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관한 오해 

2026년 06월 15일

진정한 기독교란 무엇인가? 

2026년 06월 15일

기독교에 관한 오해 

2026년 06월 15일

진정한 기독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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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의 위험성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진정한 기독교”의 네 번째 글입니다.

당신은 교회 문을 통과하는 순간 나타나는 변화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아마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한 부부를 상상해 보라. 이들의 결혼 생활은 그리 좋지 않다. 자주 다투고, 서로에게 쉽게 짜증을 낸다. 흔히 그렇듯이, 이들은 남편이 계획한 출발 시각보다 늦게 집을 나서 교회로 향한다. 남편이 나갈 준비를 하면서 남겨 둔 아침 식사 뒷정리를 하느라 아내에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미 남편은 차 시동을 켠 채로 운전석에 앉아 있다. 그러다가 아내가 차에 타고 문을 닫자마자 전속력으로 차를 몰고 간다. 아내는 그에게 그리 곱지 않은 목소리로 제한 속도를 지키라고 말한다. 그러자 남편도 똑같이 짜증 섞인 말투로, 아내가 약속한 시간까지 준비를 마치고 차에 탔더라면 자신도 제한 속도를 지켰을 것이라고 대꾸한다. 어차피 설거지는 나중에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교회에 도착한다. 그러고는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손을 맞잡고 빙긋이 웃는다.

이번에는 한 독신 남성을 떠올려 보라. 그는 혼자 지내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삶이 도무지 잘 풀리지 않는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 꿈꾸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대체로 불만이 많고 심술궂은 인상이다. 그런데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의 표정이 바뀐다. 얼마든지 예를 더 들 수 있다. 어쩌면 여기에 당신의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교회 문은 종종 사람을 바꾸어 놓는 효과를 나타낸다. 이것이 정말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어쩌면 교회 문으로 들어갈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신뢰하는 모든 사람에게 놀랍도록 오래 참으시며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교회 문턱을 넘어가는 순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새삼 깨달을 수도 있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로 나아올 때, 때때로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변화시키신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이처럼 교회 문을 지날 때 나타나는 변화가 위선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다소 모질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생각해 보라. 우리는 거룩한 미소를 지으면서 모든 것이 괜찮은 듯 가장한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견고하고 행복한 척한다. 또한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힘겹지 않은 척한다. 교회 안을 둘러보면, 과연 구주가 필요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한다고, 온 삶을 다해 언제나 하나님만을 예배한다고 고백하면서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 우리가 교회 문 밖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불행하고 망가졌으며 분노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사실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때로는 그처럼 행복한 교회에 우연히 발을 들여놓지만, 교회 문이 일으키는 변화의 효과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도움이 절실한 모습으로 교회에 들어온다. 웃지도 않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절박하게 용서가 필요한 죄인으로서 그곳에 나아가기를 갈망할 뿐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죄인의 친구이시며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 1:3)께로 인도해 줄 이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마르틴 루터가 시편 130편을 바탕으로 지은 찬송가 ‘깊은 슬픔 속에서(From Depths of Woe)’와 같은 노래를 그들을 위해, 또한 그들과 함께 불러 줄 이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아는가? 혹시 당신도 바로 그런 사람인가?

오해하지 말라. 나는 침울한 교회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참된 복음의 기쁨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참된 복음의 기쁨은, 타락한 세상에서 타락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자각하고, 우리가 복음이 베푸는 용서와 참된 변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을 때 가장 풍성해진다. 다소 피상적인 기쁨을 내세우는 교회는 종종 상처 입은 사람들을 밀어내거나, 아니면 그런 분위기에 녹아드는 법을 배우게끔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도 교회 문을 들어설 때면, 내적으로 고통받고 있으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괜찮아 보이는 행복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오직 자신만이 상처 입고 힘겨워하는 것인지 의아해한다. 그들은 많은 교회에서 너무나 흔히 나타나는 그런 위선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바리새인과 세리에 관해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비유를 기억하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11–14).

우리 교회에서도 세리의 정직함과 겸손이 분명히 나타나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나누고 죄를 고백한다. 또한 자신의 죄로 인해 애통해하며, 죄로 인해 애통해하는 다른 이들을 위로한다. 특별히 약하고 가난하며 무거운 짐 진 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리고 우리는 죄와 싸우는 가운데 서로를 책임 있게 붙들어 줄 수 있도록 지체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참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신뢰하고 소망하면서, 서로에게 도움과 성경적 권면을 구한다. 상한 죄인으로서 우리는 위대하신 구주의 복음을 듣고자 간절히 바란다. 예수님은 건강하고 의로운 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오셨다(막 2:17 참고). 분명히 말하지만, 의인은 하나도 없다(롬 3:10 참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위선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 교회가 괜찮은 척하면서 예수님이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교회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서 우리의 어려움과 죄를 정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결국 교회는 자신에게 구주가 필요함을 아는 사람들의 모임이요, 구주께서 한때 완전히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음을 기뻐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이 세상은 거짓된 미소와 눈속임과 가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교회는 주변 세상과 같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값없는 은혜를 기뻐하고,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주께서 언젠가 모든 죄와 고통과 슬픔을 끝내실 것을 신뢰하는 백성으로 함께 모인다.

정직함과 기쁨을 간직한 교회에서는 문을 통해 매우 다른 변화의 열매를 보게 된다. 이제 그것은 우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설 때 거짓으로 웃으면서 모든 것이 괜찮은 척하는 변화가 아니다. 그런 교회에서 변화의 역사는 사람들이 교회 문을 나설 때 나타난다. 자기 의에 사로잡혀 분노와 슬픔과 절망을 안고 들어왔던 이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결국 모든 것이 선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알고서 겸손해진 마음으로, 새로운 소망과 기쁨을 가득 안고 걸어 나갈 것이다. 서로에게 화가 난 상태로 들어왔던 부부는, 자신들이 그리스도께 훨씬 더 크게 용서받았음을 확신하고는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게 될 것이다. 실망과 슬픔에 잠겨 있던 독신 남성은, 영광스러운 미래를 새롭게 소망하면서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용기를 얻어 교회 문을 나설 것이다. 여기에 당신의 이야기도 덧붙여 보라.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마티아스 로만

마티아스 로만

마티아스 로만(Matthias Lohmann) 목사는 독일 뮌헨에 있는 자유복음주의교회(Free Evangelical Church)의 목사이며, 독일 복음주의 연합인 ‘에반게리움21(Evangelium21)’의 의장이자 설립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