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 표적과 기사, 그리고 말씀
2026년 09월 15일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기적
2026년 09월 15일하나님의 기적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적들”의 세 번째 글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능력(dynamis[뒤나미스], 보통 ‘기적’으로 번역된다)이 비범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기적에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고(teras[테라스], ‘기사’), 하나님의 위엄과 자비에 관한 메시지(sēmeion[세메이온], ‘표적’)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대언자로 삼으신 인간들을 통해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전하는 자들임을 확증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이라는 수단 없이 ‘직접’ 개입하여, 우주를 보존하시는 통상적인 섭리의 질서를 거슬러 행함으로써 구속사의 중대한 이정표를 세우시기도 한다(시 104; 골 1:17; 히 1:2 참고).
여기서는 구속사에서 중요한 다섯 가지 순간 또는 주제를 살펴보면서, 이를 둘러싸고 집중적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들을 생각해 보자.
재앙들과 이스라엘의 출애굽
노아 시대에 임한 대격변으로 온 세상이 깨끗하게 씻긴 이후, 족장 시대에는 이따금 나타난 신현이나 놀라운 수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제외하고는 기적이 거의 ‘잠잠’해졌다. 요셉 이후 여러 세대가 흐르는 동안,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수적으로 번성했으나, 그 신분은 존귀한 손님에서 착취당하는 노예로 추락했다. 철저히 무력해진 그들은 자신들을 건져 달라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언약에 언제나 신실하신 여호와는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셨으며, 백성을 위해 전능한 팔을 펼쳐 표적과 기사를 행함으로써 그들을 압제하던 애굽인을 철저히 무너뜨리셨다. 모세는 부차적인 조력자 역할을 했을 뿐, 모든 재앙을 내리신 분은 바로 여호와이시다. 그분께서 친히 나일강의 물을 피로 물들이고 땅에 개구리와 이와 파리가 들끓게 하셨으며, 가축을 죽이고 애굽 사람들을 악성 종기로 괴롭게 하셨으며, 우박과 메뚜기로 사람과 짐승과 농작물을 파괴하고 해를 어둡게 하셨으며, 애굽의 왕위 계승자를 포함해 처음 난 것들을 죽이셨다(출 7–12장 참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들은 원수를 산산이 부수는 몽둥이질과 같았으며, 애굽의 헛된 신들, 곧 강과 태양의 신들과 거의 신적 존재로 여겨지던 왕 위에 군림하시는 그분의 절대적 주권을 드러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강한 바람으로 바닷물을 갈라, 해방되는 길을 열어 주셨다. 바닷물이 다시 합쳐져 뒤쫓아오던 바로의 군대를 삼키자, 모세는 이스라엘이 승전가로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이끌었다.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1). 하나님은 애굽과 바로에게 내리신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신 6:22)를 통해 원수들에게 거룩한 능력을 행사하셨고, 동시에 자기 백성에게는 해방되게 하시는 자비를 베푸셨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예수님께서 무력하게 보였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실 더 큰 출애굽을 예표했다(눅 9:31; 골 1:13; 2:13–15 참고).
성막과 성전
하나님은 족장들에게 간헐적으로 나타나셨다. 예를 들어, 야곱에게 나타나 “내가 너와 함께 있어……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라고 확언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백성을 해방시켜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신 후에야, 그들 가운데 거하면서 그들의 예배를 받으실 성소를 허락하셨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속하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그분의 임재 안에서 예배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출 3:12,18; 4:23; 7:16; 8:1,20; 9:1,13; 10:3,26 참고). 출애굽에서 나타난 기적의 절정은, 찬란한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운 가시적인 현현이었다(출 40:34–38 참고). 성막은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에 세워졌으며, 그 위에 머문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은 광야를 지나는 내내 그들의 행로를 인도했다(민 9:15–23 참고). 낮에는 구름이 장막 위에 높이 솟아 있었고, 밤에는 그 구름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온갖 위험과 결핍이 가득한 광야에서 의심과 절망에 빠지기 쉬웠던 백성에게, 구름과 불빛은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라는 여호와의 확실한 약속을 가시적으로 전해 주었다.
요한은 성막과 관련된 표현을 통해 모세가 엿본 하나님의 영광을 상기시키면서 이렇게 선언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출 34:6,7 참고). 그리고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해마다 광야 생활을 기억하면서 지키던 초막절을 배경으로,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 7:1–52 참고)라고 선언하셨다.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의 어두운 날들과 사울의 파멸적인 통치를 지나, 다윗과 그의 왕조라는 빛 가운데로 나아갔다. 그러나 다윗도, 그의 왕손들도 실상 그가 묘사한 대로 백성에게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같이’ 임하는 의로운 통치자가 되지는 못했다(삼하 23:3,4 참고). 이처럼 인간 통치자들의 결함과 실패에도,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이 봉헌되는 것을 기뻐하면서 다시금 자신의 임재를 기적적으로 나타내셨다.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왕상 8:10,11). 그런데 솔로몬의 성전도, 포로기 이후에 다시 세워진 성전도 결국 폐허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성전들이 가리켰던 참된 성전,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의 몸이라는 성전(요 2:19–21 참고)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발한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그분의 빛을 바라보는 이들이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고후 3:18; 4:6,7 참고).
성육신과 동정녀 탄생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던 상황에서 이삭이 수태된 일을 통해(창 16:1; 17:15–19; 18:10–14 참고), 하나님은 역사상 가장 불가능한 수태를 미리 보여 주셨다. 곧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갈 4:4) 하신 일이다. 더욱이 그 여자는 단순한 여자가 아니라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였다(마 1:18–23; 사 7:14 참고). 마리아는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자신을 메시아의 어머니로 택하셨다는 천사 가브리엘의 선언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가브리엘의 대답은 성육신의 신비를 풀어 주기보다는 성막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눅 1:26–35; 출 40:35 참고).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이에 마리아는 믿음과 겸손한 순종으로 응답했다.
C. S. 루이스(C. S. Lewis)는 동정녀 탄생을 ‘옛 창조’의 절정에 이르는 기적이라고 묘사했다(여기서 옛 창조란 새 창조를 시작하신 그리스도의 부활 이전을 의미한다). 루이스는 아이가 잉태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하나님은 생명을 주실 때 우리가 ‘자연적인 것’으로 여기는 수단을 사용하신다. 그런데 단 한 번,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그 통상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물론 거기에는 유일무이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 태어나실 이는 단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고 계셨다. 다시 말해, 만물의 새 창조를 시작하고 계셨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목격한 기적들(재앙들, 홍해, 성소 안팎에 나타난 구름과 불빛)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에게서 나신 일은 처음에는 소수에게만 드러난 ‘표적과 기사’였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을 우리 인류와 결합시키신 이 전례 없는 하나님의 개입은, 전 구속사 가운데서 위대한 전환점이 되는 기적이었다. 바울이 합당하게 진술한 대로, ‘때가 찼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역사 속에 보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사,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신 일에서 드러난다(갈 4:4,5 참고).
임마누엘을 통해 회복되는 창조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셨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는 동안 행하신 모든 기적을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기적으로 보아야 한다. 복음서들은 놀라운 능력을 드러내는 예수님의 표적들을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의 행적 및 약속들과 일관되게 연결하며, 단지 인간에 불과한 메시아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강림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더욱 강조한다.
때때로 ‘표적의 책’이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1–12장에는 예수님의 표적 일곱 가지가 나온다. 그중 첫 번째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이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사망을 영원히 멸하고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러 오실 때,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했다(사 25:6–8 참고). 또한 예수님은 빈 들에서 떡 몇 조각을 수천 명이 먹을 만큼 많아지게 하심으로써, 광야에서 굶주린 이스라엘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늘의 양식’을 내려 주셨던 일을 다시금 보여 주셨다(요 6장; 느 9:15; 시 78:24; 105:40 참고). 더욱이 그 떡은 굶주린 마음을 하늘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표적’이었다.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 예수님이 요한 자신보다 훨씬 크며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신지, 곧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자신이 그 길을 준비해 온 ‘오실 그이’가 맞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는 이적들을 보여 주셨다. “마침 그때에……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눅 7:21,22). 이와 같은 표적들은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임을 가리키고 있었다(사 35:4–6 참고). 요한이 고대했던 ‘심판’(눅 3:9,17 참고)은 훗날 역사가 완성되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테지만, 예수님께서 맹인과 귀먹은 사람과 못 걷는 사람을 고치신 일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제 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예수님께서 바다의 거센 폭풍을 잠잠하게 하신 기록은 그분의 참된 인성과 창조주로서의 신적 권위를 동시에 드러낸다(막 4:35–41 참고). 어느 순간 예수님은 극심한 피로에 휩싸여, 사나운 바람 소리도, 들이치는 물결도 깨울 수 없을 만큼 깊이 잠드셨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공포에 질린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자, 그분은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제멋대로 날뛰던 자연의 세력들은 창조주요 주인이신 그분 앞에 즉시 굴복했고,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 그러자 제자들은 더욱 두려워하면서 서로 물었다.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27절) 사실 시편 107편 23–31절이 이미 그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본문은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23절) 떠났던 이들이 맹렬한 폭풍과 높이 솟구치는 물결에 휩싸여 극심한 곤경에 빠진 상황을 묘사하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28,29절). 예수님은 폭풍을 잠잠하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요한복음의 ‘표적의 책’에 기록된 일곱 번째 표적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다(요 11:38–44 참고). 이때도 예수님은 권위 있는 말씀으로 명령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43절). 에스겔은 잘 알려진 환상 속에서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를 보았다.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자, 뼈들이 서로 연결되어 골격을 이루고 살이 올랐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났다(겔 37:1–10 참고). 이어서 주님은 이렇게 설명하셨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12–14절). 이 땅에서 나사로의 생명을 회복시킨 이적은 “부활이요 생명”(요 11:25)이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표적이었다. 또한 이는 요한복음 끝부분에 나오는 마지막 표적, 곧 예수님의 부활을 내다보는 것이기도 했다.
메시아의 부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일은, ‘이 악한 세대’에서 ‘오는 세대’로, 곧 약속이 성취되고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마지막 때’로 넘어가는 구속사적 전환을 완성하는 하나님의 가장 탁월한 기적이었다(갈 1:4; 눅 18:30; 히 1:2 참고).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과 더불어 ‘성경대로 사흘 만에’ 이루어진 그분의 부활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전한 복음에서 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고전 15:3,4; 롬 10:9 참고).
성부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는 아들이요 온전히 순종하신 그분을 죽음에서 일으켜 풍성하고도 썩지 않는 생명으로, 비천함에서 일으켜 영광으로 이끄는 신적 행위자이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써 죄인들이 메시아에게 내린 불의한 정죄를 뒤엎으셨고, 그분께서 당한 학대를 되돌리셨다(행 2:24; 3:14,15; 4:10; 10:39,40; 13:28–31 참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입증하셨을 뿐만 아니라(딤전 3:16 참고), 예수님을 신뢰하는 모든 이가 그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로운 보좌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을 확증하셨다.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므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롬 4:25 참고). 더욱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이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때 모든 성도가 온전히 추수될 것을 보증하는 “첫 열매”(고전 15:20,23)이다. 곧 그들 모두가 죽음에서 건짐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될 것임을 확증한다.
죄로 물들어 “썩어짐의 종 노릇” 하고 있는 이 창조 세계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를 바라며, 우리의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고대하고 있다(롬 8:19–23 참고).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품게 될 새 창조를 시작하는 기적이다(계 21:1–5 참고).
결론
살아 계신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에 주권적이고도 친밀하게 계속 관여하시며, 능력으로 그 존재를 붙드시고, 지혜로 그 질서를 유지하신다. 자연 과학을 성립시키고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인과적 질서는 비인격적인 체계의 산물이 아니다. 그 질서는 원자에서 은하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인격적으로 다스리시는 창조주의 통치에서 흘러나온다. 주권적인 창조주요 보존자이신 하나님께는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놀라운 방식으로 창조 세계에 관여하실 자유가 있다. 특히 우주는 그분께서 구속의 사랑이라는 드라마를 펼쳐 가시는 거대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죄책과 비참함에서 피조물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역사의 전 과정 속에서 오래 참으심으로 일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그 구속의 이야기 속에서 출애굽과 성소, 성자의 성육신과 사역과 부활이라는 중대한 전환점들을 드러내 보이고자,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며 신뢰를 이끌어 내는 기적을 행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그저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시 77:14) 앞에 겸손히 엎드려 경배할 뿐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