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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니어 블로그

유능한 목사들과 성경 교사들의 숙고케하는 아티클들은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돕기위해서 성경적이고 신학적이고 실제적인 주제들을 다룹니다.

 


2024년 03월 19일

출애굽기에 대해 알아야 할 세 가지

출애굽기를 배우는 학생들 중에는 성경 저자가 이집트(애굽) 문화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경우나 많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도 놓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대교에서도, 기독교의 전통에서도 모두 출애굽기의 저자가 모세라고 말하고 있다. 모세는 애굽의 언어와 애굽 민족의 신학과 그 땅의 생활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2024년 03월 15일

창세기에 대해 알아야 할 세가지

대부분의 현대 독자는 창세기를 신중하게 구성된 문학 작품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창세기를 단편적으로 읽는 데 익숙해져 있다. 기독교인들의 공적이거나 사적인 독서 습관은 창세기를 하나의 일관된 책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약화시킨 나머지 중요한 측면을 놓치게 된다. 이제 창세기에서 관찰해야 할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을 언급하려고 한다.
2024년 03월 12일

인류의 동등성

2020년, 네바다주의 한 학교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과 특징을 발표하고, 그들이 발표한 ‘특권’이나 ‘억압’에 따라 점수를 주겠다는 과제를 내주었다. 백인이나 기독교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은 ‘억압’으로 정의되었다. 학생들은 “억압에서 비롯된 신념, 태도, 행동”을 “돌이키고 배운 것을 잊어버려야” 했다.
2024년 03월 12일

설득하는 설교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신성한 부름을 받았다. 사도행전 18장 4절에서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라고 말한 것처럼 목회자는 설득력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설교자는 청중이 하나님의 진리를 듣고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용하도록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2024년 03월 08일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장 1절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성경에서 많이 오용되는 구절 중 하나이다. 성경의 다음 세 구절만을 아는 듯한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비판하지 말라”(마 7: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이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든 하지 않든, 성경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2024년 03월 08일

양떼를 목양하기

양들의 큰 목자는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마 19:14)라고 말씀하셨다. 장로들은 목양 사역을 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양들을 돌보고 먹일 수 있을까?
2024년 03월 05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소외되고, 멸시받고, 핍박받았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신자들이 이같은 일을 겪고 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경제적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명백한 손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 경이로움을 요약하면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들이다.
2024년 03월 05일

누가 당신을 따르는가?

당신은 팔로워(following)가 있는가? 10년 전에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이제 “팔로잉”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다른 사람을 “팔로우”하고 다시 “팔로우”를 받는다. 또 다른 신조어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이다.
2024년 03월 02일

모든 권위를 가지신 머리

“교회의 머리”라는 그리스도의 칭호는 회사나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표현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살아 있는 그분의 신부인 몸의 머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