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말씀
2025년 03월 19일
교회와 사역
2025년 03월 29일하나님을 아는 것

서론
삼위일체 하나님은 자연과 성경 모두에서 자신을 계시함으로 자신을 알리셨다. 일반 계시 속에서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와 보존자로서 자신을 나타내시며, 특별 계시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백성의 구원자로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과 그의 무한한 능력은 모든 인류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아담으로 인해 타락한 인간이 구원의 지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대한 특별한 계시가 필요하다. 또한, 이 구원의 지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과 조명하시는 역사가 필요하다. 참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하나님과의 교제,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예배, 일과 안식, 은혜 안에서의 성장, 가족과의 관계, 결혼과 봉사, 그리고 구제를 포함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그를 더 잘 알아갈 수 있도록 은혜의 방편을 지정하셨다.
설명
인간 관계에서 어떤 사람이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을 알고 싶어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류가 자신을 알 수 있도록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셔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므로 완전히 알 수 없으며, 그분께서 자신의 형상을 가진 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실 때만 진정으로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무한한 능력과 신성한 본성을 창조를 통해 드러내셨으므로, 그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모든 인류는 하나님에 대한 본능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롬 1:19-20). 신학자들은 이런 본능적인 지식을 ‘sensus divinitatis'(신의식)라고 부른다. 존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 1.3.1에서, 신성에 대한 감각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인간의 마음에는 신성에 대한 어떤 감각이 존재하며, 이는 자연적인 본능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그의 신성에 대한 어떤 개념을 부여함으로써, 누구도 무지를 핑계 삼지 못하게 하셨다. 그분은 이 기억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하시고 때때로 확장하시어,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그가 그들의 창조주이심을 모든 사람이 인식하게 하신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그분께 드리는 제사에 그들의 삶을 바치지 않을 때, 그들의 양심에 의해 정죄 받게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모든 사람들이 본성적 불의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기 때문에, 타락한 죄인들을 하나님과의 구원의 연합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롬 1:18, 23). 이것은 심판의 날에 모든 사람들이 변명할 수 없게 한다(롬 1:20).
무죄 상태에 있었던 아담에게도, 하나님으로부터의 특별한 계시가 필요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아담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창조의 규칙, 그리고 낮아지심으로 맺으신 행위 언약에 관한 계시가 필요했다. 아담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주의 영광을 위해 수고해야 할 곳으로서의 창조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아담은 특별 계시가 없이는 자연 계시와 하나님 앞에서의 의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가 함께 작용해야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버크 파슨즈는 “지식의 구원”이라는 그의 글에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 지식은 선행의 기초이고, 사랑의 확립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대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수단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자신에 관한 다양한 진리를 계시하신다(롬 10:14).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통해 당신의 거룩한 성품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의 도덕법은 그의 형상을 가진 자들의 윤리적 의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통해, 그의 성품과 속성을 그 백성에게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죄와 허물, 그리고 그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다(출 34:7, 민 14:18, 미 7:18). 결국, 예수님은 그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그의 백성에게 자신의 완전하심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계시가 되신다(요 17:3, 히 1:1).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십자가에 못 박힘, 부활, 승천, 통치하심, 그리고 재림의 약속에 대한 성경의 진리들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알고 그를 신뢰하도록 가르친다.
중세 교회 역사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영혼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즉각적인 구원의 지식, 즉 하나님에 대한 신비로운 지식을 강조했다. 신비주의 체계에서, 사람은 어떤 수단 없이도 하나님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드(Bernard of Clairvaux)처럼 성경에 대한 확고한 헌신으로 경험을 제한한 덜 극단적인 중세 신비주의 신학자들이 있었다. 베르나드의 성경에 대한 높은 견해는, 존 칼빈이 ‘기독교강요’ 전반에 걸쳐 여러 번 인용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즉각적인 계시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 속에 초자연적으로 말씀을 조명하셔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현대의 신자들은 종종 계시와 조명을 혼동한다. 20세기의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오류에 빠졌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조명해주시는 것보다 즉각적인 계시를 받는 것을 선호하는지 설명한다.
- 직접 계시를 받는 것이 성경의 계시를 받는 것보다 더 흥미롭고,. 그것이 더 “영적”이고, 더 “신성한” 것 같기 때문이다.
-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이것을 나에게 계시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권위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직통 계시는 고생스럽게 성경을 공부하고 기독교 교리를 신중하게 고려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갈 필요가 없게 만든다. 솔직히 말해서, 직통 계시와 비교하면, 성경 공부는 지루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조명하시는 기록된 계시보다 즉각적인 계시를 찾으려고 하지만, 성경이야말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완전하고 최종적인 계시이다(요일 5:13; 벧후 1:19, 계 22:18-19). 성경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고 성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다(벧후 1:2, 3, 8; 2:20; 3:8).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