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박된 자유 의지 

2026년 10월 06일

궁극적인 자유 

2026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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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해방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의지의 속박”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

미국인들은 인간의 본성과 능력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아담이 죄에 빠진 이후의 인간 본성을 생생하고도 거침없는 표현으로 묘사한다. 예레미야는 표범이 자기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피부색을 바꿀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렘 13:23 참고).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44절과 65절에서 제자들에게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마태복음 7장 18절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그분께 나아갈 수 없는 중요한 이유를 제시하신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이 비유는 타락한 인간의 상태를 분명히 보여 준다.

사도 바울도 여러 곳에서 예수님께서 전하신 가르침을 거듭 들려준다. 그는 인류가 죄로 죽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엡 2:1; 골 2:13 참고). 사도 바울은,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간의 본성에는 참된 거룩함과 의로움과 지식이 새로워지는 일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엡 4:24; 골 3:10 참고). 우리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우리의 생각은 흐려지고 왜곡되었다(엡 4:17–19 참고). 이것이 이른바 죄의 ‘지성적 결과(noetic effects)’, 곧 죄가 지성에 미치는 영향이다. 또한 바울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으며(롬 8:7,8 참고), 하나님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롬 3:11; 고전 2:14 참고), 우리를 죄책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구원받아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롬 3:12 참고). 이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 본성을 바라보는 시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방금 언급한 성경 본문들에서 ‘전적 무능의 교리’, 곧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가 선행하지 않으면 타락한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를 수 없다는 교리가 비롯된다. 이 본문들은 우리의 의지가 죄악된 본성에 매이게 된 것이 타락한 이후 인간의 죄가 초래한 주된 결과 중 하나라고 가르친다. 죽은 사람이 자기 의지로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의 이웃들이 불쾌하게 여긴다 할지라도, 성경은 죄악된 인간 본성을 더없이 명확하게 가르친다.

자유 의지라는 개념이 안겨 주는 어려움 때문에, 종종 이 문제를 둘러싼 더 심층적인 질문들이 철학적 범주에서 다루어지기도 한다. ‘자유 의지란 무엇인가?’, ‘자유 의지가 하나님의 주권과 양립할 수 있는가?’를 비롯해 그와 관련된 수많은 질문들이 제기된다. 미국의 정치적 전제들 역시 사람들이 인간의 의지를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다스릴 이들을 선출할 자유가 있으며,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구원의 문제도 그와 같으리라고 오해한다. 어느 유명한 기독교 전도지에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그런 확신이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찬성표를 던지셨고, 마귀는 당신에게 반대표를 던졌다. 이제 당신의 표에 달려 있다.” 당신의 표에 따라 당신이 천국과 지옥 중 어디서 영원토록 살게 될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이 죄에 빠진 이후 인간의 의지가 죄악된 본성에 매이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지를 ‘해방’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기 전까지는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없다고 가르친다. 철학적 논쟁이나 민주주의적 전제들은 성경의 가르침이 던지는 질문들에 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죄 가운데 태어나 의지가 죄악된 본성에 얽매인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게 되는가?” 구슬리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전도자들이 흔히 하듯, “하나님은 당신이 건강하고 행복하며 형통하기를 원하십니다”라고 말하면서 유혹하고 부추겨도 소용이 없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는 없다. 성경은 의지를 포함하는 인간의 본성이 죄악된 욕망에 속박되어 있다고 분명히 밝힐 뿐 아니라, 하나님만이 주권적이고도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우리의 의지를 해방하여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그리스도를 믿도록 선택하게 하신다는 사실도 확실히 가르친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예수님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적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주님께로 나아간다고 설명하신다(요 1:12,13 참고).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이끄시며(요 6:44,65 참고), 우리에게 믿음과 그 열매인 회개를 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3–8절에서 예수님은 밤에 은밀히 자신을 찾아온 바리새인이자 산헤드린 공회원인 니고데모에게 이를 설명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조금이라도 깨닫기 시작하려면, 더욱이 죄책과 죄의 권세에서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신뢰하기로 선택하려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죄로 죽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셔야 한다고 분명히 밝힌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고 주권적으로 거듭나게 하심(중생)으로써, 우리의 의지를 죄악된 본성의 속박에서 해방하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끄시고(롬 10:17 참고), 썩은 열매만 맺는 못된 나무 같은 우리의 본성을 믿음과 회개의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로 바꾸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지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때, 비로소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

바울도 로마서 8장 28–30절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우리의 의지가 해방되는 순서를 제시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른바 ‘구원의 황금 사슬’을 통해, 바울은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으로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며, 마침내 영화롭게 하시기까지 구원의 과정을 이어 가신다고 설명한다. 또한 로마서 9장 16절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에베소서 2장 1–10절을 살펴보면, 바울은 먼저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죄로 죽었고 죄의 종이 되었으며, 그리하여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했다’고 설명한다(1–3절 참고). 그러고는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5절 참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게 하셨으며(8절 참고),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한 일을 자유롭게 행하도록 하셨다고 말한다(10절 참고). 하나님은 이처럼 주권적이고도 은혜로운 역사를 통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의 제자로서 그분을 따르며, 그분의 뜻을 힘써 행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또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이전에 죄에 사로잡혀 종살이하던 상태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자는 죄악된 본성의 속박에서 해방된 사람답게 살기를 선택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바울은, 이 새로운 자유를 얻은 우리에게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라고 일깨운다. 즉, 우리의 의지가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자유 안에 살면서 자유롭게 서로를 섬길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난 자로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갈 5:22–24 참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자유를 회복시켜 주시기 전에는, 죄 된 행실(죄 가운데 행하는 것)이 우리 삶의 지배적인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사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그러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은혜로운 역사(중생)를 통해 우리에게 자유를 회복해 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죄악된 길의 어둠을 미워하고 새 생명 가운데 행하기를 갈망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자유, 참된 자유를 누린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킴 리들바거

킴 리들바거

킴 리들바거(Kim Riddlebarger) 박사는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조직신학 방문 교수이자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위치한 크라이스트 리폼드 교회의 명예 목사이다. 저서로는 『A Case for Amillennialism』 및 Lectio Continua 시리즈 가운데 『First Corinthians』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