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머레이 맥체인의 생애와 사역

2024년 10월 26일

성에 사로잡힌 사회 

2026년 05월 23일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의 생애와 사역

2024년 10월 26일

성에 사로잡힌 사회 

2026년 05월 23일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성윤리”의 첫 번째 글입니다.

성(性)은 우리 존재에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격 자체에 깊이 얽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성에 관해 명확하고도 성경적이며 솔직하게 말하는 일에 종종 어려움을 겪곤 한다. 많은 이들이 이런 주제로 자녀와 대화하거나 교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주저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에 관한 성경적 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세상이 기꺼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성을 그저 지엽적인 문제인 듯 취급할 여유가 없다. 성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이 이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은 본래 인류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의도적으로 설계하셨으며,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부끄러움 없이 서로를 마주했다. 성경은 몸에 관해, 심지어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솔직하게 말한다. 할례를 생각해 보라.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속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표징으로, 가장 오래 이어진 의식 중 하나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할례라는 말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실상 그것은 남성 생식기의 일부를 베어 내는 행위이다. 그런 표징을 명령하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시겠는가? 그분은 인간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성 자체를 자신의 언약적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설계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동침함으로써 약속의 자녀를 낳게 하셨다. 아브라함의 몸에 새겨진 할례의 표징은 인간의 성마저도 하나님께 속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오늘날 세상은 성에 관해 그 의미와 쾌락, 자유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세속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쏟아붓는다. 이 점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성적 부도덕에 빠지도록 끊임없이 유혹하는 문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결과 기독교가 처음 지중해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갔을 때, 성 윤리는 기독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였다. 주후 112년 로마의 총독 플리니우스는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그리스도인들이 이른 아침에 모여 그리스도를 찬송하면서, “범죄를 모의하기는커녕 도둑질과 강도질과 간음과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를 멀리하겠다는 맹세로 스스로에게 의무를 지운다”라고 보고했다. 교회 초창기부터 신자들은 도덕적 고결함으로 특징지어졌고, 성적 순결을 추구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규정하는 뚜렷한 표지였다.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오늘날 문화적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은 동일한 윤리를 실천하도록 부름받는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고전 6:19 참고),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며(롬 12:1 참고), 성적인 영역을 포함해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눅 9:23 참고).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토마스 브루어

토마스 브루어

토마스 브루어(Thomas Brewer) 목사는 리고니어 미니스트리에서 편집 담당 부사장이자 「테이블톡」 매거진의 편집장이다. 또한 그는 미국 장로교회(PCA)의 강도 장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