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안에서의 의견 차이
2026년 06월 06일
허상으로 가득한 우리 문화
2026년 06월 10일참된 기독교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진정한 기독교”의 첫 번째 글입니다.
페이스북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아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친구 요청을 보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들은 물론, 심지어 낯선 사람들에게서도 친구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을 얼마나 잘 아는지와 상관없이, 페이스북은 그들 모두를 ‘친구’라고 불렀다. 결국 ‘페이스북 친구’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는 진짜 우정과 그저 디지털 공간에서 맺어진 피상적인 관계를 구분하는 표현이다.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도 진짜와 가짜 사이의 긴장이 담길 수 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은 신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전까지 그들은 “도”(행 24:14)를 따르는 자들이나 “나사렛 이단”(행 24:5)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자리를 잡았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가장 보편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종종 ‘참된 그리스도인’, ‘진정한 그리스도인’, 또는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처럼 수식어를 덧붙이곤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기독교가 너무나 널리 퍼지면서, 누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통치에 복종하는지가 언제나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름뿐인 기독교가 흔해졌다. 그 결과, 우리 문화는 성경적 토대도 없이 막연히 기독교적 원리를 끌어다 붙이곤 한다. 너무나 자주 기독교의 핵심인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은 비워지고, 잘못 적용되고 오해된 진리의 파편들만 남는다.
교회 안에서조차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두고 서로 다른 정의들이 대립한다. 어떤 목사는 어느 한 측면을 강조하고, 인기 있는 책이나 팟캐스트는 또 다른 측면을 제시한다. 이처럼 수많은 목소리가 저마다의 기독교를 내놓는 가운데, 우리는 무엇이 진짜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답은 단순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면 된다. 온통 가짜 같고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성경은 여전히 우리의 확고한 토대가 되어 준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나갔을 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실제로 참된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에게 그분의 성령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며 그분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롬 6:4; 요 10:27 참고). 또한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고(막 16:15 참고), 조용히 자기 일을 하며 평온하게 살면서도(살전 4:11,12 참고) 진리를 위해 담대히 서도록 보내심을 받았다(엡 6:13,14 참고). 참된 기독교는 문화적 경향이나 개인의 견해, 끊임없이 변하는 사회 규범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으로 규정된다. 그분을 따르라는 부르심은 가볍게 여기거나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전심으로 헌신해야 할 부르심이다. 우리는 속이 빈 기독교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가장 참된 의미의 그리스도인, 곧 주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 행하고 진리 안에 굳게 서며,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유 1:3)을 굳건히 붙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