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된 기독교
2026년 06월 10일
기독교에 관한 오해
2026년 06월 15일허상으로 가득한 우리 문화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진정한 기독교”의 두 번째 글입니다.
‘허상’이란 꾸며진 것이나 실제가 아닌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역설이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거류민과 나그네”(벧전 2:11)로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실상 매우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유혹과 미혹을 날마다 마주하기 때문이다. 『환상의 골짜기』(The Valley of Vision)에 실린 청교도 기도문 ‘믿음과 세상’은 그런 현실을 엄숙하게 표현한다.
오 주여, 세상은 교묘하게 올무를 놓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며,
황금빛 미끼를 수없이 던지고,
매력적인 얼굴을 허다히 내미나이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이 표현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가 정적이지 않고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악한 자 안에 처한”(요일 5:19) 이 죄악된 세상은 일종의 정체성, 말하자면 인격과도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매혹적인 모습”과 “매력적인 얼굴”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불경건한 이념과 관습과 규범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처럼 세상이 거짓과 “꾀”(전 7:29)를 사용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을 유혹해 참된 기독교를 교묘하게 꾸며 낸 가짜와 맞바꾸게 하려는 것이다.
신자라고 고백하는 많은 이들이 안타깝게도 그런 얄팍한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자기 육체를 만족시키는 길을 택한다. 성경은 데마를 그 예로 든다. 그는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복음 사역을 감당하던 사도 바울을 버리고 떠났다(딤후 4:10 참고). 그런데 우리를 낙담시키는 데마의 변절을 바라보면서, 당신과 내가 반드시 깊이 생각해야 할 질문이 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데마보다 더 나은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사실 성경은 데마가 무엇 때문에 바울을 떠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데마가 바울을 떠나기로 선택한 것은 그의 마음에서 나온 결정이었다(잠 4:23 참고).
마음은 좋든 나쁘든, 선하든 악하든, 우리의 사랑과 애정이 형성되고 거하는 곳이다. 17세기 청교도 크리스토퍼 러브(Christopher Love)는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두고서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우리는 이토록 강력한 원수들과 싸워야 하는 자로서, 경기에서 이기려는 사람처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절제하자. 우리의 영적 원수들에 맞서 싸움터로 나아갈 때, 육신적인 사랑의 끈으로 단단히 묶여 우리를 짓누르는 세속의 잡동사니 같은 짐을 잔뜩 짊어진 채로 나아가지 말자. 그것들은 결국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원수들의 손에 우리를 넘겨줄 뿐이다.”
러브가 말한 “세속의 잡동사니”만큼 우리 문화의 허상을 정확히 묘사하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이 문화가 그리스도인에게 보화라고 내미는 것은 실상 쓰레기요 폐물이며 오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분명히 이해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 3:7,8).
결국 허상으로 가득한 우리 문화가 노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소셜 미디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특히 그런 매체들이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리즘 같은 비성경적 이념을 조장하고 퍼뜨리는 데 사용될수록, 신자들에게 그런 세속적 사고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압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본성상 하나님의 일을 조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이것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일이다(요 7:7 참고). 청교도 존 오웬(John Owen)은 이를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원에 관한 복음적 신학의 전체 체계는 모든 인류가 본성상 전적으로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한다. 그러므로 본성적 비참함을 분명히 인식하지 않고서는 그 신학을 이해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으로서(마 16:18 참고), 세상의 동반자가 아니라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후 6:14; 엡 5:11 참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겸손한 가운데 담대함을 허락하셔서, 덧없는 허상으로 뒤덮인 문화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붙들고 굳게 서게 하시기를 바란다(요 17:17 참고).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