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 

2026년 05월 06일

차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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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성경적 예언 이해하기”의 열 번째 글입니다.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요 16:33)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라고 가르치시는데, 이것은 가상의 상황이 아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마 10:22). 그러므로 제자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는 날이 과연 올 것인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미움과 박해를 받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7–19).

그리스도인은 박해와 미움을 받으리라는 약속뿐 아니라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명령도 받는다. 이것은 단순한 약속인 동시에, 그만큼 명료한 명령이다. 그러나 미움과 박해 한가운데서 거룩하게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일은 절대 단순하거나 편안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정의를 갈망하는 마음을 심어 두셨음을 유념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거룩히 기다리는 중에도 정의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 업신여김과 미움을 받고 박해를 당할 때도 손을 내저으면서 “괜찮다. 별일 아니다. 난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를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현관 매트처럼 누구에게나 짓밟히는 존재가 아니며, 그렇게 행동해서도 안 된다. 우리 하나님은 엄정한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의는 그분이 철저히 보존하시는 분명한 기준이며, 이에 따라 모든 사람과 모든 행위가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심판에 이르러, 모든 사람이 자신이 행한 모든 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히 4:12,13 참고). 이는 그리스도인이 박해와 미움을 받을 때 의로운 분노를 느껴야 하며, 실제로 느끼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런 감정은 옳고 선하다. 그것이 경건할 때, 우리는 불의를 향한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에 참여하게 된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에서 어느 정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제도적 수단을 마련해 두셨으며(롬 13:1–7 참고), 이를 주관하신다(잠 21:1; 단 2:21 참고). 따라서 우리가 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런 모든 수단까지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제도들은 대체로 정부의 영역과 교회의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님은 인류 사회 가운데 어느 정도의 안전과 의를 보장하고자 이런 선한 제도들을 세우셨다. 그리스도인이 시민법이나 연방법에 위배되는 박해를 당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적 수단을 통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다른 이에게서 미움이나 중상을 당한다면, 하나님께서 은혜의 방편으로 주신 교회의 권징과 치리를 활용해 그리스도의 영예를 보호하고, 잘못한 이를 바로잡으며, 교회의 평안을 도모해야 한다(마 18:15–20; 고전 6:1–11 참고).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정의를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인간의 제도들이 그들이 겪는 매우 현실적인 박해를 온전히 구제하지 못하거나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 점은 중요하다. 이런 일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의 제도가 그 불의를 온전히 다루지 못할 수도 있다. 또는 인간의 제도 자체가 부도덕하거나 불의하거나 부패했거나 노골적으로 반기독교적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피해가 너무나 개인적이고 개별적이어서, 시민 법정이나 교회 법정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바로 이때 그리스도인에게 로마서 12장의 말씀이 필요하다. 거기서 바울은 사적으로 보복하려는 욕구를 억제하고 대신 하나님께서 가해자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기다리라고 권면한다.

그렇게 거룩하게 기다리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완전한 공의를 엄정히 이루실 것이라는 확실한 약속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해자의 양심에 가책을 주어 즉각적으로 뉘우치고 화해를 구하도록 이끄시지 않는다면, 두 가지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가해자를 회심시키시는 경우이다. 즉,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자가 거듭날 수도 있다. 그 박해자가 회심하면, 그가 그리스도인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공의로운 대가를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신다. 그리스도는 기독교를 대적하는 수많은 원수들을 얻으셨는데, 사도 바울도 그중 하나이다(빌 3:6 참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자가 회심할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위대한 속죄 사역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죄를 범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만족시킨다. 다른 하나는,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경우이다. 마지막 심판이 임하는 날,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로 돌이키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신적 심판과 진노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이 당한 박해와 미움의 죄는 십자가에서든, 아니면 악인을 향한 영원한 심판에서든,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박해 가운데 이 거룩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스도인은 가능한 한 원수에게 선을 행하고(잠 25:21; 눅 6:27; 롬 12:20 참고),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마 5:44; 롬 12:14 참고). 이로써 그리스도인은 원수들에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본을 따르게 된다(롬 2:2–4 참고).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의로 심판하실 수 있음을 알고 보복을 하나님께 맡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조 홀랜드

조 홀랜드

조 홀랜드(Joe Holland) 목사는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그림케 신학 대학원(Grimké Seminary)의 편집장이며 미국 장로교(PCA)의 강도 장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