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 라이트는 뭐라고 말했나?

테이블톡 2010년 2월호에서는 N.T. 라이트를 둘러싼 논란과 그의 칭의론을 살펴본다.
 

 
2021년 12월 13일

모두를 위한 칭의

몇 해 동안 우리는 <테이블톡>을 통해 바울의 칭의 교리에 관한 새 관점 문제를 다루어야 할지를 놓고 고심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독자가 최근까지 세계 전역에서 신학자들 간에 학문적으로 논의되었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2021년 12월 13일

허수아비 논증

“우리는 복음 자체를 믿음으로써(by believing in the gospel itself), 다시 말해 예수님은 주이시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2021년 12월 13일

칭의와 에큐메니즘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에 대한 논의에서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인지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논의로 칭의의 관점을 이전하면, 우리는 교파의 장벽을 뛰어넘어 함께 일할 수 있는 강력한 유인을 갖게 된다.”
2021년 12월 13일

행위에 기초가 두어진 미래의 칭의?

“‘믿음으로 얻는 칭의’에 관한 사실의 전체적인 요점은 그것이 살아왔던 전체 삶에 근거해서 미래에 선포될 최종적 심판에 대한 적절한 예견으로서(롬 2:1~16) 현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롬 3:26).”
2021년 12월 13일

“율법의 행위”에 대한 바울의 견해

“그러면 이런 의미에서 사람을 ‘의롭게 만들’ 수 없는 ‘율법의 행위’는 무엇인가?…갈라디아서 2:14의 ‘유대인답게 사는 것’과 2:15의 ‘이방 죄인’과 분리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이런 율법의 행위다.
2021년 12월 13일

칭의는 복음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나는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교리는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뜻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교리는 복음에 함축되어 있다.
2021년 12월 13일

교회는 칭의를 오해해 왔는가?

“[칭의]는 ‘들어가는 것“(getting in), 아니 사실은 ‘들어가 있는 것’(staying in)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은 어떻게 누가 안에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2021년 12월 13일

라이트의 전가 이론은 잘못되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속한 전통을 포함하여 일부 개혁파 전통이 예수님은 ‘율법에 순종하셨고’ 그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의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의’를 얻으셨다고 가정하는 것은 솔직히 범주 오류다…"
2021년 12월 13일

“믿음”과 “신실함”

“믿음과 순종은 대립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과 순종은 정확히 함께 간다. 확실히 ‘믿음’(faith)이라는 말 자체는 매우 자주 ‘신실함’(faithfulness)으로 적절하게 번역될 수 있었고,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2021년 12월 13일

순례자 (그리고 그들의 주인)

지혜로운 여행자는 방문하는 나라의 관습과 언어에 적응을 잘한다. 우리가 해외(잉글랜드)에서 살았을 때 그곳 사람들은 우리에게 우리의 건강에 관해 묻지 않았다. 실례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13일

잃어버린 동기

나는 기념일을 정말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작년에 나는 2008년이 내가 안수를 받고 목회 사역을 시작한 지 5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목사 임직식이 기념할 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다.
2021년 12월 13일

인기 없는 비전

헨리 캐벗 로지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현재 영어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거의 모든 역사적 작업은 직전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관점”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관점이라는 것이다.
2021년 12월 13일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것의 “난센스”

“만약 우리가 법정 언어를 사용한다면, 재판장이 자신의 의를 원고나 피고에게 전가하거나 나누어주거나 이전시키거나 전달하거나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옮긴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로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