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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과 부지런함


16세기 종교개혁이 오래도록 남긴 유산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예컨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등이다. 그런데 종종 간과되는 또 하나의 종교개혁의 표지가 있다. “개신교 직업 윤리”라는 유명한 문구는 바로 그 표지를 잘 간직하고 있다. 이는 “정직한 하루 일의 대가인 정직한 하루 품삯”과 같은 표현들과도 연결된다. 그런데 이것이 개신교 직업 윤리라고 불리는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종교적이거나 교회와 관련된 일만이 아니라) 모든 합법적인 일이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다는 사상을 분명히 밝히고 다시금 확립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노동이 존엄하다는 성경적 개념을 회복했다.

게으름과 나태함을 매우 엄중하게 책망하는 수많은 성경 구절만 살펴보아도, 성경이 인간의 노동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 12:2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잠 20:4).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 21:25).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 3:10–12). 이런 구절들은 건강한 사람이 일하지 않는 것이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님을 보여 준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 8절에서 이 점을 가장 분명하게 밝힌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개신교 직업 윤리는 정직하게 일해야 한다는 덕목만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잠언 18장 9절은 이를 잘 담아낸다.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잠언 전반을 살펴보면, 단지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칭찬을 받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타락한 상태 때문에, 어떤 이들은 게을러서 일하기를 거부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일하면서도 나태하고 부주의하다. 죄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들은 일하는 것을 이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오로지 금전적인 측면만을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사실이나 그분께 영광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에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다. 그들은 일하는 것을 그저 돈을 벌어 자신을 위한 것들을 얻는 수단으로만 여긴다.

또 어떤 이들은 죄로 말미암아 일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가족은 물론 자신의 영적 유익까지 등한시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서 흔히 보이는 성취 지향적이고도 일중독적인 사고방식이 성경에서 요구하는 부지런함인 양 행세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기만이다. 우리가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하나님과 가족의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죄로 말미암아, 어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내세워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고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낮추어 보기도 한다. 우리 문화에는 화려해 보이는 직업이 넘쳐난다. 우리는 그런 직업이 주는 지위에 속아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이는 ‘화려한’ 직업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노동과 인격과 존엄성을 깔보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인은 그처럼 왜곡된 노동관을 경계해야 하며, 자신에게서 그런 생각을 발견하면 회개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노동을 논할 때는 마땅히 안식일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 창세기 2장 3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우리는 노동을 통해 창조주를 드러내고 영화롭게 하듯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도 그분을 드러내고 영화롭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노동을 올바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궁극적인 안식이자 안식일이 되신다고 선언한다(히 3:7–4:10 참고).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묵상할 때, 우리의 감사가 되살아날 뿐 아니라 우리가 삶과 일을 언제나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 직업 윤리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가? 게으름과 무위와 나태함은 우리의 창조주를 거스르는 인간의 반역을 드러내며, 그분의 영광을 욕되게 한다.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세상이 빚어 가도록 내버려 두면, 자신의 직업을 우상으로 삼기 쉽다. 그저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그리할 때 나태함이 틈타지 못하며, 단지 사람만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이 게으름과 나태함을 얼마나 엄중하게 경고하는지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노동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켄 존스

켄 존스

켄 존스(Ken Jones) 목사는 마이애미에 있는 글렌데일 선교 침례교회(Glendale Missionary Baptist Church)의 목사이다. 또한 그는 『진리를 경험하라: 아프리카계 미국인 교회에 개혁주의를 전하다』(Experiencing the Truth: Bringing the Reformation to the African-American Church)의 공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