이러한 속성을 고려할 때 발생하는 일반적인 오해를 바로잡을 것이다.

 

 

 
2023년 10월 26일

신학은 송영 찬송을 부르게 한다

싱클레어 퍼거슨의 저서 『성령』을 처음 읽은 것은 1999년도였다. 서문에 인용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용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학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며,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이 말은 나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신학이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 또 신학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2023년 10월 28일

자존성과 단순성

기독교인은 “스스로 있는 자”이신 참 하나님을 예배한다(출 3:14). 어떤 사람들은 이 고유 명칭을 영향력 없고 볼품없는 이름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코끼리(elephants)에서 전자(electrons)에 이르기까지 실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2023년 10월 31일

하나님의 불변성

“하나님의 불변성”이라는 문구는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며 변할 수도 없으심을 의미한다(민 23:19; 삼상 15:29; 시 102:26~27; 말 3:6; 히 6:13~2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7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문). 이는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 모두에 해당된다.
2023년 10월 31일

비피동성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오해된 하나님의 속성”의 네 번째 글입니다. 교회 생활에 있어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는 전통은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서 […]
2023년 11월 04일

사랑, 정의, 그리고 진노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는 길을 걷다 젊은 깡패가 나이 든 할머니를 때리는 것을 상상해 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지갑을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깡패는 지갑을 뺏으려고 계속해서 때리고 있다.
2023년 11월 04일

편재성

하나님의 편재성은 우리가 그분을 경험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편재성은 또한 무한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무한하다는 것은 경계가 없다는 것이고, 경계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에 “편재”한다는 것이다.
2023년 11월 07일

전능하심

성경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수 22:22)라고 선포한다. 이 무한한 능력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전능하심’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두 개의 라틴어 옴니(전부)와 포텐시아(힘)에서 유래한다.
2023년 11월 09일

전지하심

과거를 회상할 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러나 어떤 특정한 순간에도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인간이 처한 상황이다.
2023년 11월 13일

자비로우신 대제사장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읽어 보면 베일에 가려졌던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관계를 뚜렷이 볼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하시기 전에 잠시 멈춰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2023년 11월 16일

누구도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젊다는 것과 젊다는 이유로 멸시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에베소에서 디모데는 두 가지 도전에 직면했다. 회중 가운데 노인들은 그들의 교만 때문에 디모데의 젊은이 특유의 사역을 경멸할 수 있고, 디모데 자신은 젊은 사람으로서 지혜가 부족하여 그리스도의 대의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2023년 11월 17일

목양의 다양한 성격

교회를 목양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을 그분의 말씀으로 먹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교회의 성격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지역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