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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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시련, 유혹, 그리고 믿음의 시험”의 열 여덟 번째 글입니다.

몇 년 전, 목격하는 것 만큼이나 처음 듣는 것이 낮설었던 현상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 렌즈가 없는 안경을 쓰고 다니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발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과거보다 안경을 쓰는 것이 문화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나도 안경을 착용한다. 안경이 나를 더 똑똑해 보이게 해주는 것 같아서이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도 말이다.

잠언 17장 28절은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범주 오류를 주의해야 한다. 안경을 쓴다고 해서 반드시 똑똑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시력이 나쁘다는 의미이다.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 말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언 17장 28절에서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침묵하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주님의 형제의 가르침을 마음과 생각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야고보는 완전한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쉽게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중요하며, 이것이 바로 야고보가 말과 분노를 밀접하게 연결한 이유이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3장에서 일련의 부정적인 은유를 통해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그는 혀의 인도하는 힘을 배의 키로, 혀의 발화력을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로 설명한다(3:4-5). 작은 불꽃이 산불을 일으켜 집을 태우고,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다 줄 수도 있는 배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좌초될 수도 있다. 야고보는 우리를 인도하는 말의 특징이 되어야 할 자질을 목록으로 제시한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17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말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같은 특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혀에 대한 야고보서의 첫 번째 주요 가르침은 타이밍에 관한 것이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것이다.

다음에 누군가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불쾌하게 하거나,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는 신념을 비웃거나, 다른 관점을 주장할 때, 거기에 대응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갖고 천천히 말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점은 경험을 통해 사실로 알고 있지만, 야고보서 1장 19절에 나오는 두 가지 명령의 순서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더욱 강조할 수 있다.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명령이 “성내기를 더디 하라”는 명령 앞에 오지 않고, 반대로 “성내기를 더디 하라”는 명령이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명령 앞에 오면 어떨지 생각해 보자. 이 순서를 뒤집는 것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절제되지 않은 혀에서 오는 풀림을 경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어떤 말을 하면, 우리는 보통 먼저 분노를 경험하고, 이것이 우리가 성급하게 말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말을 느리게 하기 이전에 화를 느리게 낸다고 생각하면, 화를 낼 때 후회할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한다. 말하기는 두 번째가 되어야 한다.

야고보서의 명령을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것이 우리의 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야고보가 이러한 명령을 내리는 순서에는 더 많은 의도가 숨어 있다. 지금 그는 우리의 타락한 경험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거스르고 있다. 그는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한다. “듣기는 속히 하고”라는 명령을 맨 앞에 놓음으로써 그는 우리가 공격적이거나 어리석은 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해야 할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수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신속히 행해야 할 일이 우선이라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가? 우리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한다. 말하기는 두 번째가 되어야 한다. 먼저 분노를 경험하고 나서 입을 열고 귀를 닫으려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경향에 굴복하기보다는 먼저 듣고 나서 의롭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선하셔서 우리 자신의 몸에 이 교훈을 주셨다. 생각해보라. 귀를 닫을 수 있는가? 아니다. 하지만 입을 닫을 수는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만드신 방식에 비추어 볼 때, 속히 듣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빨리 말하는 것은 타락하고 부자연스러운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속히 듣고자 하는 욕구는 의견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려고 할 때 특히 중요하다. 우리 시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의견 충돌은 많지만, 우리의 문화적 순간은 열띤 논의처럼 가열되어 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소통할 때 특별히 속히 듣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와 말 한마디 잘못하면 관계를 망치고 증언을 망칠 수도 있지만, 속히 들으면 재치 있고 사랑스럽게 진실을 말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세상에 대해 어리석거나 죄악된 것들을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다. 잘못된 세계관은 렌즈가 없는 안경과 같다.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지 않으면 어떤 조정이 필요한지 알 수 없고, 진실을 위한 교정 렌즈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없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이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기도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마이클 오스틴
마이클 오스틴
마이클 오스틴(Michael O’Steen)은 리고니어 미니스트리의 제작 매니저이자 플로리다 샌포드에 있는 레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의 기독교 사상 겸임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