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하나님의 나라 

2026년 04월 18일

성전 

2026년 0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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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성경적 예언 이해하기”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 대답은 그 사람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 준다. 그가 누구와 관계가 있는지, 어떤 문화에 영향을 받았는지, 심지어 무엇을 좋아하는지(음식, 취미 등)에 관한 단서까지 보여 준다. 유익한 많은 대화가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디에서 왔는가보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물론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세상적인 정체성이 있겠지만, 그런 것은 우리를 진정으로 규정하지 못한다. 사실 성경은, 우리가 한때 이 땅에서 우리를 규정했던 세속적인 정체성의 표지들을 뒤로한 채 떠나게 된다는 점을 자주 강조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롭고도 더 나은 하늘의 정체성이 우리를 규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하늘의 유업을 약속하는 말씀을 묵상하고, 그 약속이 이 악한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자.

베드로는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서신에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그들은 저마다 다르게 대답했을 것이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벧전 1:1). 말하자면, 출신지에 관한 한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없었다. 그들은 나그네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디에서 태어났든, 이제 그들은 씨앗처럼 온 세상에 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흩어짐’은 우연이나 임의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 곧 “택하심을 받은 자들”(2절)이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주권적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하심을 받았다(2절 참고). 베드로가 다음 절에서 밝히듯이, 하나님의 택하심은 언제나 분명한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거듭남을 위해 택함을 받았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셨다(3절 참고). 이 대목에서 땅과 기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많은 면에서 ‘어디서 왔는가?’ 하는 질문과 결속되어 있었다. 그 백성은 ‘가나안’,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고 주신 땅에서 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그 땅을 주리라 맹세하셨다(창 15,17장 참고). 또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동안 그 땅을 사모하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그들을 출애굽시키셨으며, 그 땅에 들어가도록 그들을 인도하셨다. 그 땅은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의 표징으로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규정했으며, ‘그분이 그들의 하나님이시며 그들이 그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드러냈다.

흩어진 수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인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는 이 관계를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그들에게 아픔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과 그들의 하나님을 여전히 가장 잘 드러낸다. 그들이 어느 지역 출신이든, 그들은 이제 박해를 받아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당시 로마는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배타적이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이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신론자’ 취급했으며, 특히 가이사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박해했다. 이처럼 초대 교회 사람들은 박해를 받았고, 이 세상의 고국에서 멀어졌다. 이런 그들에게 베드로가 전한 말과 그들을 묘사한 방식은 신학적으로 옳았을 뿐만 아니라, 목회적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이 나그네들 중 많은 이들은 이 땅에서의 집과 기업에서 소외된 상태였다. 당시에 땅은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전부였다. 그들이 이제 모든 소유를 빼앗기고 궁핍해진 것이다. 은행 계좌나 개인 퇴직 연금(IRA), 사회 보장 제도가 없던 세상에서, 그들이 매달릴 것이라고는 그리스도와 다른 성도들뿐이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떻게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가?

베드로는 그들을 그리스도와 하늘로 이끈다. 그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때 알았던 썩고 더러워지며 잃어버릴 수 있는 땅보다 훨씬 나은 것을 가졌다고 말한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벧전 1:4) 소유하게 되었다. 땅의 것은 하늘의 것과,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과, 더러워진 것은 더럽혀지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이것은 참으로 놀랍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 자체는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 성경은 “주시는 땅이 좋더라”(신 1:25),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민 14:7)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원수들에게 빼앗길 수 있고, 죄로 더러워질 수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잃어버릴 수 있는 땅이었다. 반면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땅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땅은 우리를 위해 그것을 창조하고 보존하시는 분만큼이나 순결하고 거룩하며 영원하다. 그것은 하늘이요, 하늘에 속한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오신 곳이며,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곳이다. 예수님께 “당신은 어디서 왔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분은 “하늘”이라고 대답하실 것이다. 예수님께 “당신은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다면, 역시 “하늘”이라고 대답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고, 다시 하늘로 가셨다. 그렇게 돌아가시는 문은 바로 십자가였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그에 뒤따르는 죽음을 통해 하늘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하늘로 돌아가신 그분은 다시 고난을 받거나 자신의 기업(그분의 백성과 그분의 처소)을 잃어버릴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부활하심으로써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셨으며, 그리하여 자신과 우리의 하늘 기업을 확고히 하셨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집과 사람과 터전을 떠나 소외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유업은 우리를 위해 그것을 확보하신 분만큼이나 영원하고 쇠하지 않으며 영광스럽다. 성경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상기시킨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의 궁극적인 유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확보하신 것으로부터 우리를 떼놓을 수 없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에릭 왓킨스

에릭 왓킨스

에릭 왓킨스(Eric B. Watkins) 박사는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에 있는 소금과 빛 개혁교회(Salt and Light Reformed Church)의 목사이며, 인디애나주 다이어에 있는 미드아메리카 개혁신학교(Mid-America Reformed Seminary)의 선교 및 전도 센터 소장이다. 또한 그는 『설교라는 드라마』(The Drama of Preaching)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