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주요 주제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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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주요 주제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소금과 빛”의 열아홉 번째 글입니다.

런던에서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든버러까지 가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두 도시를 가본 적이 없더라도 질문에 대한 답변이 두 개 이상일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도 앱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다양한 경로가 제공되는데, 그 경로들은 주요 경로일 뿐이다. 실제로 두 수도 사이에는 수천 개의 도로가 있으며, 이 도시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어떤 경로들은 다른 경로들에 비해 찾기가 쉽다. 좁은 시골길보다 큰 고속도로로 가는 길이 더 뚜렷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행을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연결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은 일관되고 통일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 권의 책이다. 성경은 궁극적으로 한 저자의 산물이며, 인류에게 한 가지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을 하나로 묶는 주제는 단 하나뿐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추적하며 따라갈 수 있는 경로는 다른 여정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예로 설명해 보면 성경은 많은 실로 엮인 밧줄과도 같다. 성경에서 “한 주제”만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오히려 마지막 교향곡을 만들기 위해 결합되는 수십, 수백 가지의 다양한 선율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주요 도로 중 일부를 고려해 보자.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일반적인 복음적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성경 용어는 언약이다. 따라서 언약은 성경을 관통하는 주요 도로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다. 비록 창세기 2장에는 언약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언약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거기에 있다. 두 당사자(하나님과 아담), 관계의 조건(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에 대한 신실한 순종), 언약을 어길 경우의 형벌(죽음), 지키는 경우의 보상(생명나무로 상징되는 영생, 창 3:22)이 그것이다. 호세아는 나중에 이 사건을 언약으로 명시하고 있다(호 6:7).

성경은 서로 얽힌 수많은 주제가 밧줄처럼 꼬여 있는데 그 중에서, 실오라기 하나라도 빼보는 것은 유익하다.

잘 알고 있듯이 아담은 이 행위 언약을 깨뜨렸지만, 그 후에도 하나님은 언약이란 개념을 버리지 않으신다. 대신 이제는 행위가 아닌 은혜의 언약을 통해 그분의 백성과 관계를 계속 이어가신다. 아브라함은 놀라운 약속을 받고 하나님과 언약 관계로 들어간다(창 15, 17장). 그러나 이 언약의 조건은 아브라함이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15:6)셨다. 시간이 흐르며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번성했고 나중에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출 2:24)시고 그들을 구하러 오셨다. 이 구원을 베푸신 후,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갱신, 확장하셨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동일한 약속(땅, 자손, 보호)이 재확인되었고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언약의 약속이 주어졌다. 수백 년이 흐르고 이제 다윗과 그의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것이라는 약속이 이 언약에 더해진다. 

이렇게 우리는 새 언약에 이르게 된다. 예수님은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이 일을 시작하셨다(막 14:24). 그러나 언약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복음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은 순전한 은혜로 그들을 축복하신다. 약속의 땅은 온전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확장되었다. 구약에는 대부분의 언약이 유대 민족에게 주어졌지만, 이제는 모든 민족의 백성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근본적인 새 언약의 사역은 스가랴가 노래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눅 1:72~73)를 지키러 오신 것이다.

또한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주제도 있다. 하나님은 바람이 불어 서늘할 때 에덴동산을 거니시며 아담과 하와를 만나셨다.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은 동산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셨고, 인간은 하나님의 복된 임재에서 추방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창세기와 출애굽기 전체에 걸쳐 때때로 현현, 곧 하나님의 출현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을 방문한 신비한 손님들(창18장)이나 불타 는 떨기나무(출 3장)가 그것이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보면 하나님의 이동식 거처인 성막을 건축하는 일을 보게 된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을 보면, 성막 안의 완벽한 정육면체 모양의 하나님의 보좌실인 지성소가 구름으로 덮인다. 비록 성막의 여러 구역을 거쳐야 성소에 도착하지만 야훼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오셨다. 이 성막은 사실 에덴동산을 연상시킨다. 성막의 입구는 동산 입구처럼 동쪽을 향한다. 성소 입구를 보호하는 휘장에는 그룹이 수 놓아져 있으며, 성소 안의 촛대는 나무 모양이다.

성경을 하나로 묶는 단 하나의 주제는 없지만 모든 내용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은 단 한 명이다. 악당들, 피해자들, 신하들, 보조 출연자들은 많지만 영웅은 단 한 명뿐이다.

이 동산-성전의 주제는 솔로몬 왕의 지휘 아래 건축되는 성전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영토와 수도를 갖게 되었다. 다윗의 아들은 하나님을 위한 “영원한” 집을 지었고,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다.”(대하 7장) 하나님은 이렇게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하셨다. 에스겔 선지자가 성전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는 비극적인 환상을 볼 때까지 말이다. 성전이 무너짐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버리신 듯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하나님은 우리와 거하시려고 다시 돌아오셨다. 실제로 예수님은 자기 몸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하셨다(2:21). 그 예수님의 몸은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졌으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교회에 성령을 부어 주셔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는 신자 개개인과 교회, 둘 다 성령의 전으로 묘사되고 있다(고전 3:16; 6:19). 이렇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신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마지막 날에는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다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 사시는 새 예루살렘은 새 땅 전체가 지성소가 되었음을 상징하며 정육면체로 묘사된다.

언약과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성경에 나오는 두 가지 “주요 경로”일 뿐이다. 우리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로부터 셋의 계보인 아브라함의 가족, 시내산의 이스라엘 백성을 거쳐 우리 시대의 모든 민족을 망라하는 교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주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담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받았지만 사탄의 말에 굴복하여 보좌를 잃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였으나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다윗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는 특권을 누렸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것은 온전한 축복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다윗 자손들의 통치 아래서 분열되고 정복되었으며 대부분 멸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마침내 모든 권세를 부여받아 영원한 나라를 다스릴 왕을 만나게 된다. 현재는 그의 나라가 교회 안에 있지만(마 16:18~19), 언젠가는 모든 새로운 피조물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서로 얽힌 수많은 주제가 밧줄처럼 꼬여 있는데, 그 중에서 실오라기 하나라도 빼보는 것은 유익하다. 저주의 일부였던 가시나무는 자기 백성을 위해 저주를 짊어지시는 메시아의 머리에 올려진 가시 면류관으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타락은 땀을 흘려 일해야 하는 결과를 낳았고, 일은 우리를 고단하고 수고롭게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를 위해 피땀 흘리며 기도하신 것에 위안을 받는 것은, 백성을 위해 자기 생명을 쏟아부으신 구원 사역이 오직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결혼이란 주제 역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구원의 이야기이다. 결혼은 예수님과 그분의 신부인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연합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이스라엘의 간음으로 왜곡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회복되었으며 어린양의 성대한 혼인 잔치로 완성될 것이다(계19:6~7).

물론 이런 주제들보다 언약,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이란 주제들이 더 중요하다. 성경을 하나로 묶는 단 하나의 주제는 없지만 모든 내용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은 단 한 명이다. 악당들, 피해자들, 신하들, 보조 출연자들은 많지만 영웅은 단 한 명뿐이다. 성경 어느 곳에서나 삼위일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조명이 비친다. 하나님의 위대한 교향곡의 모든 선율이 함께 어우러져 그분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존티 로드즈
존티 로드즈
존티 로드즈(Jonty Rhodes) 목사는 영국 리즈에 위치한 Christ Church Central Leeds(국제 장로교)의 목사이다. 그는 『Covenants Made Simple』, 『Man of Sorrows, King of Glory』, 『Reformed Worship』을 비롯해 여러 책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