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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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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복음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한 좋은 소식이다. 성경에서, ‘복음’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구약에서의 약속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하고, 신약에서는 그 메시지가 전파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복음은 은혜 언약의 중심 메시지이며,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창 3:15)하실 때, 처음으로 선포되었다. 복음은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얻으려는 모든 율법주의적 시도와 대조된다.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복음은, 법적 요구와 행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율법과 구별된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불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의 무죄한 삶을 통해 율법의 공의로운 요구를 성취하시고, 그의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를 제거하심으로, 당신의 요구를 충족하신다. 복음은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은혜로만 모든 구원의 혜택을 누리게 한다(엡 1:3). 이러한 혜택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신자들에게 적용되며,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믿음으로만 누릴 수 있다. 오직 믿음으로 복음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회개의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성경의 경고는 타락하고 위선적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은혜와 자비, 그리고 용서함을 받아 복음의 약속을 따르게 한다.

설명

복음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에반겔리온(euangelion)’이며, 이는 ‘좋은 소식’ 또는 ‘좋은 정보’를 의미한다. 복음은 모든 사람이 불의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다는 나쁜 소식에 대한 해결책이 된다. 성경 저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약속의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성취를 말할 때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갈 1:3-7). 다른 경우는, 죄 사함과 하나님의 복된 왕국의 도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의 설교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고전 15:1-3; 계 12:10 ). 두 가지의 사례 모두에서,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부활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에 있어서 핵심 요소이다. 존 스토트는 복음이 어떻게 독특하게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다루는지 설명하면서, “복음은 사람들에게 좋은 조언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이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선언하는 것이며, 요구가 아니라 제공이다.”라고 썼다. 마찬가지로, 버크 파슨스 또한 이 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복음은 충고, 지시, 위협, 혹은 경고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으로 이루신 모든 일의 승리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사도들이 복음의 한 가지 측면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부분을 말함으로 전체를 주목하게 하는 수사법인 ‘제유법(synecdoche)’을 사용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는 분명히 예수의 부활이 복음 메시지의 다른 측면임을 이해했다. 이는 고린도전서 15:1-11에 기록된 복음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에 잘 나타난다. 이것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죄 없으신 삶과 율법을 지키는 것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복음은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한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에 대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롬 3:21-4:26 참조).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했을 때 에덴동산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셨다. 신학자들은 창세기 3장 15절을 은혜 언약의 시작으로써 원시복음(최초의 복음 설교)이라고 올바르게 명칭했다. 아담이 행위 언약을 깨뜨린 후에, 하나님은 인간을 정복한 마귀를 정복할 구세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구원의 선포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 근거한 것으로,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창세기 3:15의 “자손”의 약속은 구약 전반에 걸쳐 나타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과 같다(창 12:7 ; 삼하 7:12). 아브라함의 약속된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신약성경은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갈 3:8)고 가르친다.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신약의 메시지는, 구약에서 예표와 그림자로 아브라함에게도 동일하게 선포된 메시지이다. 열방의 축복이 될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그리스도의 축복이 열방에 전해질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은혜 언약이 구약과 신약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구약과 신약 모두 같은 복음의 약속이다.

복음은 인간의 노력이나 율법을 지키는 것을 기반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내세우려는 모든 시도와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은, 인간이 만든 규칙과 규정으로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는 독선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끊임없이 질타하셨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갈라디아, 골로새의 신자들 사이에서 복음의 진리를 위협하는 거짓 교사들의 위험한 율법주의를 반박했다. 율법과 복음의 구별은 구속 역사에서 필수적이다.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서 서려고 하는 어떤 노력도 복음에 더해질 수 없다. 대신,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열매여야 한다. 복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복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감사와 순종으로 자유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은 구원의 역사에서 독특한 역할을 했다. 모세의 율법 체제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죄성을 드러내 보이시고,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실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약속에 율법을 더하셨다(롬 3:19, 7:13 ; 갈 3:19, 24).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과 복음을 대조하며, 칭의의 근거로서 행위와 믿음을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제시한다(롬 4:5; 갈 3:12). 율법은 행위를 요구하고, 복음은 믿음을 요구한다. 복음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요구하시는 것을 스스로 제공하신다. 모든 인류는 율법의 의로운 요구사항을 완벽하게 준수해야 한다. 예수님은 택하신 자들을 대신해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성취하시려고 율법 아래 태어나셨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아담이자 참 이스라엘이 되시기 위해, 모세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셨고, 당신의 백성을 위해 죽으실 것(요 10:17)이라는 하나님의 중재적 명령을 함께 이루셨다.  주님은 완벽한 삶과 속죄의 죽음,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을 통해 믿는 자들을 대표하셨다. 그가 완벽하게 법을 지키심으로 완전한 의의 지위를 얻으셨기 때문에, 중재자로서 그가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그 의를 전가하실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믿을 때, 그의 완전하신 율법의 준수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것으로 기록되고,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다고 선언된다(고후 5:21).

십자가에서의 그의 죽으심을 통해, 예수님은 그 백성들의 죄책을 스스로 짊어지셨고, 믿는 이들의 모든 죄가 그에게로 전가되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속자가 되셨으며, 그들을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그들을 속량하셨다(갈 3:13).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로 죽으셨다(마 27:46).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의 육신으로 드리신 희생 제물은 무한하고 영원한 가치가 있다. 이것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분노를 달래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실 수 있었던 방법이다.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영적으로 죽고, 장사되었으며, 새 생명으로 부활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으셨다. 부활은 그의 희생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의 피의 효력과 완전한 그의 의는 그분이 부활하신 근거가 되었다(히 13:20-21). 예수님의 인정 받음은 신자의 칭의의 근거가 된다. 또한 예수의 부활은 택함받은 자들의 거듭남의 근원이 되며, 그들의 성화의 원천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부활은 또한 신자들의 영화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영광으로 놓이셨듯이, 신자들도 마지막 날에 썩지 않는 채로 살리시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고전 15:43).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Ligonier 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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