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소: 하나님의 임재
2026년 09월 02일사랑의 동기
C.S. 루이스(C.S. Lewis)는 20세기 고전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에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우드에게 편지를 보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이유에 관한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그린다. 그는 이렇게 쓴다.
“사실 내가 원수가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건 단순한 부주의로 저지른 실수였다. 당연히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사랑에 관해 그가 한 말들은 모두 무언가를 감추려는 위장술이 분명하다. 그가 인간을 창조하고 나서 그렇게나 수고롭게 애쓰는 데는 틀림없이 진짜 동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우리가 진짜 동기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는 인간들에게서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이것을 밝히는 것이 우리의 중대한 과업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의 진짜 속셈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답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악마들의 건투를 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그 답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신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16 참고). 그러므로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타락하기 전 죄 없는 상태에 있을 때도 우리를 사랑하셨고, 타락한 상태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 5:44,45)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 사역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이며, 우리를 완전히 압도한다.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는 이 사랑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어찌하여 내게 이토록 넘치는 사랑을 베푸셨는가? 위에 계신 나의 대언자께 물어보라! 이제 은혜의 보좌 앞에 계신 예수님의 얼굴에서 그 이유를 보라.
구주께서 나를 위해 그곳에 서 계시니, 자신의 상처를 보여 주시고 두 손을 펼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내가 알고 느끼는 바라.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성경에 나타난 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 불을 붙인다. 이처럼 엄청난 사실들 앞에서 우리가 어찌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치르신 희생은 하나님을 향해 차갑게 식은 우리의 마음을 덥히는 난로와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희생을 생각하면, 우리 같은 설교자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지나치게 큰 희생이란 없다. 성령은 이 진리를 사용해, 우리 영혼에서 불길이 계속 타오르게 하신다. 그리하여 우리의 열심은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아이작 왓츠(Isaac Watts)의 유명한 찬송은 마지막 연에서 이 진리를 매우 잘 담아낸다.
“온 세상 만물이 다 내 것이라 해도,
주님께 드리기에는 너무나 작을 뿐이라.
이토록 놀랍고도 거룩한 사랑은
내 영혼과 생명, 나의 전부를 요구하네.”
나아가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 사랑으로 응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는 이들에게도 애정을 쏟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그분의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경고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라고 간절히 권면하기 위해 땅과 바다를 건널 것이다. 참으로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바울의 권면에는 그런 뜻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14,20).
이 사랑이 복음 전하는 사역을 이끄는 힘이 되지 못한다면, 아마도 우리의 잠재력은 충분히 발휘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그분을 사랑할 때, 우리는 또한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백성이 우리에게도 매우 소중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도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7–19).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능력과 힘을 다해 수고하고 애쓴다.
루이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지옥의 악마들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 뒤에 숨은 진짜 동기를 밝혀내려고 분주히 애쓰는 동안, 우리는 바로 그 사랑에 이끌려 하나님뿐 아니라 그분이 창조하고 구속하신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존 켄트(John Kent)의 표현을 빌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 내 영혼아, 이토록 크고도 풍성하며 값없는 사랑을 늘 묵상하라. 거룩한 경이로움에 잠겨 고백하라. 오 주여, 어찌하여 제게 이런 사랑을 베푸셨나이까? 할렐루야! 은혜가 영원토록 다스리리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