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은 영원한가?
2026년 08월 11일교회는 위선자들로 가득한가?
약 삼십 년 전, 친한 친구이자 동역자인 아치 패리시(Archie Parrish)가 나를 찾아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당시 그는 포트로더데일에서 전도폭발(EE)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었다. 전도폭발 팀들은 수천 차례 전도 방문을 하는 동안,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가장 자주 제기한 질문과 반론을 모아, 가장 빈번하게 마주치는 열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패리시 박사는 전도자들이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그 반론들에 답하는 책을 써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반론에 대한 답변』(Objections Answered)이라는 내 책이 출간되었다. 지금 그 책은 『믿을 이유』(Reason to Believe)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가장 많이 제기된 열 가지 반론 중 하나는, 교회에 위선자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당시 제임스 케네디(D. James Kennedy) 박사는 이 반론에, “글쎄요, 한 사람 더 들어올 자리는 언제나 있지요”라고 답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교회를 찾거든 거기에 등록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들이 들어가는 순간 그 교회를 망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위선자’라는 말은 그리스의 연극 세계에서 유래했다. 이는 배우들이 특정한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 쓰던 가면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늘날에도 연극은 희극과 비극이라는 두 가지 가면으로 상징된다. 고대에는 한 배우가 여러 배역을 맡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가면을 얼굴 앞에 대어 자신의 배역을 나타냈다. 바로 여기에서 위선이라는 개념이 비롯되었다.
그런데 교회에 위선자가 가득하다는 비난은 명백히 거짓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그리스도인도 성화를 온전히 이루지 못하며,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죄와 씨름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위선자라고 단정 짓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위선자란 자신이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 기독교회를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이들을 보고, 그들이 죄를 짓는 모습도 목격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죄를 보는 까닭에 그들을 위선자로 단정 지어 버린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 죄를 짓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위선자이다. 그러나 단지 그리스도인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이유로 그를 위선자로 정죄할 수는 없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앞뒤가 뒤바뀐 논리이다. “모든 위선자는 죄인이다. 요한은 죄인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위선자이다.” 논리 법칙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삼단논법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교회에는 위선자들이 가득하다”라는 비난을 “교회에는 죄인들이 가득하다”라는 말로 바꾸기만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내가 알기로, 교회는 회원이 되기 위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야 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교회는 자기 죄를 고백하는 죄인들이 그 죄에서 구속받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며, 따라서 교회에는 죄인들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단지 교회에 죄인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만으로 교회가 위선자들로 가득 차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다시 말해, 모든 위선은 죄이지만, 모든 죄가 위선의 죄는 아니다.
신약 시대에 나타난 위선의 문제를 살펴보면, 위선은 자신이 가장 의롭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리새인들은 이름 그대로, 자신들을 대중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죄악과는 관련이 없는 존재로 여기는 집단이었다. 그 출발점은 좋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경건한 삶을 살며,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기를 추구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행실이 이상에 미치지 못하자, 그들은 가식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실제보다 더 의로운 사람인 척했다. 그들은 겉으로 의로운 체했지만, 실상 자신들의 삶에 뿌리 깊게 자리한 부패를 감출 뿐이었다.
교회가 위선자들로 가득 찬 것은 아니지만, 위선이 신약 시대의 바리새인들에게만 국한된 죄가 아니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위선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씨름해야 하는 죄이다. 교회에는 영적이고도 의로운 행실에 관해 높은 기준이 주어져 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높은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실제보다 더 높은 의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가장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위선자의 가면을 쓰게 되고, 바로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된다. 이런 가식에 얽매인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 머릿속에는 경종이 울려야 한다. 그리하여 얼른 십자가와 그리스도께로 돌아가, 우리의 참된 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라는 온전한 옷을 찾아야 한다. 참으로 누구든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을 때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소망을 가질 수 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은 위선이 아니라 구속의 행위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