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2026년 04월 28일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2026년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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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2026년 05월 06일

하나님의 백성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성경적 예언 이해하기”의 아홉 번째 글입니다.

구약의 선지서들과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을 묘사하는 기록을 읽을 때, 우리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동하는 동시에, 우리 역시 그리스도 교회의 지체로서 그 예언의 성취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격려를 받아야 한다. 다음 세 가지 요소는 우리가 그것을 해석하도록 돕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첫째,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관한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창조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첫 조상이 죄 가운데 뱀(사탄)의 편에 선 후에도,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원수가 되게 함으로써 자기 백성을 되찾겠다고 약속하셨다(창 3:15 참고). 이 약속이 은혜 언약의 시작이었으며, 이 언약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과 그분이 장차 행하실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백성을 자신에게로 모으신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은혜 언약을 더욱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를 보여 주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계보를 통해 일하며 그를 큰 민족으로 세우시되, 그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려 하셨다(창 12:2,3; 갈 3:8 참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특별히 주목하신 것은 언제나 열방을 향한 보편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둘째,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회복은 서로 다른 언약에 기초하며, 그러하기에 선지자들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선포할 수 있었다. 출애굽 이후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모세 언약을 맺으셨다. 이 언약은 그들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실지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시내산을 떠나기도 전에 이 언약을 깨뜨렸다(출 32장 참고). 그리고 그들의 역사는 하나님의 율법에 거듭 불순종하는 일로 점철되었다.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 오래 참으셨으나, 결국 이스라엘에게 모세 언약의 궁극적인 저주를 내리사 그 땅에서 그들을 추방하신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죄가 끝이 아니었듯이, 이스라엘의 이야기도 이렇게 끝난 것은 아니다. 모세는 선지자의 전형으로서(신 18:15 참고), 이스라엘의 실패와 포로 생활 이후 하나님께서 새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예언했으며(신 4:25–31; 29:10–30:14; 31:14–32:43 참고), 다른 선지자들도 그의 전례를 따른다. 이스라엘이 모세 언약을 깨뜨리더라도, 특히 아브라함 언약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들은 여전히 성취되어야 했다.

셋째, 선지자들은 장차 나타날 새 언약의 실재를 흔히 자신들이 처한 구속사적 상황 안에서, 즉 이스라엘에 존재하는 모형과 그림자를 통해 묘사한다(골 2:17; 히 10:1 참고). 또한 선지자들은 종종 하나의 진술 안에 여러 단계나 다각적인 차원으로 성취될 미래를 함께 담아낸다. 이런 두 가지 방식을 ‘선지자적 표현법(prophetic idiom)’이라 일컫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예언이 교회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올바르게 해석할 근거가 된다.

두 요소가 모두 나타나는 예로 예레미야 30,31장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새로운 다윗 왕의 통치 아래 용서받고 순종하는 백성으로서 복된 땅에 안전히 거주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귀환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으나(스 1:1 참고), 온전한 성취는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통해 묘사한 바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의 시대를 선포하는데(렘 31:31 참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막이 열렸으며(눅 22:20; 히 8:8–13 참고), 그분이 재림하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것이다(벧후 3:13 참고).

선지자들은 때때로 이방인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려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명시적으로 밝히기도 한다(사 42:6,7; 49:5,6 참고). 그러나 여전히 열방이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몰려드는 장면처럼, 선지자적 표현 방식을 통해 그것을 기술한다(사 2:1–4; 미 4:1–3; 슥 8:20–23; 14:16 참고). 또 다른 예로, 아모스 9장 11,12절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회복될 때 모든 민족으로부터 나온 사람들이 거기에 포함되리라고 예언한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바로 이 본문을 인용한다. 당시 교회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또 그것이 모세 율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두고 씨름하고 있었다. 야고보는 하나님이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는 것’이 아모스서의 묘사와 일치한다고 결론짓는다(행 15:13–18 참고). 이처럼 야고보는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 곧 다윗의 장막이 회복되리라는 예언이 그리스도의 새 언약 교회에서 성취되었다고 밝힌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그 장막에 들어갈 것이며, 양자 모두가 동일하게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선포한다(행 15:11 참고).

선지자들은 대개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언급하지만, 그런 예언들 역시 교회에 적용된다. 호세아 1–3장에서, 하나님은 호세아가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해 자녀를 낳는 일을 통해 이스라엘과 자신의 관계를 보여 주신다. 각 장은 모세 언약에 불충실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기술하고, 이어서 아브라함 언약의 약속에 기반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루어질 일을 이와 같이 묘사하는 것은 선지자적 표현법의 좋은 예이다. 그것은 복된 땅에서 회복된 이스라엘을 그리는데, 베드로는 이를 교회에 적용하여 그것이 새 언약을 묘사함을 보여 준다(벧전 2:10 참고). 마찬가지로, 바울도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논하면서, 호세아 2장 23절과 1장 10절을 인용해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롬 9:24–26 참고).

신약은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예언적 약속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성취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엡 2:11–3:6 참고). 동시에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더 많은 동족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는 고통과 갈망을 토로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이방인들이 감사와 겸손이라는 올바른 태도를 가지게 하려고 애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고 이방인으로 그들을 대체하신 것이 아니다. 바울은 감람나무 비유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인이 그분의 백성 가운데 접붙임받았음을 보여 준다(롬 11:17–24 참고). 이어지는 25–27절에 관해서는 논쟁이 있으나,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도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이방인과 더불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회심하기를 바랐던 바울의 열망이 우리에게서도 뚜렷이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조슈아 반 이

조슈아 반 이

조슈아 반 이(Joshua J. Van Ee) 박사는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히브리어 및 구약학 부교수이며, 북미연합개혁교회(URCNA)에서 안수받은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