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들려주는 이야기 

2026년 05월 23일

작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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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거룩함을 추구하라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성윤리”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성적인 죄와 외부에서 밀려오는 성적인 죄로 씨름한다. 한편으로, 신자들은 성적 일탈을 마치 미덕인 양 내세우고 노골적인 노출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그런 것을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용인하는 문화 가운데 살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로 오라. 너의 성적 정체성을 찬양하라.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행하라.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슬프게도 많은 이들이 그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자기 삶을 망쳐 버렸다(잠 7장 참고).

다른 한편으로, 신자들은 종종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정욕 앞에서 무력함을 느낀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런 경험을 수치스러워하면서 이 문제를 홀로 짊어지고는, 어쩌면 이 깊은 씨름이 자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생각에 빠진다. 그래서 많은 신자가 죄책감을 안고 침묵 속에 살면서, 언젠가 이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한편, 마음속에 자리한 강력한 정욕을 이겨 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여긴다.

덧붙여, 마태복음 5장 28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면 이 문제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죄임을 알게 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누가 먼저 돌을 던지겠는가?

신자들은 흔히 성적인 죄 앞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수치심을 느끼며, 그것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적인 죄와 싸우는 신자에게 참으로 복된 소식이 있다. 주님은 성적인 행실에서도 거룩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렇게 명령하신 주님께서, 또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성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해 우리를 도우겠다고 약속하신다는 사실도 신뢰할 수 있다.

싸움을 위한 격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도 음란물 중독과 싸우고, 음행을 저지르며,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하고, 단정하지 못한 옷을 입으며, 음란한 생각과 욕망을 품는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죄에 빠져 사는 자들과, 성적 죄와 싸우되 경건한 슬픔 가운데 참된 회개로 나아가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이를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요한일서 3장 6절은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요한은 그리스도인이 그런 식으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의도적이고도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들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계속 죄를 짓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보지도, 알지도 못한 자들이라고 응답한다.

참된 신자는 성적 죄를 앞서 요한이 말한 바와 같이 대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격려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성적 순결함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성적 부도덕을 삶의 방식으로 따르는 것과, 유혹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그것을 피하고 설령 죄를 범했더라도 거기서 돌이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여기서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적 거룩함을 이루어 가도록 돕는 중대한 교훈을 제시한다. 이것은 노골적으로 율법폐기론적이고도 방탕한 성적 행실을 따르는 삶과는 전혀 다르다.

신자들은 성적인 죄와 맞서 싸워 경건한 회개에 이르는 것 자체가 성령께서 행하시는 성화 사역의 증거임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신자의 마음속에서 죄를 두고 벌어지는 전쟁을 묘사하고,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17절)라고 일깨움으로써 신자를 격려한다. 바울은 죄를 변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거듭난 마음과, 영화에 이를 때까지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의 몸을 구별하고 있다.

이렇게 속사람과 겉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죄가 계속 남아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는 영화에 이를 때까지 온전해지지 않는다. 신자는 죄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해서 자신이 불신자가 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 싸움 가운데 신자의 삶에서 나타나는 참된 슬픔과 회개는, 비록 그것이 미미한 시작에 불과할지라도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증거이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4문답 참고).

이 진리를 인정하는 것이 성적 거룩함을 함양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자가 죄를 범했을 때, 마치 불신자인 양 죄 속에 주저앉아 있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 오히려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귀하게 여기고, 끊임없이 주님께로 돌이켜 죄를 자백해야 한다. 미쁘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죄를 사하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요일 1:9 참고). 우리는 그 복음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 죄와의 싸움 자체가 참된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증명한다.

이 싸움을 돕는 실제적인 방법

주님은 성경을 통해, 성적 거룩함을 이루어 가도록 돕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첫 번째로, 성경은 신자가 성적 유혹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맞서 ‘싸워야’ 할 많은 죄를 알려 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 있다. 즉, 두 가지 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에게 그 자리에 서서 싸우지 말고 오히려 피하라고, 곧 방향을 바꾸어 가능한 한 빨리 달아나라고 명령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분명하게 말한다. “음행을 피하라”(고전 6:18).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14). 이런 맥락에서,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 요셉을 떠올릴 수 있다.

우상 숭배와 성적 부도덕이라는 뿌리 깊은 죄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그러하기에 성경은 신자들에게 이 두 죄악을 피하라고 요구한다. 구약은 이 죄들이 이스라엘의 마음을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풍성하게 기록한다. 솔로몬이 수많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끝에 얼마나 크게 넘어졌는지를 떠올려 보기만 해도 그것을 알 수 있다(왕상 11:9 참고). 성적인 죄의 결과를 아는 사람은, 그것이 우리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어 주님께 충성하지 못하게 하며, 결국 우리를 점점 더 고립시킨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가 성적인 죄와 싸울 때 따라야 할 실천적 방법은 간단하다. 곧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자가 성적인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 발을 들이게 되면, 그 유혹이 죄악된 인간의 욕망과 정욕을 만나 실로 너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해, 결국 어떤 형태로든 성적 일탈로 이어지고 만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신자는 성적 부도덕으로 이어지는 이런 상황들을 깨어 분별하고 경계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진다. 그처럼 악한 죄의 문을 여는 환경과 상황을 버리지 않고서는 성적인 죄를 이길 수 없다. 바로 이런 요점을 담아, 예수님은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마 5:30)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마음속에서 정욕이 움트도록 부추기는 모든 상황을 피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성경은 성도가 성적인 죄를 피할 수 있도록, 두 번째 방법도 제시한다. 이 방법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진리 안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음란물에 빠진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성적 쾌락을 느낄 때 우리 뇌의 보상 중추에서 가장 큰 도파민 반응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음란물은 사람의 보상 중추를 닳게 만들고 보상 회로를 손상시키며 뇌를 위축시켜, 결혼 안에서 성을 누리도록 설계하신 하나님의 선한 질서를 망가뜨린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윗은 자신의 죄가 뼈를 쇠하게 하고 기력을 빼앗아 갔다고 묘사한다(시 32:3 참고). 좋은 소식은 음란물을 끊으면 이런 손상을 되돌릴 수 있고, 뇌의 회로도 정상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가운데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고 강하게 하라고 부르신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안다(롬 12:2 참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성적 거룩함을 이루어 가려면,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거룩한 연합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면서 날마다 깨어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진리를 모든 형태의 성적 부정함을 막는 중요한 제동 장치로 본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7–20).

우리 몸을 성적으로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은 더럽고도 속된 것을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성적 부도덕을 막기 위해 바울은 소름 끼치는 질문을 던진다.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전 6:15).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 안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과 합하여졌다. 우리는 옛 아담과 성적 죄의 종노릇하는 데서 벗어나 그리스도께 연합되었으며, 그리하여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라는 엄숙한 부르심을 받는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사실이 된 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곧 우리는 그분의 몸에 연합된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성적 부도덕이라는 옛사람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려고 죽으셨으며, 자신의 형상으로 빚어 가려고 우리를 자신과 연합시키셨다. 이 진리를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거룩함과 순결함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 배우자

성적 거룩함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가 이 땅에서 품는 육체적·관계적 욕구를 결혼 안에서 합당하게 누리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이 은혜로운 장치가 성적 부도덕을 막는 강력한 방패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성적 욕구와 친밀함이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충족되도록 설계하셨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히 13:4). 성적 부도덕은 이와 같이 사람이 초래하는 나뉨의 큰 원인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당신과 짝지어 주신 배우자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그 사람을 바라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선물이다. 당신의 배우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돌보시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당신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며, 그 사랑과 친밀함을 다른 누구와도 절대 나누지 않기를 원하신다. 이 설계 안에는 지극히 아름다운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자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라고 우리를 위해 택하신 배우자를, 우리가 어떻게 성적인 죄를 지음으로써 그렇게 쉽게 상처 입힐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성적 순결을 지키도록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이 특별한 선물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교회를 사랑하시는 신비를 결혼을 통해 드러내 보여 주는 구체적인 방편이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잠 5:15,17). 당신은 거기서 만족스럽고도 온전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랑을 누릴 것이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여, ‘음행을 피하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자녀요 세상과 구별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크리스토퍼 고든

크리스토퍼 고든

크리스토퍼 고든(Rev. Christopher) 목사는 캘리포니아 에스콘디도(Escondido, California)에 있는 에스콘디도 연합 개혁 교회(Escondido United Reformed Church)의 담임 목사이고 어바운딩 그레이스 라디오(Abounding Grace Radio) 진행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