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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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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관한 오해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진정한 기독교”의 세 번째 글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부터 오해와 싸우셔야 했다. 예수님의 사도들조차 그분의 사명을 줄곧 오해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윗 왕국이 한층 강화된 형태로 생각했고, 그리스도를 군사력으로 모든 이방 민족을 굴복시킬 정치 지도자로 여겼다. 또한 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로마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구원을 이루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도 그러했다. 주님을 가까이서 따르던 이들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셨으나 자신을 감추고 계신 주님과 동행하면서도 슬픈 기색을 띠고 있었다(눅 24:13–27 참고). 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부르면서,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속량하시기를 바랐던 자신들의 소망이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또한 그들은 빈 무덤과 부활하신 주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참된 본성과 세상에서의 사명을 가르치심으로써, 그들의 혼란을 바로잡아 주셨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조차 그분이 누구시며 무엇을 위해 오셨는지를 계속 오해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심하겠는가?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어둠 가운데 행하고, 죄의 종노릇하며, 생각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세상은 기독교가 선포하는 진리, 곧 그리스도의 성육신, 행위와 별개로 오직 믿음으로 주어지는 칭의, 신자 안에서 주님께서 행하시는 바를 신자가 삶 가운데서 이루어 가는 점진적 성화, 삶의 끝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이루어지는 영화의 교리를 마주할 때마다 한결같이 그것을 왜곡하거나 거부해 왔다. 마귀는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교묘하게 혼란의 씨를 뿌려 왔다.

안타깝게도 교회사 역시 이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여기서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이단들의 역사를 일일이 추적할 시간은 없다. 로마 시대에는 교회 밖 사람들도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이교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신론자라고 주장했으며, 가이사에게 분향하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제국의 반역자라고 불렀다. 또한 서로를 ‘형제’와 ‘자매’라 부르고 예배를 ‘애찬’이라 일컫는다는 이유로 근친상간을 저지르는 자라고 모함했으며,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식인종이라고 주장했다. 중세에는 이름뿐인 기독교도였던 서유럽의 야만족 왕들이 전사들을 이끌고 십자군 원정에 나섰으며, 무슬림뿐 아니라 신앙을 고백하는 동방의 그리스도인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이름에 해를 끼쳤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는 어떠한가? 오늘날 세상은 기독교를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가? 몇 가지 주요한 오해들을 살펴보자.

1. 율법주의 또는 방종: 한편으로, 많은 사람은 기독교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얻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도덕주의적인 규칙들, 곧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묶어 놓은 규율 더미로 여긴다. 이와 정반대로,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부도덕한 것으로 여긴다. 율법 준수와 별개로 오직 믿음으로 용서받는다는 교리가, 궁극적으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마음대로 살게 하는 면죄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도덕적으로 올곧은 많은 사람, 이를테면 무슬림과 힌두교도들은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여기는데, 외설적인 영화와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통해 미국 문화를 접하고는 기독교 자체를 부도덕한 것으로 결론짓고 만다.

2. 정죄하는 태도와 위선: 일부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교만하게 정죄한다. 더 나아가 많은 그리스도인이, 주일에는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나머지 날들에는 그분을 부인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위선을 드러낸다. 참된 기독교는 이 둘 모두를 위한 치료책이다. 구원하는 은혜의 참된 역사는 그리스도인을 철저히 겸손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3. 다른 종교들과 다를 바 없는 선한 도덕적 가르침: 또 하나의 잘못된 생각은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세상의 다른 모든 주요 종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즉, 모든 종교가 기본적으로 황금률과 같은 가르침을 동일하게 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는 독특하다. 참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곧 그분의 십자가 죽음,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그분이 부어 주신 성령에 기초한다. 그 성령께서 그리스도인을 더욱 거룩한 삶으로 이끄신다. 다른 어떤 종교도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신, 그와 같은 인도자에 기초하지 않는다.

4. 삶을 더 좋게 만들어 주는 수단: 오늘날 세상에 가장 널리 퍼진 거짓 가르침은 번영 복음이다. 이 번영 복음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부유하며 ‘지금 이 땅에서 최고의 삶’을 누리기를 원하신다고 가르친다. 좀 더 완화된 형태의 번영 복음은, 사람들이 지금 그대로도 괜찮지만 예수님을 따르면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20세기의 자유주의 기독교도 인간의 기본 본성을 그와 같이 낙관적으로 보는 관점을 토대로 한다.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는 이에 대해 “진노 없는 하나님께서 죄 없는 사람들을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의 섬김을 통해 심판 없는 나라로 인도하신다”라고 가르친다면서 비판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믿는다. 이 거짓된 기독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줄 뿐이다. 몇몇 학자들은 이것을 ‘도덕주의적 치료적 이신론(Moralistic Therapeutic Deism)’이라고 부른다. 그 중심 생각은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치료가 필요하지만 본래 선하고, 하나님께서 어디서든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서로에게 친절하기를 바라시므로, 결국 거의 모든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는 우리의 죄가 지옥에서 영원한 죽음을 받기에 마땅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6:26 참고). 오직 그분만이 그 무한한 어리석음을 치료하실 수 있다.

5. 경멸과 조롱과 미움을 받아 마땅한 기독교: 어떤 이들은 기독교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여기면서 훨씬 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조롱 섞인 농담으로 반응하기도 하고, 노골적인 분노를 드러내기도 한다. 두 반응은 모두 동일하게 기독교를 악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결함이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기독교를 조롱하는 자들은, 그것이 인류가 이미 진화해 뛰어넘은 낡은 도덕이나 원시적인 신화 위에 세워져 있다고 치부하면서, 자신들이 기독교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이미 거부해야 한다고 학습해 온 것들을 성경이 가르친다고 본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이룬 기술적 업적을 내세우면서, 삼천 년 전 사막에서 양 떼를 치며 장막에 살던 원시적인 사람들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더 우월해졌다고 믿는다. 한편 성경이 자신들이 꿈꾸는 완전한 사회상에 적대적이라는 이유로 분노를 터뜨리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성과 젠더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미워한다. 그들은 기독교를 퇴행적이고 억압적이며, 편협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반과학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여성 혐오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이며, 성차별적인 종교로 본다. 이런 각각의 공격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완전한 성경의 진리를 선포함으로써 반박할 수 있으며, 또 반드시 반박해야 한다.

6. 문화에 근거한 종교: 기독교는 수 세기 동안 온 세상에 선포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 종종 더 정확하거나 덜 정확한 형태로 여러 나라와 민족의 문화 속에 녹아들었다. 이런 현상은 바이블 벨트의 복음주의, 아일랜드와 폴란드와 이탈리아와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로마 가톨릭, 그리스와 슬라브 여러 나라의 정교회에서 나타난다. 이런 지역에서는 기독교를 그저 하나의 문화적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이와 같은 문화권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흔히 무기력한 명목주의 속에서 자라난다. 그들에게 그 지역의 기독교는 아무런 영적 능력도 없는, 그저 언어나 의복이나 음식처럼 문화적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진실로 회심한 사람들은 삶 가운데 참된 기독교의 능력을 날마다 드러냄으로써 이런 오해에 반박한다.

이것들은 사탄이 비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심어 둔 수많은 ‘가라지’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참된 기독교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선포하는 데서 나오며(딤후 2:15 참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고 사랑이 넘치는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데서 드러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앤드류 M. 데이비스

앤드류 M. 데이비스

앤드류 데이비스(Andrew M. Davis) 박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있는 제일침례교회(First Baptist Church)의 담임목사이자 ‘투 저니스 미니스트리(Two Journeys Ministry)’의 설립자이다. 그는 『이제 드러나는 영광: 천국에서 우리가 깨닫게 될 하나님』(The Glory Now Revealed: What We’ll Discover About God in Heaven)을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