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정체 드러내기
2022년 11월 09일순교자들의 목소리
2022년 11월 12일세상 밖으로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모든 것을 기쁨으로 여김: 3세기의 그리스도 행전”의 세 번째 글입니다.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기원후 400년)에서 그가 정원에서 독서하던 중에 정원 담 너머로 이런 말이 들렸다고 기록한다. 어거스틴은 가까이 있던 로마에 쓴 바울의 편지를 들고, 다음 구절에 집중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3-14).”
이 유명한 사건 이전에도, 어거스틴은 지성적으로 기독교 진리에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적 욕망에 있어서 여전히 절제력을 갖지 못했던 어거스틴이었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있었지만 그의 의지가 이를 따라주지 못한다고 느꼈다. 어거스틴은 로마서 말씀을 읽으면서 도덕적으로 회심한 이후에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거스틴의 이 회심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원 담 너머로 소리가 들리던 그 시점에, 어거스틴이 읽고 있었던 책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거스틴은 아타나시우스가 쓴『성 안토니의 생애』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이 책은 어거스틴이 갈망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주제인 거룩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다.
안토니(251-356)는 금욕주의의 초기 중심지 중 하나인 이집트에서 금욕 생활의 초기 옹호자이자, 이에 모범을 보인 사람이었다. 그는 269년 무렵, 기독교 금욕주의를 받아들였다. 20여 년 동안 은둔 생활을 했고, 이후에는 수도원 형태의 공동체를 설립해 엄격한 금욕생활을 실천했다.
안토니는 그의 금욕주의적인 삶이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살았던 삶의 모습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에게 있어서 자기 부인이란 그리스도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순교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가 다른 수도자에게 준 조언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안토니에게 찾아온 모든 수도자들에게 그는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한 메시지를 전했다.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 선정적인 생각과 육신의 쾌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 잠언에 기록된 대로 배부름으로 속지 않는 것, 허영에서 벗어나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 자고 깰 때 거룩한 노래를 부르는 것, 마음에 성경의 교훈을 담고 있을 것, 성자의 행동을 기억할 것, 그리하여 계명에 유념하는 영혼으로 열심을 다해 교육받는다.”
이집트에서 출현하여 초대 교회 시대뿐 아니라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이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지닌 비전은 무엇이었을까? 금욕주의적 기독교는 어원상으로는 “훈련하다,” 또는 “연습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에스케오’에서 유래한다. 본래의 뜻으로는 운동선수들의 훈련을 나타낸다. 안토니, 아타나시우스, 어거스틴으로부터 발견되는 기독교 금욕주의의 비전은 거룩에 대한 철저한 헌신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의 삶, 그 이상을 원했다. 그들은 영적인 운동선수로서 더욱 훈련된 삶과 완전함을 추구했다.
여기에서 금욕이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율법 범위를 넘어선다. 그들은 이를 “완전함의 권고” 또는 “복음주의적 권고”라 부르며 수행에 임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구속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거룩함을 진지하게 구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추가적인 조언을 주셨다고 그들은 믿었다. 그들은 빈곤, 순결, 그리고 교회 권위자들에 대한 순종, 이렇게 세 가지로 예수님의 뜻을 요약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에서 금욕적 실천을 행했으며, 재산과 가족을 위해 사는 삶은 거부했다.
칭의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반율법주의로 흐를 수 있다. 사회 변혁에만 집중하면 자유주의에 빠질 수 있다. 성화에만 너무 집중하면 율법주의에 사로잡힌다.
거룩함에 대한 간절한 갈망은 많은 초기 금욕주의자들로 하여금 고립된 수도자의 삶을 추구하게 했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생활했고, 때로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단과 전투를 벌이며 외딴곳에서 살았다. 그들의 자기부정은 종종 극단으로 치달아, 자해하거나, 미치광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은둔 생활의 극단적인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금욕주의자가 어떤 공동체 안에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전이 안토니가 세운 공동체 안에 있었다. 개인의 헌신과 훈련을 위한 공동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조직화되고 체계적인 공동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집트는 수도사(“함께 생활하다”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라고 불리는 수도원 형태를 선구한 곳이다. 이러한 수도원 형태의 금욕주의적 생활을 확립하는 데 있어 가장 영향을 준 이집트인은 파코미우스(기원후 290-346)였다. 금욕주의적 삶을 살기 전의 파코미우스는 군인이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파코미우스는 수도원을 보다 세심하고 세밀한 군사 진영처럼 조직했다. 파코미우스는 320년경부터 이 모델을 따라 수도원을 세우기 시작했고, 이러한 종류의 수도원 주의는 동방정교회와 서방교회 모두에서 지배적이었다. 이렇게 엄격하게 구조화된 공동체는 개인을 위해서는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일과의 대부분은 공동 기도와 예배, 지역사회를 돕는 일, 잠자는 일이었다. 함께 식사할 때도, 한 수도자는 성경을 읽고 다른 수도자들은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16세기 종교 개혁은 기독교의 금욕주의적 비전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많은 개신교인은 금욕주의가 왜 매력적이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금욕주의를 율법주의적이고 독선적이며 창조 세계를 거부하고 비성경적이라고 일축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 비평들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금욕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금욕이란 그저 하나님과 거룩함을 추구하며 더욱 헌신하고 자기를 단련시키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때로는 나 역시도 거룩함에 대한 오늘날의 무관심이 우리로 하여금 금욕주의적 삶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영향력이 드러나는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사는 삶을 추구한다. 이 죄의 영향력은 세 가지의 뚜렷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째, 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서게 하면서도, 이 유죄 판결을 뒤집는 삶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둘째, 죄는 우리 자신을 부패하게 했고, 이는 우리의 삶이 거룩의 추구로 새롭게 되기를 요구한다. 셋째, 죄가 우리를 비참한 세상에 내버려 두었기에,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 이 비참함의 무게를 덜어 달라고 요구한다. 죄가 우리의 죄에 대해서는 칭의를, 부패에 대해 성화를, 그리고 세상의 비참함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어려움은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다. 비건전한 방식으로 이 셋 중 하나가 다른 두 가지보다 너무 두드러지는 경우에 위험이 발생한다. 칭의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반율법주의로 흐를 수 있다. 사회 변혁에만 집중하면 자유주의에 빠질 수 있다. 성화에만 너무 집중하면 집중할 때는 율법주의에 사로잡힌다. 이집트에서 발달한 이러한 금욕주의는 성화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보였지만, 그 선이 지나쳐 비성경적인 방식까지도 사용했다. 그럼에도, 거룩함에 대한 금욕주의자들의 열망만큼은 우리를 크게 고취시키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