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은 근본적으로 선한가, 전적으로 악한가?

2026년 08월 04일

결혼은 영원한가?

2026년 08월 11일

인간 본성은 근본적으로 선한가, 전적으로 악한가?

2026년 08월 04일

결혼은 영원한가?

2026년 08월 11일

예수님은 우리의 본이신가?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

어떤 의미에서는 답하기 쉬운 질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이신가? 그렇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이시다. 그런데 그분을 단지 본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분을 본받는 것이 우리 믿음의 기초는 아니다.

그리스도만 행하실 수 있는 구속 사역

베드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려고 본을 끼치셨다’고 말하기 전에,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벧전 2:21)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은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실 때,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며, 우리를 위해 상하심으로 우리를 낫게 하셨다(벧전 2:24 참고). 우리는 양과 같이 길을 잃고 헤매던 자들이었으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루실 수 있는 그 사역으로 죄에서 구속받아 거룩한 삶을 살게 되었다(벧전 2:25 참고).

예수님은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일을 이루셨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든 결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죄인들을 그들의 죄가 가져올 영원한 결과에서 구속하기 위해 죽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해 자신을 내주셨다. 그리스도는 그분을 믿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

사복음서는 우리가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시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복음서의 첫째 되고도 주된 요지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요한은 이를 매우 분명히 기록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분을 본받는 삶

예수님의 자취를 따르려는 이들에게 복음서는 얼마나 풍요로운가! 그분이 이루신 사역의 본질은 우리가 결코 따라 할 수 없지만, 그분의 인간적인 삶과 말씀과 행위에는 본받을 만한 놀라운 것이 가득하다. 우리와 같이 참된 인간으로서 예수님은 살과 피를 지니고 사시는 가운데, 대적하는 죄인들과 타락한 세상의 흐름에 맞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자 애쓰셨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한 유일한 대속 제물이시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 위해 따라야 할 보편적인 본이 되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불러 자신에게서 배우고 자신의 자취를 따르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그분은 마태복음 11장 29,30절에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제자배우는 사람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제자란 그분의 삶과 가르침에서 배우고, 그 본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지닌 구속의 공로를 재현할 수 없다. 다만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분이 보여 주신 바 자신을 낮추고 내주신 사랑을 본받을 수 있으며, 참으로 본받게 될 것이다.

사도들도 우리에게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권면한다.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라고 말한 뒤, 십자가와 부활에 나타난 바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의 본과 영광을 다시금 일깨운다(6–8절 참고). 마찬가지로, 요한도 첫 번째 서신에서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라고 말한다. 곧 자신을 내주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랑의 길을 걸어가라는 것이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능력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 이 점을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표현으로 담아낸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렇다. 바로 경건이다. 여기에는 무엇이 포함되는가? 우리는 곧바로 미덕이나 의로운 행위들이 나열되리라 예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울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본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어서 우리는 예수님을 찬송하는 말씀을 보게 된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경건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분이 성육신하신 ‘경건’이시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은 경건한 정서와 행위를 흔히‘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고 일컬어 왔다. 우리 믿음의 중심에는 우리가 따라 할 수 없는 그분의 구속 사역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본은 놀랍도록 본받을 만한 그분의 인간적인 삶이다.

우리는 복음서를 읽으면서 그분의 행적에 감탄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죄인들을 위해 완성하신, 대체할 수 없는 그 사역을 경외한다. 또한 사람들을 만나고 기도하며 설교하고 긍휼을 베풀며 쉼을 위해 물러나셨다가 다시 돌아와 은혜를 베푸시는 그분의 모습을 바라본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인내와 지혜를 살피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능력으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힘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마티스

데이비드 마티스

데이비드 마티스(David Mathis) 목사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에 있는 시티즈 교회(Cities Church)의 목사이며, ‘디자이어링 갓(desiringGod.org)’의 총괄 편집자이다. 저서로는 『은혜받는 습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3가지 영적 습관』(생명의말씀사 역간, 2016)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