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의는 무엇인가?
2023년 08월 01일
예배 참여
2023년 08월 04일게으름과 유혹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교만과 겸손”의 열다섯 번째 글입니다.
성경은 게으름에 대해 상당히 자주 언급하고 있지만 긍정적이지는 않다. 잠언에 나오는 게으른 자의 특징은 나태하고 가난에 찌든 모습이다(잠 15:19; 24:30-34). 일하지 아니하는 게으른 자는 먹지도 못할 것이다(20:4). 일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완전한 어리석음이다. 게으름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성경의 명령에 반대되는 성향이다(창 1:26-28). 따라서 게으름은 하나님의 축복을 추구하는 것과 갈등 관계에 있고, 일관되게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으로 묘사된다(잠 12:27, 19:15). 결국 게으름은 멸망으로 이끈다(잠 18:9; 전 10:18).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게으름에 대해 경고하고 경건한 근면의 모범으로 자신의 삶을 제시한다(고전 15:10; 살전 2:9; 살후 3:6-11). 마찬가지로 그는 성령의 열매인 절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갈 5:22-23). 바울은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의 윤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근거는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다 해도 바울의 글은 우리가 주를 위해 일할 때 부지런히 일하라는 잠언의 요구와 일치한다.
성경은 우리가 건설적이고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이것은 성숙의 표시이며 우리를 축복으로 이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수고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지만, 게으름의 위험성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게으름은 다른 죄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으름은 유혹의 시녀이다. 이것은 가시덤불을 낳고 나아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의 유혹을 낳는다(약 1:14-15). 우리가 별것 아닌 것이나 또는 우리 자신에게만 집중할 때 죄의 유혹에 더 쉽게 노출된다.
따라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유혹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략이다. 너무 많은 여가 시간을 가지거나 긍정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더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는 일을 하고 창조하도록 만들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앉아 있거나 TV 쇼를 몰아서 보거나 기기에서 “둠 스크롤링(doom scrolling, 나쁜 상황에 대한 뉴스만을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행위)”과 같은 움직임이 적은 활동은 죄의 유혹에 비옥한 토대를 제공하는 꼴이 되어 나태한 정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으름은 또한 우리를 우리 자신의 문제에만 몰입하게 함으로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주변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일에 집중하면 유혹에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렇게 게으름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성경적 진리로 채우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화와 마찬가지로 게으름의 위험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일반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성화는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음을 지키고(시 119:9-11 참조) 은혜의 방편(말씀, 성례, 기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88 참고)을 사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건설적인 일을 하는 것은 우리를 유혹에서 벗어나게 한다. 특별히 성경적 진리에 초점을 맞추고 일치할 때 그렇다. 자연이 진공을 싫어한다면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즉 우리 마음을 적극적으로 성경적인 진리로 채우지 않고 – 건설적이고 성경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 죄성이 있는 우리 마음은 우리를 파괴적이고 비성경적인 방향(이 세상의 기준을 따르려는)으로 끌고 가기 쉽다. 일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직장에 다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그럴 수도 있지만).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세상에서 사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부름 받은 일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다. 밖으로 나가라. 하이킹을 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스포츠를 즐기라. 요리와 게임을 위해 이웃을 초대하라. 음악을 틀어라. 공예품, 목공 프로젝트, 또는 그림 등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무언가를 만들라. 숭고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라. 활동적인 일은 육체적인 나태함과 맞물려 찾아오는 영적인 나태함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일하는 것은 우리가 유혹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 타협적인 상황에 처할 수록 더 자주 유혹 받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대신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일에 집중하면 유혹에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우리는 너무 쉽게 지루해 하고, 게으름에 너무 열심이다. 이것은 대부분 우리 자신에게 너무 집중하기 때문이다. 삶의 다른 모든 면에서도 그렇지만, 이런 투쟁에서도 우리의 구세주를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결코 게으르거나 나태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그분을 만날 때, 예수님은 자신이 하러 오신 일에 열중하셨다(눅 2:49; 요 4:34; 5:17, 36). 예수님은 자신에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이나 자신이 이루러 온 사명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당연히 구세주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그분의 경건과 근면의 모범을 배울 수는 있다. 게다가 그분의 사역은 실제로 우리를 구원한다. 그분의 사역은 우리 자신과 우리와 관련된 부적당한 일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소망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분의 사역은 쓸모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전적인 순종은 온전하며,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신 칭의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범 그 이상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시다. 우리가 게을러서 자신에게만 너무 집중할 때, 우리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우리의 위대한 예언자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왕이신 구세주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을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셨고, 우리의 어리석음에서 우리를 건져주신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수고가 구원을 가져오지는 않지만, 그것이 헛되지 않다는 사실에 더 큰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전 15: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