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약속

2026년 04월 15일

선지자들에 관한 해석 

2026년 0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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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들에 관한 해석 

2026년 04월 18일

선지자의 다양한 측면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성경적 예언 이해하기”의 두 번째 글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직분은 획일적인 유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구약은 선지자 직분이 겹겹이 엮인 직조물처럼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리고 신약은 이 직분이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드러낸다. 선지자적 소명에는 여덟 가지 주된 측면이 있다.

언약의 변론자: 말씀을 적용함

본질적으로, 선지자 사역은 언약적이다. 선지자들은 자주적인 행위자나 영적 프리랜서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이미 맺어진 관계를 대변하는 변론인이다. 모세 등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이 언약은 선지자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근간이며, 선지자는 언약의 대변자이자 고발자(기소자)이자 위로자로 선다. 대변자로서 모세(출 3,4장 참고), 나단(삼하 7장 참고), 아히야(왕상 11:29–39 참고)와 같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언약 조항들, 곧 하나님의 복된 역사와 언약의 규정을 명확히 보여 주고, 신실함에 따르는 복과 반역에 따르는 저주를 선포한다. 그들은 단지 미래의 일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관점을 선포하는 사자들이다.

또한 언약의 대변자로서 선지자들은 언약에 명시된 조항들에 따라 인간 당사자들의 책임을 묻는다. 백성이 불순종할 때, 선지자는 고발자의 역할을 맡아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그리고 백성이 순종할 때(주로 회개와 믿음의 형태로 나타남)는 언약의 조항에 따라 위로를 전한다. 미가 6장에서 선지자는 언약 소송 형식을 따라 기소자 역할을 수행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1절). 이와 같은 언약 소송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자기 백성을 기소하고, 그들에게 베푸신 복을 상기시키며, 혐의를 공표하고, 판결을 선고하신다. 백성들이 보여야 할 마땅한 반응은, 자신들의 불순종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백성이 회개할 때, 선지자는 언약의 위로자가 되어, 주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복을 선포한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30,31장은 회복될 나라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새 언약 안에서 백성의 회복과 귀환과 치유를 선포한다. 위로자로서 선지자는 소망의 증인이 되어, 언약이 단지 갱신되는 데 그치지 않고 장차 내면에 새겨질 것임을 전한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

신적 회의에 참여하는 자: 말씀을 증언함

그렇다면 선지자들은 백성의 삶에 언약을 올바르게 적용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성경 전반에서는 주님의 하늘 보좌를 주께서 주재하시는 법정으로 묘사하는데, 여기에 영적 존재들이 참여해 경배하고 땅의 일들을 논의한다고 말한다(왕상 22장; 욥 1,2장; 사 6장 참고). 이런 장면들에서 하나님은 결정을 내리고 사명을 위임하는 법정을 거느린 신적 주권자로 묘사된다. 오직 선지자들만이 이 하늘 회의(히브리어로 ‘소드, sod’)에 초대받는다(욥 15:8; 시 25:14; 89:7; 렘 23:18 참고). 곧 그곳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이 참된 선지자라는 표지가 된다. 예레미야는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대조한다.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렘 23:22). 즉, 그들의 정당성은 카리스마나 세상적인 영향력이 아니라 신적 소명에서 비롯된다.

이사야 6장을 보면, 이사야는 하늘 법정의 환상 가운데 소명을 받는다. 이는 스랍들이 주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 주제는 이후 선지자의 사역에서 핵심 모티프로 자리 잡는다. 이사야 선지자는 ‘입술이 부정한’ 자신이 소명에 합당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제단에서 가져온 숯으로 그 입술이 정결해지고, 그는 소명에 응답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심지어 아모스와 같은 선지자들은 이 하늘 회의에서 협상하기도 한다. 아모스 7장에서 그는 이스라엘을 대신해 두 번이나 자비를 구했고, 여호와는 두 번 모두 뜻을 돌이키신다. 이런 대화는 하나님의 주권에 근거하면서도 깊은 동역 관계를 보여 준다.

하나님의 대사: 말씀을 선포함

선지자들은 하늘 회의의 사절로서, 참된 왕의 대사로 활동한다. 그들은 더 높은 보좌에서 보냄을 받은 외교관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분의 언약적 심판을 전한다. 이런 역할과 관련해, 선지자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자로서의 천사들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구약에서는 영적 존재를 염두에 둘 때 보통 천사에게 사용되는 ‘말라크(malak)’라는 칭호로 선지자를 일컫기도 한다(대하 36:15; 사 44:26; 학 1:13 참고).

예수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 10:41)라고 말씀하면서 이 정체성을 확증하신다. 선지자는 단지 미래를 내다보는 자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대사이며, 선지자를 영접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분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반대의 경우도 참되다. 즉, 선지자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것은 그가 대변하는 언약의 주를 거부하는 것이다.

선견자: 세상 속에서 말씀을 분별함

선지자 직분은 흔히 문자적으로 보는 것 및 영적으로 보는 것과 연결된다. 복음서에서 사람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영적으로 분별하는 능력을 통해 선지자를 알아본다. 누가복음 7장 39절에서 한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여자가 평판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순간은 예수님의 선지자적 통찰력을 드러낸다. 바리새인이 이해한 좁은 의미의 ‘보는 것’을 뛰어넘어, 우리 주님은 그 여인의 믿음뿐 아니라 바리새인의 마음속 생각까지도 꿰뚫어 보신다.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 4:19)라고 말한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복장이나 평판을 근거로 그렇게 인식한 것이 아니다. 그 고백은 예수님께서 그녀의 삶과 결혼 생활, 그리고 물을 길으러 온 평범한 우물에서는 채울 수 없는 그녀의 참된 갈망을 꿰뚫어 보시는 데에 근거한다.

신탁을 해석하는 자: 말씀을 설명함

선지자들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자신이 받는 시와 같은 신탁을 해석하는 자이기도 하다. 예레미야서의 초반부(1–25장)에는 시각적 묘사와 은유, 상징적인 행위가 풍성히 나타난다. 선지자의 말씀은 종종 응축되고 비유적이며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시적인 신탁으로 주어지는데, 선지자는 그 신탁에 관한 질문에 답하고 그 뜻을 백성에게 설명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는다. 이런 역할은 반드시 해석을 수반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마음이 흐트러진 백성이 알아들을 수 있게 전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요셉과 다니엘은 자신들이 섬기는 이방 왕들의 꿈과 환상을 해석하는 능력으로 칭송을 받는다.

이적을 행하는 자: 말씀을 입증함

구약에서 어떤 선지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기적적인 표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모세의 사역은 놀라운 사건들로 특징지어진다. 예컨대 재앙들, 홍해를 건넌 사건,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공급하심 등이다. 각 사건은 애굽에 여호와의 주권을 드러내는 표징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께서 참으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역할을 한다.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도 설교 사역의 내용보다는 그들이 행한 기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고, 양식이 많아지게 하며, 나병 환자를 고치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한다. 이런 행위들은 선지자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어떤 선지자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행한 기적이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며, 오히려 그들이 설교한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신약에서도 선지자의 말씀은 기적적인 표징들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예수님께 고침을 받자, 몇몇 바리새인은 그에게 그리스도의 정체에 관해 묻는다.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요 9:16). 그러자 고침 받은 사람은 “선지자니이다”(요 9:17)라고 분명히 대답한다. 여기서도 그리스도가 행하신 비범한 사역을 통해 그분의 선지자 되심이 드러난다(히 1:1,2 참고).

예배 인도자: 말씀에 응답함

역대상 25장 1절에서는 회중의 예배를 인도하는 자들이 악기로 예언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는 선지자적 활동을 성전에서의 예배, 더 나아가 제사장들과 결부시킨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비롯해 여러 선지자들이 명시적으로 제사장 가문과 관련되어 있었고, 대제사장 역시 우림과 둠밈으로 여호와께 물을 수 있었다(출 28:30; 민 27:21 참고). 이런 면모는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적 은사의 본질적인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선지자 직무는 왕권을 보좌하는 일뿐 아니라 성전에서 예배를 수행하는 일 전반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의 언약 체계 안에서, 선지자들은 왕과 제사장들이 그 직분의 고귀한 소명을 책임 있게 감당하도록 붙들었다.

종교-정치적 역할을 수행하는 자: 말씀을 보존함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신정 정치 체계에서 선지자들은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왕에게 기름을 붓고,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며, 궁정 내의 은밀한 정치적 흐름에도 관여했다. 다윗의 죄를 책망한 나단은(삼하 12장 참고),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왕상 1:11–14 참고). 그의 개입은 솔로몬과 밧세바 모두에게 매우 중요했으며,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선지자들은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을 주도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및 그들의 지도자들과 주권적으로 맺으신 언약의 질서를 보존하는 자들로 일컬어진다. 즉, 그들은 핵심적인 언약적·정치적 전통을 보존하고 전승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보존하는 일은 종종 강하게 비판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불의한 지도력의 근간을 뒤흔드는 동시에 백성의 영적 건강에 안정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왕에게 회개를 촉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종교적 목소리가 흔히 외면당하거나 융화되어 버리는 세상에서, 선지자의 이런 정치적 역할은 특히 큰 도전이 된다.

선지자적 목소리의 메아리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 직분을 이해하면, 하나님께서 다양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곧 그분은 맹렬하면서도 온화하며, 시적이면서도 권위 있는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진정성을 갈망하는 시대에, 선지자적 증언은 여전히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이 고대의 인물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침묵하지 않으시며, 종종 변방에서 참된 통찰이 나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우리에게 심판의 말씀과 은혜의 속삭임, 공의의 우레와 구속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한다. 선지자적 과업은 오늘날 설교자의 평범한 사역, 곧 기도와 겸손과 부지런함으로 영감된 말씀을 연구하고 이를 담대히 선포하는 사역으로 이어진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스콧 레드

스콧 레드

스콧 레드 주니어(John Scott Redd Jr.) 박사는 앨라배마주 버밍엄에 있는 브라이어우드 장로교회(Briarwood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이며, 리폼드 신학교에서 구약학 초빙 강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온전함의 명령』(The Wholeness Imperative)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