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와 사역
2025년 03월 29일
복음
2025년 04월 26일삼위일체

서론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 신앙과 신앙 생활의 근본이 된다. 이는 성경적 종교의 핵심이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으며, 하나님은 신성한 신비의 전개 과정에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구별되지만 나눌 수 없는 세 인격으로 영원히 존재하신다. 교회의 신조와 고백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필수적인 성경의 진리를 요약한 것이며, 기본 교리에 대한 신학적 의미의 미묘한 차이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교리도 종종 잘못 이해되거나 잘못 표현되고 왜곡되기도 했다.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성경적 지지와 그 역사적 발전을 고려하면 이 소중한 진리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설명
성경적 지지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 교리의 본질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드러난다. 구약 성경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기 보다 암시하고 있다. 이는 구약 성경의 계시가 준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구속사 전반에 걸쳐 계획하신 모든 것을 완전히 계시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새 언약을 위해 준비시켰던 구약의 계시가 어떻게 온전히 전개되는지를 알기 위해 신약의 계시가 필요하다. 또한, 구약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진리를 주변 이방 민족들의 다신론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유일신적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신 것은 그의 백성을 이방 민족의 우상 숭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신격의 여러 위격에 대한 중요한 암시들이 있다.
다음을 고찰해 보라.
- 피터 롬바르드와 마틴 루터와 같은 일부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이름 엘로힘이 사용된 것에서 신적 위격의 복수성에 대한 암시를 발견했다.
-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 많은 신학자들이 창세기 1:26, 11:7, 이사야 6:8에서 발견 되는 “신들의 회의” 안에서의 소통이 삼위일체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라는 제안은 가능성이 낮다. 창세기 1:26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인격들이 서로 소통하거나 서로를 언급하는 구절이 많이 있다(예:시 45:6-7; 110:1; 슥 2:8-11; 히 1:8-9). 이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특성에 대한 구약성경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 많은 초기 교회, 루터교, 개혁파 신학자들은 “여호와의 사자”(히브리어로 ‘말라크 야훼’)가 하나님의 두 번째 위격, 즉 로고스의 성육신 이전의 현현이라고 보았다.
- 성령 하나님에 관한 구약성경의 계시는 – 아버지(이사야 63:16)와 아들(시편 2:7; 잠언 30:4)과 구별된 – 하나님의 다수의 인격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예를 들어, 창 1:2; 출 35:31; 삼하 23:2; 사 63:10; 겔 2:2). 성령은 구약성경에서 창조와 유지, 능력과 계시, 그리고 구원을 적용하시는 주체이시다.
신약에 와서, 삼위일체의 신비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더욱 명확하게 펼쳐진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때에, 하나님의 세 위격이 모두 임재하여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성부는 성자에 대해 말씀하시며, 성령은 성자 위에 내려오신다(마 3:13-17). 또한 하나님의 위격들은 신약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함께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눅 1:35; 3:21-22; 마 28:19; 고전 12:3-4; 고후 13:14; 벧전 1:2). 성부와 성자는 동일한 위격의 다른 양태나 현현에 불과하다는 양태론의 견해와 달리, 복음서에서 성자께서 여러 번 성부께 기도하시는 모습을 통해, 어떤 면에서 성자는 성부와 구별되신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눅 22:42; 23:34, 46; 요 12:28; 17:1).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부와 성령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시면서도 구별되신다. 요한복음 14장-16장에서 예수님은 삼위일체의 인격에 대해 명확히 말씀하신다. 성령의 신성한 위격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특히 성령께서 말씀하심에 관해 언급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행 13:2; 계 2:7, 11, 17, 29; 3:6, 13, 22; 14:13; 22:17). “성령이 말씀하신다”, “성령이 …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령이 말씀하시는 대로”와 같은 구절은 신약에서 구약을 인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신약성경은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 사이의 영원한 신적 동등성과,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구속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성자께서 성부께 역할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언급한다.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존재론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를 구분짓는다.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그 자체로서의 하나님을 묘사한다.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관점에서는 존재의 종속이 없는 절대적인 신적 평등이 있다.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관하여, 성자는 성부와 절대적으로 동등하시다(요 1:1; 8:58; 골 1:15, 19; 히 1:3). 경륜적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외적 사역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위격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있어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기능적으로 종속된다(요 5:19-23; 고전 11:3).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역을 수행하실 때 시간적 종속은, 아들을 보내시겠다는 아버지의 약속과, 구속의 언약 안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구원을 값을 치르고 사시겠다는 아들의 약속을 성취하였다.(요 10:17-18, 12:49; 딛 1:2).
역사적 발전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초대교회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논증 ‘프락세아 반박(Adversus Praxean)’에서, 테르툴리아누스은 “Trinitas unius Divinitatis, Pater et Filii et Spiritus Sancti” (하나의 신성,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언급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위격의 다양성(라틴어 페르소나)에 관한 기초를 제공하였고, 후대의 교부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고 수호하는 데 필수적인 어휘를 제공했다.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공의회 이후 성부와 성자의 동질성, 즉 성부와 성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주장을 가장 잘 변호했으며, 갑바도기아 교부들(가이사랴의 바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니사의 그레고리)은 본질과 위격의 의미를 명확히 구분했다.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과에 결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를 기반으로 성부와 성령의 본질적 사역에 비추어 성령의 독특한 위격을 명확히 했다. 니콜라스 니드햄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우리가 오늘날 정통적으로 사용하는 삼위일체라는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신성한 본질을 나타내는 용어인 ‘우시아(ousia)’ 외에도, 신성한 인격의 실체를 표현하는 ‘후포스타시스(hypostasis)’라는 용어를 정의했다.”
초기 교회에서는 성자의 신성이 교리적 논쟁의 중심이었다. 기독교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핵심 진리의 결정적인 발표는 니케아 공의회(서기 325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서기 381년)에서 확립되었다. 두 공의회에서 기독론적 오류를 반박되었고, 교리적 정확성이 확립되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니케아 신경(콘스탄티노폴 공의회에서 다듬어지고 확장되었기 때문에 니케아-콘스탄티노폴 신경라고도 함)에서 성문화되었다.
갑바도기아 교부들 이후,아우구스티누스는 기존의 삼위일체의 구분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의 “삼위일체론“은 교회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신학적 저작 중 하나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삼위일체에 대한 어거스틴의 명확한 표현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를 성부가 아니라 신성의 통일성에서 도출하며, 삼위일체를 우연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신적 존재의 본질적 특성으로 여겼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위격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와 동일하다. 각각의 위격은 … 전 존재와 동일하며 다른 두 위격이나 세 위격 모두가 동등하다. 그것이 피조물과의 차이점이다. 한 인격이 세 인격과 같지는 않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하나님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있어도 성부나, 성자께서 단독으로 계신 것 보다 더 큰 존재가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본성이나 위격을 그렇게 불러야 한다면, 그들은 동시에 개별적으로 동등하게 존재하신다”(삼위일체론, VII, 6).
교회 역사를 거치면서 특정한 구문이 논란이 되었다. 11세기, 서양 교회는 니케아 신경에 ‘filioque 필리오케'(그리고 아들)이라는 단어를 추가하였다. 이는 수 세기 동안의 예배와, 성령이 성부뿐만 아니라 성자로부터도 나온다는 성경의 증언에 따른 것이다. 동방 정교회는 필리오케 조항을 거부했으며(지금도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1054년에 동서 교회로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17세기 개혁주의 고백과 교리문답은 초기 교회와 중세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에 동의한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답은 니케아 삼위일체 교리를 요약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이렇게 말한다. “신격 안에는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 세 위격이 있다. 그리고 이 세 위격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본질적으로 동일하시고, 권능과 영광에서 동등하시다” (질문과 답변 5).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신격의 구성원들이 “각각의 인격적 속성으로 구별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Q&A 9). 이 속성들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성부는 성자를 낳으시고, 성자는 성부로 부터 나시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시는 것이 합당하다”(Q&A). 이런 구분은 신격의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순서를 명확하게 한다. 통상적으로 성부는 신성의 첫 번째 위격, 성자는 두 번째 위격, 성령은 세 번째 위격이라고 한다. 이것은 신성에 있어서 어떤 종속성을 암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신격의 각각의 인격적 역할과 사역의 순서를 반영한다. 구원은 성부로 부터 성자를 통하여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며, 우리는 성령으로 성자를 통해 성부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드린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