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의 다양한 측면

2026년 04월 18일

예언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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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다양한 측면

2026년 04월 18일

예언의 성취 

2026년 04월 18일

선지자들에 관한 해석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성경적 예언 이해하기”의 세 번째 글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교부 히에로니무스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에 관해, 어느 누가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성경은 명료하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이라는 중심 메시지는 어린아이도 이해할 만큼 충분히 분명하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부분이 똑같이 명료하지는 않다(벧후 3:16 참고). 민수기 12장 6-8절에서, 여호와는 예언을 특히 난해한 장르로 지목하신다. 선지자들이 “환상”과 “꿈”과 “은밀한 말”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히” 말하는 모세(창세기~신명기)와 대조된다. 그러나 이 책들 역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모든 성경”(딤후 3:16)의 일부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선지자의 원형인 모세

선지자 직분은 모세를 본으로 삼는다. 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은 인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신들의 의중을 알아내기 위해 점술이나 그와 비슷한 교묘한 주술적 관행에 의존했다(신 18:9–14 참고). 그러나 여호와는 자기 백성과 교통하기를 기뻐하셨고, 그러하기에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택한 중보자들을 세워 그 백성을 인도하신다(신 18:15–18 참고).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그들의 입에 두어, 참된 선지자가 전하는 모든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신다(18절 참고).

시내산 언약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자신의 율법을 제정하셨는데, 그 언약은 복과 저주로 마무리된다(레 26장; 신 28장 참고).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지혜로운 가르침(히브리어로 ‘토라, torah’)에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그분께 반역하고 신실하지 못하다면, 언약의 저주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이 복에는 토지의 소산이 풍성해지는 것과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포함된다. 반면 저주는 농작물에 닥치는 재앙과 군사적 패배를 의미하며, 결국 주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잃는 데까지 이른다. 그런데 이 복은 단지 현세적 차원에 머물지 않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안에 간직된 하늘의 유업을 바라보게 한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대언하는 언약의 중보자로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시내산 언약을 반복해서 어긴 일을 책망하며,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하는 사명을 수행한다. 이런 책망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류에게 보편적인 정의와 공의를 추구하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지자들은 언약 법전의 구체적인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이스라엘을 기소하는 검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들은 단지 이웃에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적 남편이신 여호와께 영적 간음의 죄를 범했다(겔 16장; 호 1–3장 참고).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죄를 저질렀지만, 여호와는 반역한 자기 백성에게 곧바로 언약의 저주를 쏟아붓지 않으신다. 그분은 오히려 선지자들을 거듭 보내, 그들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권면하신다(사 1:18–20; 말 3:7 참고).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거듭 선포하면서도, 계속되는 불순종이 불러올 피할 수 없는 결과를 경고한다. 역대하 36장 15,16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언약의 기소자로서 선지자가 감당한 역할은 선지서에 심판에 관한 본문이 상당히 많은 까닭을 설명해 준다. 선지자들은 단순한 사회 비평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시내산 언약의 규례를 지키지 않은 백성을 책망하고, 다가올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초기 선지자들에게서는, 예고된 심판을 아직 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가운데,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호소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요나서는, 이방 성읍조차도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회개하면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포로기라는 대재앙이 닥치자, 예레미야와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은 더는 피할 수 없게 된 멸망을 경고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적으로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고 가난하고도 약한 자들을 억압한 까닭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자기 이름을 두신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치유하고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주님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는, 신실하지 않은 그분의 백성에게 심판을 선포하거나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권면하는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지자들은 심판 너머에 있는 소망의 메시지도 전한다. 즉, 여호와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시고, 그 조상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땅으로 그들을 다시 데려오실 것이라고 선포한다(겔 36:22–24 참고). 또한 그분께서 그들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실 것이라고 전한다(겔 36:25–28 참고). 여호와는 금을 연단하는 자가 용광로에서 금을 제련하듯이 자기 백성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며, 찌꺼기를 제거하고, 은을 보존하실 것이다(말 3:2–4 참고). 남은 자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금 여호와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미래는 죄로 인해 이스라엘에 임할 멸망만큼이나 필연적이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위하여 거룩한 백성을 두기로 작정하셨고, 그분의 뜻이 결코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지,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시내산 언약의 예표적인 복은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신 4:1)라는 원리에 기초한다. 이와는 달리, 주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실 새 언약은 그분 안에서 죄인들에게 새 생명을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드러낸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전가를 통해 그들에게 새로운 의를 베푸실 것을 신뢰하면서(슥 3:1–10 참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합 2:4 참고).예루살렘의 멸망과 포로기라는 시련 속에서도, 의인은 하나님께서 전가를 통해 그들에게 새로운 의를 베푸실 것을 신뢰하면서(합 2:4 참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슥 3:1–10 참고). 여호와께서 친히 오셔서 그들의 목자가 되실 것이다(사 40:10,11; 겔 34:23,24 참고). 다윗의 오래된 줄기에서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 그들이 고대하던 의로운 다윗의 자손이 되실 것이다(사 11:1–6; 렘 23:5; 슥 3:8 참고). 한 종이 와서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방의 빛”(사 49:6)이라는 소명을 성취하고, 친히 자기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고난을 겪으실 것이다(사 52:13–53:12 참고).

이런 구절들은 선지자들이 전한 중심 메시지가 단지 죄인들을 책망하고 순종의 대가로 보상이 주어지리라는 소망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 중심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후에 올 영광이다(눅 24:44–47 참고). 그는 새 이스라엘이며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서, 시내산 언약의 의무를 완전하게 지키심으로써 거기에 수반된 생명의 약속을 공로로 얻으신 분이다(갈 4:4,5 참고). 또한 그분은 친히 죽으심으로써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슥 3:9)하신다.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한 모든 이들은 구속받은 백성이 되며, 조상의 믿음을 공유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새 이스라엘이 된다(롬 4:9–12 참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다에 머물지 않고(사 40장 참고), 열방과 땅 끝까지 전파된다(사 45:22; 말 1:5 참고).

선지자들에 관한 해석

이와 같이 개괄적으로 살펴본 선지자의 사역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이후의 시대, 곧 구속사 가운데 매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기록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먼저, 선지자들의 말씀이 다른 시대를 살아간 다른 이들에게 주어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오늘날 우리에게도 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대 사람들을 정죄했던 선지자들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자주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시내산 언약을 성취하셨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거기에 얽매이지 않지만, 구약의 율법은 여전히 남아서 하나님의 지혜롭고도 거룩하신 성품을 영원히 드러낸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종종 구약의 이스라엘과 비슷한 방식으로 마음의 우상 숭배와 계속 싸우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선지자들이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제사 제도가 예표하는 속죄를 신뢰하면서 회개하고 믿음으로 여호와를 바라보라고 촉구한 것처럼, 우리 역시 이제는 효력이 다한 그 제사들을 완성하신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실패했으나 그분의 의로운 삶이 우리에게로 전가되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의 죽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준다. 구약이 장차 임할 영광을 내다보았듯이(눅 24장 참고), 우리도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슥 3:10)라는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선지자적 환상에서 힘을 얻는다. 이 환상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선지자들은, 말이 다른 이방 민족 중에서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슥 8:23)라고 말할 그날을 내다보았다. 심지어 성적·종교적 타락의 상징으로 쌍을 이루는 소돔과 사마리아마저, 이스라엘에게도 필요했던 동일한 그 은혜 가운데 그들과 연합해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안에서 예루살렘과 하나가 될 것이다(겔 16:53–63 참고).

이스라엘은, 특히 포로 귀환 이후 시대에 ‘이미’와 ‘아직’의 상황 속에 처한 것을 깨달았다. 여호와께서 변함없는 신실하심으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으므로, 백성에게는 감사할 일이 많았다(말 3:6 참고). 동시에 이스라엘은 여전히 실망과 좌절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었으므로, 그동안 자신들을 독려할 선지자들의 소망의 메시지가 필요했다(학 2:3–9 참고).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간다. 선지자들이 갈망했던 일들 중 일부는 성취되었다(미 5:2; 말 4:5 참고).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들이 사모했던 여호와의 날이 온전히 임할 것을 기다린다. 그날이 이르면, 하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최종적으로 갈라내실 것이다(말 4:1–3 참고).

그러나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일어날 사건들을 정확한 로드맵으로 제시해 주리라 기대한다면, 우리는 실망하거나, 선지자들이 본래 의도하지 않았던 문제들에 구약의 예언을 억지로 끌어다 붙이려 할 것이다. 선지자들이 때때로 꿈과 환상과 은밀한 말로 선포했다는 점을 기억하라(민 12:6-8 참고).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예언들을 살펴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그중에 어떤 예언들은 성취되기 전에 분명하게 이해되기도 했다.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임을 선포한 미가서 5장 2절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많은 예언들은 베일에 가려 있다가 성취된 뒤에야 비로소 명확해졌다. 기원전 100년에 열린 ‘예언 콘퍼런스’에 참석해, 이사야 7장 14절이 메시아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것이며, 시편 16편 10,11절이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을 내다본 것이라는 주장을 듣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렇게 발표한 이후에는 치열한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사야 40장에서 광야는 장차 올 전령에 관한 메시지의 일부였으나, 세례 요한을 통해 그 예언이 성취될 때 전령이 설교하는 실제 장소가 되었다(막 1:3과 사 40:3을 비교해 보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성취될 예언들을 신중하고도 겸손한 자세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의 재림에 관해서는 분명한 부분들도 있으나, 어떤 예언들은 우리가 하늘에서 그것들을 되돌아볼 때까지 온전히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가 되기까지, 우리는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것과 주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신 바가 충만히 성취될 것을 기다리면서,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를 배워야 한다. 말라기는 모세와 엘리야를 기억하라고 다시 한 번 말한다(말 4:4,5 참고). 율법과 선지자들을 대표하는 이들은, 우리가 그들이 내다본 영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원히 자신의 임재 가운데로 맞아들이실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믿음과 신실함으로 살아가고, 죄를 회개하며, 주를 경외하고 섬기며, 단번에 드려진 그리스도의 속죄를 신뢰하라고 우리에게 촉구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이안 더귀드

이안 더귀드

이언 더귀드(Iain Duguid) 박사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이다. 그는 『전신갑주』(The Whole Armor of God, 생명의말씀사 역간, 2021), 『스바냐, 학개, 말라기』(Zephaniah, Haggai & Malachi) 등 ‘개혁주의 강해 주석 시리즈(REC)’를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