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이란 무엇인가?
2026년 09월 15일
하나님의 기적
2026년 09월 15일기적, 표적과 기사, 그리고 말씀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적들”의 두 번째 글입니다.
구속사 가운데서, 궁극적으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분은 몇몇 사람을 택하여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심으로써, 구원하고 치유하시는 자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나타내고,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 정의상 ‘표적과 기사’, 곧 기적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든 권위를 부여하신 대리자를 통해 행하시든,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일이다. 이는 특별히 메시아이신 예수님에게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분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물 위를 걸으셨으며, 수많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물론 죽은 자까지 살리셨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기적이 특별히 ‘권능의 표적(dynamis, 뒤나미스)’이라는 데 주목하는 한편,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표적(sēmeia, 세메이아)이 그분의 신성과 메시아 되심을 어떻게 확증하는지를 강조한다. 구약에서 ‘표적’은 두 범주로 나뉜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모세가 행한 초자연적 이적과 같은 ‘표적과 기사(곧 기적)’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적이 아닌 방식으로 장차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예고하는 예언적 표징 행위이다. 공관복음은 주로 전자에 초점을 맞추지만, 요한복음은 표적의 정의를 확장하여 후자까지도 포함한다. 특히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사건은 기적이 아닌 예언적 표징 행위에 해당한다.
신약의 문서들이 기록되고 성경 정경이 완성되면서 이미 궁극적인 계시가 주어졌다. 따라서 비록 하나님께서 여전히 특별한 방식으로 개입해 복을 주고 치유하긴 하시지만, 표적으로서의 기적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사도 시대는 독특했고 이미 지나갔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자들을 확증하기 위해 기적적인 수단을 사용하실 필요가 없다. 이는 오늘날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 준다. 우리는 기적을 추구하기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처럼 사도들의 가르침에 전념해야 한다(행 2:42 참고). 예배하는 일과 덕을 세우는 일을 위해 모이기에 힘쓰라는 성경의 명령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히 10:25 참고), 그리스도의 몸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영적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롬 12:4–8 참고). 또한 우리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마 28:18–20 참고). 이를 위하여,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표적과 기사’ 및 예수님의 기적과 예언적 표징 행위가 지닌 목적이 이미 성취되어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충족성과 권위를 온전히 확신할 수 있다.
성경에서 표적과 기사는 구속사적으로 서로 연결된 세 가지 주요 시대와 여섯 명의 핵심 인물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나타난다. (1) 모세와 이스라엘의 출애굽, (2) 엘리야와 그의 후계자 엘리사의 예언 사역, (3) 예수님과 그분이 세우신 대리자인 열두 사도, 특히 베드로와 바울의 사역이다.
모세와 출애굽
하나님께서 처음에 모세에게 표적을 행하게 하신 것은 불신앙 때문이었다. 곧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보일 불신앙과, 바로가 지속적으로 드러낸 불신앙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다(출 3:14,15 참고). 그러고는 모세에게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해 내라는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자신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백성이 믿지 않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면서 여러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모세가 참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임을 확증하고, 바로를 굴복시켜 하나님의 백성을 내보내게 하시려 했다(출 4:9,17,28,30 참고).
이후에 모세가 바로가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같이 되게 하였은즉……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 7:1–5).
모세가 행한 표적은 실상 하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였다. 이 표적의 목적은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엘리야와 엘리사
구약 시대의 또 다른 사례로, 우리는 선지자 엘리야의 사역(왕상 17장–왕하 2장 참고)과 엘리사의 사역(왕상 19장; 왕하 2–9,13장 참고)을 만난다. 열왕기서는 이들의 사역을 두고 ‘표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훗날 예수님은 자신을 마땅히 존중하지 않는 고향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눅 4:25–27).
이처럼 엘리야와 엘리사는 당대에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계속 나타냈다. 실제로 둘 다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다. 엘리야는 사르밧(사렙다)에 살던 한 베니게 소년을 살렸고(왕상 17장 참고),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렸다(왕하 4장 참고). 또한 엘리사는 기적으로 굶주린 이들을 먹였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큰 무리를 먹이신 일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다(왕하 4:38–44; 요 6:1–15 참고).
구약에 나타난 비(非)기적적인 표징
또한 구약성경에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비기적적인 예언적 표징들도 등장한다. 전형적인 예로, 선지자 이사야를 들 수 있다. 여호와는 그에게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사 20:2)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가 이에 순종해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자, 여호와께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그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3–6절).
이사야가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닌 일은, 애굽과 구스를 의지하는 잘못을 저지른 백성에게 닥칠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표징이었다. 훗날 에스겔은 벽돌을 가져오고 왼쪽으로 누우며 떡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와 같은 세 가지 일련의 행동은 예루살렘이 포위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비기적적인 예언적 표징이었다(겔 4장 참고). 이와 유사하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일련의 예언적 표징으로서, 옹기를 깨뜨리고 줄과 멍에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렘 19,27,28장 참고).
이런 사례들을 보면, 구약 시대의 표적이 흔히 기적(‘표적과 기사’)으로 나타났지만, 때로는 기적이 아닌 방식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상징적 행위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표적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권위와 구원하시는 능력을 모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예수님과 사도들
공관복음: 신약 시대로 넘어가 공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를 입증할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마 12:39,40).
예수님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대로 표적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불신앙을 고집하는 이들에게는 사흘 동안 요나가 겪은 ‘장사됨’과 ‘부활’이라는 시련 외에는 아무런 표적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이 시련은 바로 예수님의 장사되심과 부활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요한복음: 의심할 여지 없이 앞선 복음서들을 알고 있었던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 전반부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메시아적 표적을 중심으로 끌어간다. 여기서 요한은 공관복음과는 다른 강조점을 제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그는 예수님의 모든 기적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 그것이 그 행위 자체를 넘어 예수님의 메시아적 정체성을 가리키는 표징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이 점을 드러내기 위해, 요한은 예수님의 놀라운 행적을 긴 강화나 ‘나는 ~이다’라는 선언과, 또는 이 둘 모두와 자주 짝지어 제시한다. 예를 들어,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에 나오지만, 요한복음 6장에서 보듯이 오직 요한만이 ‘생명의 떡에 관한 강화’를 덧붙여, 예수님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려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만나의 실체인 “하늘에서 내려온 떡”(41절)으로 밝힌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일곱 가지 메시아적 표적은 그분이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성취하셨음을 드러낸다. 곧 그분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요 4:46–54; 5:1–15 참고), 주린 자를 먹이시며(요 6:1–15 참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요 9:1–41 참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셨다(요 11:1–44 참고). 또한 그분은 하늘의 신랑이시다(요 2:1–11; 3:29 참고). 이에 더해,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사건도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비기적적인 표징의 한 예이다. 이는 그분의 몸이라는 ‘성전’이 무너질 것(십자가 죽음)과 죽음에서 살아나실 것을 예고한다(요 2:13–22 참고). 비록 성전 정화 사건이 요한복음의 표적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으며,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을 그런 표적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이 더 일반적이기는 하지만(요 6:16–21 참고), 성전 정화 사건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구약의 예언적 표징의 성격에 잘 들어맞는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에 담긴 중요한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그 기적적인 성격은 덜 부각시킨다. 그리하여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이 그분의 놀라운 행적에 감탄하면서도 그 참된 의미를 놓쳤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런 능력 있는 역사들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놓치고 말았다(특히 요 20:30,31 참고).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보거나 심지어 그 기적을 체험하고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참된 목적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그 예로, 요한복음 5장의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다. 그는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으나 비극적이게도 그분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했다(1–15절 참고). 반면 9장에 등장하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은 육신의 시력을 회복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영적인 눈을 뜨고, 심지어 예수님을 경배하는 데까지 나아갔다(38절 참고).
특별히 요한복음은 어떤 표적이든 오직 예수님만이 그것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세례 요한은 진리를 증언했으나 아무런 표적도 행하지 않았으며(요 10:41 참고), 제자들이나 다른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의 표적은 그 자체로 독보적인 범주에 속한다. 그 표적들은 오직 예수님만이 메시아이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무이한 아들이심을 증언한다(요 1:14,18; 3:16,18 참고).
표적의 그리스도 중심성
그리스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성경의 흐름 속에서, 모세와 엘리야 및 엘리사가 행한 표적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실 표적을 예표하며, 사도들이 행한 표적들은 되돌아가 그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예수님의 표적은 그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심을 확증한다. 예수님은 모세와 선지자들 모두가 고대했던 구속 역사의 정점이 되신다(요 1:45; 5:45,46 참고).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모세 및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면서, 장차 자신이 당할 죽음을 가리켜 ‘별세’ 곧 ‘출애굽(exodos, 엑소도스)’이라고 부르신다(눅 9:31 참고). 또한 누가는 예수님을 새롭고 더 위대한 엘리야(또한 엘리사)로 묘사하면서, 두 사역 사이에 나타나는 수많은 유사점을 제시한다. 예컨대 누가복음 7장 11–17절에서 예수님께서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사건은 엘리야가 과부의 아들을 살린 사건을 반영한다(왕상 17:17–24 참고).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전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언적 대리자들을 통해 보여 주셨던 강력한 표적들을 성취하신다.
사도행전의 사도들
누가복음의 후속편인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계속 이어 가신 일들을 기록한다(행 1:1 참고).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아직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들의 그와 같은 사역이 필요했다. 그 시기에 하나님은 놀라운 표적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설교를 확증하셨다. 사도들은, 유대 지도자들이 로마 총독과 함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로움을 입증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그분을 살리셨다고 선포했다.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사도들의 증언은 사도행전 전체를 관통하며, 이를 통해 수천 명이 회개와 믿음으로 복음에 응답했다(행 2:41; 4:4 참고).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심으로써 그들의 메시지가 참됨을 확증하셨다. 교회 초기에 베드로는 일찍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쳤고, 이에 사람들은 심히 놀라며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행 3:1–10 참고). 더 나아가 베드로는 심지어 죽은 여인을 살리기도 했다(행 9:40,41 참고).
이후에 누가는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 19:11,12)라고 기록한다. 이어지는 기록을 보면, 바울은 추락하여 목숨을 잃은 청년을 다시 살린다(행 20:9–12 참고). 의심할 여지 없이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파하는 사도들의 메시지를 확증하시려고 그들을 통해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사도 시대와 사도 이후 시대
사도 시대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부터 신약 정경이 완성되기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과 유사한 표적과 기사를 행했으며, 이로써 사도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대리자요 대변자라는 점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계속 이어 가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참된 계승자라는 점도 드러났다. 사도적 사역에는 영감받은 성경, 곧 새 언약의 문서를 기록하는 일도 포함되었다. 이 새 언약의 기록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할 뿐 아니라, 그분의 사역이 신자 개인 및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와 어떻게 긴밀히 연결되는지를 명확히 제시한다. 정경이 완성되자, 성경은 모든 신자에게 지속적이고도 권위 있는 규범이 되었다. 그리하여 표적과 기사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와 같은 기적이 더 이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떨어뜨리고,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기초가 된 사도들의 독특한 역할을 훼손할 뿐이기 때문이다(엡 2:20 참고).
결론
결국 성경의 전 시대에서 확인한 대로, 사람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기적적인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은 영원하고, 변함이 없으며, 전능하시다. 그분은 과거에 하셨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비범한 방식으로 역사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이제 자신의 사자들을 확증하기 위해 기적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기적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곁길로 빠져,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성취된 우리의 영광스러운 구속과, 그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궁극적으로 계시된 진리이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말씀이며,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는 독생하신 아들이다(요 1:18 참고). 이 성육신하신 말씀과 기록된 말씀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적 자녀가 된 이들에게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 주고, 그분의 영광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