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심
2023년 11월 07일자비로우신 대제사장
2023년 11월 13일전지하심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오해된 하나님의 속성”의 여덟 번째 글입니다.
과거를 회상할 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러나 어떤 특정한 순간에도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인간이 처한 상황이다. 우리의 모든 능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평생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고 교육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는 사실은 지식이 좋은 것임을 나타낸다. 지식은 매우 가치 있고 유익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의 요소이다.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면 인류의 조건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슬픈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고, 더 많이 알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지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지식이 역동적이지만 제한적이라는 것을 의미이다. 우리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흥미로운 사실을 알고 복잡한 이론을 이해하지만, 그들 또한 여전히 이러한 것들을 배워야 했다. 인간의 지식, 심지어 가장 뛰어난 인간의 지식도 전지하지 않으며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인간의 지식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은 이런 사실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종종 하나님의 속성, 특히 그분의 비공유적 속성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우리와 비교하여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무언가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시고 강력하시며 그리고 그분의 본성은 우리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분이 어떤 분인지 말하려면 그분이 어떤 분이 아닌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 자신도 성경에서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 3:6).
토저(A.W. Tozer)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간결하게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하나님이 전지하다는 말은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고 계시므로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배운 적이 없고 배울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마치 그분의 지식이 더 크고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지식은 단순한 양적인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고,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시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서 모든 것을 아신다.
우리가 불완전하게 알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완벽하게 알고 계신다. 성경은 하나님이 무언가를 모를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일축한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시 94:9). 하나님의 지식은 완벽하거나 완전하다. 내가 자란 곳이 오하이오주 톨레도이기 때문에 톨레도에 관해 물어보면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룩셈부르크라는 나라에 관해 묻는다면 나는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인간의 지식은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똑같이 잘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는 유레카(Eureka)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발견하지도, 놀라지도, 배우지도 않으신다. 이것은 모든 것에 적용된다.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사 40:28) 그러나 성경은 특히 인간에 대한 그분의 지식을 강조한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은 단순한 양의 문제는 아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지식이 더 크고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고,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시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서 모든 것을 아신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알기 때문에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무언가를 아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미래의 손주들을 알고 싶지만, 나의 어린 자녀들이 손주들을 가질 때까지는 그럴 수 없다. 나의 인간적 지식은 시간의 전개(展開)에 의해 제한받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열린 유신론(open theism)’으로 알려진 가르침은 비슷한 것을 말했지만, 이런 제한이 하나님에게도 있다고 가르쳤다.
열린 유신론자들은 인간 의지의 자유에 중요한 위치를 마련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 행동을 알지 못하지만 우리와 함께 살면서 우리가 행동할 때 미래 행동을 파악하신다고 말한다. 이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피조물과 역사 과정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 밖에 계신 분으로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즉시 아신다. 헤르만 바빙크는 “하나님은 영원부터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동시에 아시고, 모든 것이 그분의 마음의 눈에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이 지식은 모든 가능성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신적 섭리 안에서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것(마 10:29)을 포함해서 어떻게 만물이 발생하는지를 정하셨기 때문이다(시 139:16).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열린 유신론과 같은 신학적 오류를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더 긍정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그분의 백성에게 위로가 되고 예배의 원동력이 된다.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이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는 아주 정반대이다. 시편 139:1-18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계신 가장 심도 있고 친밀한 지식을 “보배로운” 것으로 간주한다(17절). 왜 그럴까? 우리 언약의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긍휼과 도움이 충만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시 116:5-7). 윌리엄 에임스는 “믿음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고, 그것을 기꺼이 공급해 주시는 분께 기대어 있다.”라는 심오한 표현을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지식을 넘어 자신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바로 이런 사실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모르신다면 우리에게 계시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분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신 자신을 완벽하게 알고 계신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완전히 알고 있는 것처럼, 성령도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신다(고전 2:10). 신적 본성 안에서 서로를 완벽하게 알고 계시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위격들 사이에 공유되는 사랑과 기쁨에는 무한한 충만함과 풍성함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롭게 열어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동일하며, 우리가 이 복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신비롭고 영원한 지혜의 주님, 우리의 눈에는 감춰진 범접할 수 없는 빛으로 감싸인 높으신 주님”이라고 찬송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