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기적
2026년 09월 15일오늘날의 기적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적들”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
서구 사회는 기적이라는 개념을 한낱 문학적 수사로 전락시켰다. 즉, 기적을 비범한 일, 곧 드물거나 예상치 못하거나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을 묘사하는 관용적 표현 정도로 여길 뿐이다. 극심한 교통 체증에 갇혀 있다가 저녁 식사 자리에 도착한 어느 부부는, “우리가 제시간에 온 건 기적이에요”라고 감탄한다. 한 여성은 상담가의 도움으로 결혼 생활이 회복된 일을 친구에게 설명하면서, “그분은 기적을 일으켰어”라고 말한다. 한 남성은 어머니가 위험한 수술을 받은 일을 두고, “어머니가 그 수술을 견뎌 내신 건 정말 기적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 문화는 흔히 그런 식으로 ‘기적’이라는 말을 차용해 왔다. 적어도 이런 풍조는 대부분의 사람이 드물고 비범하며 일어날 법하지 않은 섭리를 기적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동시에, 오늘날 신앙을 고백하는 많은 이들은 자신이 믿음을 발휘하면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두 경우 모두, 성경에 나타난 기적의 본질과 목적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적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오늘날에도 기적을 기대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먼저 성경에 나타난 기적의 특징들을 살펴, 기적에 관한 실질적인 정의를 확립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구속사에서 기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성경의 가르침을 고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기적과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를 구별해야 한다. 그리할 때, 오늘날에도 신자가 기적을 바라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더 올바로 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적의 특징적인 표지
벤자민 워필드(B.B. Warfield)는 『기독교 기적론』(Counterfeit Miracles, 나침반사 역간, 2013)에서, 성경적 기적의 특징적인 표지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기적은……‘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이며, ‘모든 자연을 초월하고’,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드물게 일어나고’, ‘진리를 확증하기 위한 것’이다.” 이 다섯 가지 본질적 특징은 성경에 나타난 기적을 실질적으로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성경에서 기적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거나 매개를 통해 행하시는 초자연적 역사이다. 하나님은 이런 기적을 통해 그분의 능력을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표징을 나타내심으로써 자신의 계시가 진실함을 증언하셨다. 이와 같은 정의는 구속사 가운데 나타난 기적의 목적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기적의 구속사적 기능
구약에서 하나님은 여러 시기에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시고, 자신의 계시가 진실하다는 사실을 확증하셨다. 구약에 나타난 기적들로는, 열 가지 재앙(출 7:10–12:32 참고), 홍해가 갈라진 일(출 14:21–23 참고), 쓴 물이 단물로 바뀐 일( 출 15:23–25 참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일(출 16:14–35 참고), 장대 위의 놋뱀에 관한 일(민 21:8,9 참고), 반석에서 물이 나온 일(출 17:5–7; 민 20:7–11 참고),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난 일(민 17:1–11 참고), 발람의 나귀가 말을 한 일(민 22:21–35 참고), 요단강이 갈라진 일(수 3:14–17 참고), 여리고 성벽이 무너진 일(수 6:6–20 참고), 해와 달이 머문 일(수 10:12–14 참고), 과부의 기름 병이 채워지고 아들이 살아난 일(왕상 17:14–16,17–24 참고), 독이 든 국을 해독한 일(왕하 4:38–41 참고), 나아만의 나병이 치유된 일(왕하 5:10–14 참고), 엘리사의 뼈가 죽은 자를 살린 일(왕하 13:21 참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보호받은 일(단 3:19–27 참고),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건짐 받은 일(단 6:16–23 참고),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받은 일(욘 2:1–10 참고) 등이 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고, 맹인이 눈을 떠 보게 하셨으며, 못 걷는 사람을 걷게 하고 못 듣는 사람을 듣게 하셨으며, 말 못 하는 사람을 말하게 하셨고,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중풍병자를 고치셨다. 또한 악한 영에게 억눌린 이들을 해방하셨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셨다. 신학자들은 때때로 그리스도가 행하신 기적들을 자연에 대한 기적, 치유의 기적, 구원의 기적으로 분류한다. 이사야에 따르면, 특히 치유의 기적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구원자가 오셨다는 것을 알리는 초자연적인 표징이요 메시아적 표지였다(사 35:5,6; 눅 7:22 참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이처럼 기적이 집중되어 나타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위대한 계시이며, 죄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시다(히 2:1–5 참고).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후, 사도들은 구속사 가운데서 처음으로 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기적을 행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사도들에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셨다. 그런 다음에 그들을 세상으로 내보내 복음을 전파하고, 그와 더불어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다. 사도행전에는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있던 못 걷는 사람을 고친 일(행 3:1–10 참고), 베드로의 그림자로 병든 사람들을 낫게 한 일(행 5:12–16 참고), 도르가를 다시 살린 일(행 9:36–42 참고),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친 일(행 14:8–10 참고), 빌립보에서 귀신 들린 여종을 고친 일(행 16:16–18 참고), 에베소에서 바울이 행한 치유 이적들(행 19:11,12 참고), 죽은 유두고를 살린 일(행 20:9–12 참고) 등 사도들이 행한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제이 아담스(Jay Adams)는 저서 『말세의 표적과 기사』(Signs and Wonders in the Last Times)에서,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기간과 사도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독특한 성격을 띤다고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때가 차매’(갈 4:4)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세울 ‘자기 아들을 보내는 일’을 이루어 가고 계셨던 것이다(렘 31:31–34 참고)……그때는 분명 평범한 시대가 아니었다……이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은, 마지막 날들에 나타나는 비범한 특징을 보고서 그때가 우리의 시대와는 달랐음을 깨달을 것이다. 당시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복음서나 사도행전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때는 분명 평범한 시대가 아니었다”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 의도가 선하든 때로는 악하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에 나타난 비범함을 과소평가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도들과 그들이 행한 기적의 표징들이 구속사에서 감당한 독특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축소했다.
성경적 기적은 오직 구속사적 계시가 주어지는 특정한 시대에만 일어났다(히 1:1,2; 2:4,5 참고).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에 기적이 많이 일어났고, 이어서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도 일련의 기적이 일어났으며, 마지막으로 신약에 기록된 기적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에 나타났다. 이 세 시대는 각각 율법의 시대와 선지자의 시대, 복음의 시대에 해당한다. 성경에 나타난 기적의 목적을 확고히 이해하려면, 바로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적은 하나님께서 사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구속사 전체에 걸쳐 점진적으로 주신 계시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기적은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나타내는 메시아적 표징이었다. 헤르만 리델보스(Herman Ridderbos)는 이를 참으로 정확히 통찰한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메시아적 구원 행위로서 종말론적 성격을 띤다……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죽은 자들을 살리신 일 등을 하늘나라가 도래한 것을 알리는 만물의 갱신과 재창조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기적들은……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표징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사도들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사역을 이어받아 열방에 복음을 전파했다. 사도 시대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고 열방 가운데 교회가 세워지는 일의 기초를 놓는 시기였다(엡 2:20; 3:5; 4:11 참고). 일단 그 기초가 마련된 이후에는, 이와 같은 비범한 메시아적 표징들이 더는 필요 없게 되었다. 즉, 이런 기적들은 성경의 정경적 계시의 완성을 확증하는 사도들의 표적이었다(고후 12:12; 고전 13:8 참고).
계속되는 초자연적 섭리
사도적 표적과 기사가 그쳤다는 견해에 흔히 제기되는 반론 중 하나는, 이런 생각이 신앙을 고백하는 이로 하여금 실천적 이신론을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방식을 이신론적으로 잘못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그것은 역사적 개신교 은사중지론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종교개혁자들과 영국 청교도들은 깊이 기도하고 영적인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삶에서 치유하고 건지시는 능력을 나타내실 것을 간절히 기대하며 신뢰했다. 그들은, 사도들의 손을 통해 행해졌던 표적과 기사는 그쳤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전히 자기 백성의 삶 속에서 섭리로 일하시며, 심지어 초자연적이거나 기적적이라고 여길 만한 방식으로도 역사하신다고 믿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자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이를 명백하게 가르쳤다. “하나님은 통상적인 섭리 가운데 여러 방편들을 사용하시지만,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방편 없이, 또는 방편을 초월하여, 방편을 거슬러 자유롭게 일하신다”(5.3). 워필드는 이 점을 언급하며, “참된 의미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병든 이를 고쳐 달라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대체로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도 시대의 표적과 기사가 그쳤음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이들을 치유하고 건지시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심지어 초자연적인 방식으로라도 응답하실 것임을 신뢰하도록, 하나님의 백성을 권면하는 바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