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2026년 07월 21일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과 관련된 몇몇 상황에 함께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의 삶에는 돌봄이 필요한 때가 찾아오는데, 그로 인해 미래가 매우 염려스럽고 걱정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거나 앞날이 불확실할 때, 자신이 상황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을 때는 불안해지기 쉽다. 반대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그런데도 우리 문화에서는 그 사실을 자주 언급하지 않으며, 그 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은 돌봄을 받는 이들과 돌보는 이들 모두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는 말씀을 들려준다.
나는 최근에 베드로전서 5장으로 겸손에 관해 설교했는데, 겸손한 사람은 주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에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긴다는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6,7절 참고).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위대한 분이시다. 여기서 베드로는 ‘돌보다’라는 단어를 현재 시제로 사용한다. 즉, 하나님은 계속 돌보신다. 그분은 돌보시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으신다. 쉬는 날도 없고, 무관심한 날도 없다. 이 ‘돌보다’라는 말에는 ‘주의를 기울이다’, ‘행동으로 보여 주다’, ‘마음을 쓰다’, ‘수고를 아끼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바로 그렇게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 시편 8편은 이 사실을 힘 있게 드러낸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4).
내가 자랄 때 주일학교에서 불렀던 찬송이 하나 있다. ‘땅을 지으신 하나님(God Who Made the Earth)’이라는 찬송이다.
“땅과 공기를 지으신 하나님,
하늘과 바다를 지으신 하나님,
빛이 생기게 하신 하나님,
그분이 나를 돌보시네.”
이 돌봄이라는 주제는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면서, ‘삼가라, 주의하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지 주의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세상의 염려가 하나님의 말씀을 막아 버릴 수 있다고 경고하신다(막 4:19 참고). 또한 신자로서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한다(고전 12:25 참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장로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양 떼를 보살피는 일이 맡겨진다(행 20:28 참고).
이 모든 명령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사실과 깊이 이어져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위대한 분이라는 점이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신명기 11장 12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받을 기업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명기 끝부분에서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직무를 넘겨주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설교한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신 32:9,10).
돌보는 이는 자신의 책임을 무겁게 느끼기 쉽다. 또한 돌보는 일이 쉼 없이 이어지는 상황에 쉽게 짓눌리기도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이해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엄청난 위로가 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시 94:19).
돌봄을 받는 이들이 자주 표현하는 마음이 있다.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제자도: 변함없는 핵심 자질 8가지』(The Radical Disciple, IVP 역간, 2010)에서 이 점을 매우 유익하게 설명한다.
“나는 때때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심지어 더 바르게 생각해야 할 그리스도인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동안에는 기꺼이 계속 살고 싶지만,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순간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도록 지음받았다. 당신은 나에게 짐이 되도록 지음받았고, 나는 당신에게 짐이 되도록 지음받았다. 가정은 물론 지역 교회의 가족으로서도 ‘서로의 짐을 함께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마가복음 4장에서 제자들은 갑작스럽게 사나운 폭풍을 만난다.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는데, 제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주무실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 4:38)라고 묻는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이보다 더 놀라운 질문도 드물다. 예수님께서 창조 세계 안으로 들어오신 것, 그분이 그 배에 타고 계셨던 것, 그 모든 것은 바로 우리를 돌보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우리를 그토록 깊이 돌보셨기에, 천사들에게 경배를 받으며 영원한 복락을 누리시던 하늘의 영광을 뒤로한 채, 슬픔의 사람으로서 질고를 아는 자가 되셨으며, 우리의 죄와 불법을 지고 갈보리의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런 그분께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묻는 것은, 그분이 누구며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드러낸다.
누가복음 10장에서 마르다도 같은 질문을 한다. 마르다는, 자신은 부엌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동생 마리아는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상황에 답답해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눅 10:40).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러 오셨으며 무엇을 우선으로 여기시는지를 마르다가 깨닫지 못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더할 수 없을 만큼 온전히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진리를 힘써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 이 진리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들 때, 우리는 변화될 것이다. 에덴동산 이래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기 쉽다.
예수님은 세상의 염려가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다고 경고하신다(막 4:19 참고). 우리를 온전히 알고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은 생활의 염려로 우리 마음이 둔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눅 21:34 참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한다.
우리는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에게 마음을 쓰고 그들을 돌본다. 하나님도 그분의 아들 안에서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며, 그러하기에 우리를 돌보신다. 그러므로 당신의 염려와 근심을 다 주님께 맡기라. 그분이 당신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사라 베츠 로즈(Sarah Betts Rhodes)의 찬송가 ‘땅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일깨운다.
“자기 아들을 보내사 갈보리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
내가 그분을 의지하면, 그분이 나를 돌보시리라.”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