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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아무 걸림돌이 없게 하라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성윤리”의 여덟 번째 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서 그 가르침을 어렵게 여기고, 더는 그분을 따르지 않았다(요 6:60–66 참고). 어떤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으로 인해 슬퍼하고 근심하면서 돌아섰다(막 10:22 참고).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전파한 복음은 그가 가는 거의 모든 곳에서 혼란과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후로, 모든 문화권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이유로 거센 반대에 부딪혀 왔다.

바울과 초대 교회는 이런 현실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복음을 분명히 들을 수 있도록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현실에 체념하기보다, 오히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일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하려고 온 힘을 다했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3,4절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오늘날 이 세상에 맞서 복음을 신실하게 전하려면, 우리는 타협 없이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죄인들이 복음 가운데 전해지는 그리스도를 듣고 믿고 따르는 일을 가로막는 모든 인간적 장애물을 단호히 제거해야 한다.

우리의 권리를 내려놓으라

복음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제거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전 9:12)라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은 복음 전하는 자가 사역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받을 권리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이와 관련된 성경적 원리를 밝힌 후, 자신이 그 권리를 하나도 쓰지 않는다고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이유가 무엇인가?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복음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리를 내려놓고, 우리를 대신해 죄가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분은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이 원리를 몸소 보여 주었으며, 고린도후서 6장에서도 그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그 무엇도, 심지어 우리 자신까지도 복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우리에게 속한 정당한 권리마저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믿고 전하는 그리스도와 복음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마땅히 요구되는 바이다.

우리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을 때, 영광스럽게도 우리는 구주를 더욱 닮아 가게 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선포하는 복음을 온전히 따르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 문화가 자기 백성을 위해 모든 것을 내주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그 메시지가 생생히 드러나는 것을 볼 때, 그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일에 핑계를 대지 못할 것이다.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라

우리의 권리를 내려놓을 뿐 아니라, 우리는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런 걸림돌 중 몇 가지를 강조한다. 분쟁(고전 1,3장 참고), 음행(5,6장 참고), 신자 간의 송사(6장 참고), 교리적 오류(15장 참고)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평판을 해치고 복음의 효력을 약화시킨다. 여기에 더해, ‘약한’ 형제를 기꺼이 용납하지 않는 태도(8장 참고)와 우상 숭배(10장 참고)도 그러하다. 이 모든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이런 것들이 자기 삶에 조금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각별히 힘써야 한다.

또한 무언가가 결여된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교회가 교리적으로 순수하고 도덕적으로 올바른데도 사랑이 없을 수 있다(13장 참고). 이것은 복음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 살아 내려고 힘써야 한다. 이것은 다른 이들의 삶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한 우정은 복음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강한 힘을 지니며, 그 자체로 많은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다. 귀 기울여 들어 주고, 인내하면서 질문에 답하고, 필요할 때 돕는 것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는 길을 평탄하게 만들 것이다. 사랑이 결여된 상태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에게서 돌아서도록 만드는 장벽을 세우는 것과 같다.

복음을 아름답게 드러내라

우리는 걸림돌을 제거할 뿐 아니라, 복음을 아름답게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살아 움직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광고판이 되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6장 3,4절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이 복음을 아름답게 드러내기 위해 어떤 일들을 했는지 설명한다.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직관을 거스른다. 그들은 가난했으나 풍성함을 나누었고, 죽은 자와 같았으나 생명을 전했다. 이것은 복음 사역에 따르는 대가를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사는 자로서 개인적인 대가를 기꺼이 치르려는 태도, 그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자아’가 우상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유익을 누리게 하고자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그리스도인은 아름다운 복음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바울은 이 일에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환난을 당하든 옥에 갇히든 그 밖의 어떤 일을 겪든, 그는 그리스도께 신실하려고 힘썼다(고후 6:4–10 참고).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낼 기회로 삼았다. 주님이요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이 끈질긴 신실함은 복음을 돋보이게 했으며,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 걸림돌이 없도록 하는 또 하나의 길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세상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이것이 필요하다. 무엇을 설교하는지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전하고 살아 내는지도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성경의 진리를 신실하고도 담대하게 선포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삶을 통해 인내하며 그리스도를 드러내 보이는 그리스도인도 필요하다. 우리가 바울처럼 복음에 충실하면서도 복음의 길에 그 어떤 걸림돌도 놓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앤디 영

앤디 영

앤디 영(Andy Young) 목사는 영국에 있는 옥스퍼드 복음주의 장로교회(Oxford 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이며, 배너 오브 트루스(The Banner of Truth)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