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적 거룩함을 추구하라
2026년 05월 23일
복음에 아무 걸림돌이 없게 하라
2026년 06월 02일작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성윤리”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우리는 극적인 사건이 넘치는 시대를 살아간다. 세상은 비범한 것, 화려한 것, 대단한 그다음 것을 외쳐 부른다.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연이은 자극에 길들여진 디지털 소용돌이는 조용한 삶에서 반복되는 평범한 일, 곧 일상의 ‘작은 일들’에는 눈길을 거의 주지 않는다. 심지어 ‘아날로그 세계’(오프라인 삶을 따분하다는 듯 표현한 말)에서도, 우리는 삶을 극적으로 꾸미고, 적당히 화려함을 더하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부풀리고, 지역의 인플루언서이자 관심의 중심이 되려고 애쓴다.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이리저리 관심사를 옮겨 다니면서, 작은 일들을 극적이고도 대단해 보이게 만들려고 한다. 온라인에서든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든, 많은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삶을 받아들이기보다, 다음번 대단한 이야기나 새로운 소식을 갈망하면서 그것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느라 지나치게 소란스럽게 군다.
성경은 조용한 삶을 이상으로 제시한다. 사회가 그런 성경적 이상에서 멀어질수록,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혼, 가족, 산책, 꾸준한 노동과 가사, 심지어 일용할 양식과 같은 평범한 ‘작은 일들’의 영광과 기쁨을 새롭게 붙들 필요가 있다. 시편 4편에서 다윗은 물질적인 것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영혼의 충만함을 누린다. 다윗은 성도가 그들의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찬양한다. 그 기쁨은 불신자가 가장 형통할 때 누리는 즐거움마저 뛰어넘는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7절).
먼저, 하나님이 우리 기쁨의 중심이자 근원이시라면, 세상의 작은 것들은 풍성한 반면 우리의 것이 그렇지 않을 때에도 우리의 기쁨이 세상의 기쁨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그들에게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한가? 좋다. 우리의 찬장이 텅 비고 병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그러므로 가장 비참한 처지에 있을 때에도, 우리의 기쁨은 세상이 가장 형통할 때 누리는 기쁨보다 훨씬 크다. 그렇다면 우리의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하고 형편이 비교적 좋을 때는 어떠한가? 그럴 때 우리는 결국 불신앙이 낳는 자기 의존과 교만과 우상 숭배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삶의 작은 일들을 즐거워하고, 또한 그 작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려 한다면, 결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서신 앞부분에서는 우리가 그것을 누리는 방법을 알려 준다. 에베소에는 ‘혼인을 금하고 특정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가르치는 금욕주의적 거짓 교사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3)라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4절)라고 말한다. 즉, 부부의 침상과 식탁도 모두 선하다. 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5절)해진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어떤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 곧 하나님의 설계와 기준과 그분의 공급하심을 가리킨다. 또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분께 다시 올려 드리는 응답이다. 일상 가운데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고, 평범한 일들 안에서, 그리고 그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가운데 그분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반복되는 평범한 삶을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공급하시는 분으로 자각하고 인정하며 감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삶의 작은 일들 속에서 그분을 즐거워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작은 일들을 즐거워하게 된다. 어느 쪽으로 말하든 결국 같은 뜻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위험이 있다. ‘작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말은 ‘하나님 안에서 작은 일들을 즐거워한다’는 말과 같은 뜻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같은 뜻으로 시작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삶의 작은 일들을 즐거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예수님을 그 무엇보다 큰 즐거움으로 여길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일들과 평범한 일상에 서서히 안주해 버리고 마는가? 어쩌면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 아래 있으면서도 더는 하나님을 우리의 큰 기쁨으로 삼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땅의 것들을 통해 참으로 하나님을 가장 즐거워하는지, 아니면 그저 이 땅의 것들을 즐거워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의 “큰 기쁨”(시 43:4), 곧 모든 기쁨 중의 기쁨이시며,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빌립보서 3장 8절에 나오는 ‘가장 고상한’이라는 표현은 실제로 큰 도움이 된다. 즐거움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의 가장 고상한, 곧 가장 뛰어난 기쁨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살아 계신 하나님인가?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드리는 예배와 매주 교회로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는, 지극히 귀하신 분을 향해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고 바로잡고 재조정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 덧붙여, 금식도 도움이 된다. 한동안 다른 것들을 끊어 보라. 당신의 기쁨을 시험해 보라. 당신에게 예수님이 정말로 최고의 기쁨, 곧 당신에게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분이신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당신의 마음에 더욱 깊이 새기기 위해, 잠시 음식과 좋은 음료가 주는 위안을 멀리해 보라. 금식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모든 기쁨 중의 기쁨 되심을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삶 가운데서 보여 준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이 궁극적으로 즐거워하는 대상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요 17:3)이다. 우리 삶의 다른 것들, 곧 드물게 찾아오는 정말 큰 일들과 우리의 시간과 날들을 채우는 수많은 작은 일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을 새롭게 경험하는 기회이자 방편이다.
무한하고 영원하며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즐거움이 향하는 궁극적 대상이자 가장 깊은 원천이 되실 때, 우리의 기쁨은 한없이 확장된다. 그 기쁨은 보잘것없는 우리의 상황에 더는 좌우되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연극하듯 살지 않아도 삶의 작은 일들 속에서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우리의 기쁨이 작은 일들이 주는 소박한 즐거움에만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거듭거듭 하나님의 크심과 영혼을 만족시키는 즐거움으로 이끌려 올라간다.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은 온 우주에서 참으로 ‘큰 일’이며, 우리 삶의 목적이자 소명이다. 드물게 찾아오는 특별한 순간에든 수없이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에서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소명과 목적을 이루게 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