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어디까지 점검해야 하는가? 

2026년 06월 27일

위험에 처한 두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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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회를 돕는 일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진정한 기독교”의 아홉 번째 글입니다.

내 친구와 그가 목회하는 교회는 최근 매우 창의적인 건축 계획에 착수했다. 그들은 사용하던 공간이 비좁아졌는데도 더 이상 확장할 방법이 없었고, 결국 시내에 있는 다른 교회와 예배당을 맞바꾸기로 했다. 그곳은 교인 수가 줄어든 탓에, 예배당이 지나치게 넓었기 때문이다. 두 교회는 신학적 배경과 교단이 달랐지만, 서로 돕기 위해 협력했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사역 가운데 서로에게 복이 되었다. 그와 비슷하게,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두 교회가 통합된 일이 있었다. 한 교회는 건물이 있었지만 목사가 없었고, 다른 교회는 목사가 있었지만 건물이 없었다. 두 교회는 한쪽이 다른 쪽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힘은 통합 과정에서 양보해야 했던 모든 것을 훨씬 뛰어넘었다.

지나치게 개인화된 우리 문화 속에서, 각 교회가 자기 사역에 필요한 것만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교회를 돕는 모습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없다. 우리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지역 교회 가운데 이 명령을 실천해야 하며, 서로에게 헌신함으로써 이를 실제로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라 해도, 우리의 사랑이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이 속한 지역 교회만으로 국한되지 않으며, 그보다 훨씬 더 크고도 넓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겪은 모든 고난, 곧 옥에 갇히고 매 맞고 파선한 일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모든 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염려한다고 밝혔다(고후 11:23–28 참고). 바울이 개인적으로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모든 교회를 염려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주된 관심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들, 곧 다른 교회들의 안녕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빌 1:5)한 것과, 자신이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자 사역하는 동안 쓸 것을 여러 번 보내 준 것(빌 4:16 참고)을 칭찬한다. 이처럼 다른 교회들을 돕는 모습은 참으로 칭찬할 만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는 어떻게 그와 같이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관점에서 다른 교회들을 돕는 방법 다섯 가지를 살펴보자.

기도 기도를 통해 다른 교회를 돕는 것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이다. 우리가 알고 관계를 맺고 있는 교회들을 위해 계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기도할 수도 있고, 일상을 보내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교회들을 위해 즉흥적으로 기도할 수도 있다. 여러분의 교회에 기도 책자가 있다면, 지역의 몇몇 교회에 연락해 그달에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제목을 세 가지에서 다섯 가지 정도 알려 달라고 요청해 보라. 또는 차를 타고 시내를 지나다가 교회를 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굳게 지켜지고 복음이 선포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기도하라.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이 말했듯이, “기도의 손으로 약속의 나무를 흔들지 않으면, 그 열매는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기도가 약속의 나무를 흔들어, 그 교회들 가운데 하나님의 복된 열매가 풍성히 맺히기를 바란다.

개척 이전에 교회가 없던 곳에 새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된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교회 개척은 다른 이들의 지원과 격려가 절실히 필요한 도전적인 사역이다. 복음이 꼭 필요한 험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교회 개척자들을 돕는 것은 우리가 힘을 보탤 수 있는 아름다운 사역이다.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팀을 이루어 협력할 때, 오고 오는 세대 가운데 제자들을 세우는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일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다른 교회들을 의미 있게 돕는 일에 우리가 남길 수 있는 뜻깊은 유산이다.

함께함 나는 목사로서, 출장이나 휴가로 우리 지역을 지나다가 우리와 함께 예배하고자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복을 누린다. 그들에게는 우리 교회에 친구나 가족과 같은 특별한 연고가 없다. 다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더 큰 몸이라는 유대감에 이끌려 우리 교회로 나아온다. 이처럼 단순히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지역 교회와 목회자들에게는 큰 격려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여행하는 가운데 정기적으로 그 교회를 찾게 된다면, 서로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지역 안에서도 다른 교회의 특별 예배나 행사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이런 유대를 맺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다른 교회와 함께하는 것은, 우리가 자기 교회 회중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와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협력 주님의 사역은 한 교회가 홀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다른 교회나 심지어 개별 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해 공동의 사역을 감당하면, 사역의 범위와 영향력이 확장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모아 지원할 수 있는 사역의 예를 들자면, 임신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위한 지역 상담 센터, 식료품 지원 사역, 중독 회복 프로그램, 교도소 사역, 위탁 가정 지원 서비스,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사역 등이 있다. 물론 이것들은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이처럼 궁핍하고도 연약한 이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들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 지역 사회를 섬길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된다.

교회 정치 마지막으로, 우리가 서로를 돕는 모습은 교회 정치 형태에도 반영되어야 한다. 교회 전반에 걸쳐 추문이 너무도 잦은 이 시대에,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회들 간에 연결 체계를 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공의회는 교회들이 함께 모여 문제를 다루는 본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은 체계는 이단적 가르침을 막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교회를 바로잡으며, 제멋대로 행하는 목회자를 징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체계는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앞서 언급한 지원과 협력을 자연스럽게 장려함으로써, 교회들이 의미 있고도 지속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굳게 세워 가도록 도울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롭게 된 교회로서 함께 모여 완전하게 연합할 것이다. 지금 다른 교회를 돕는 일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매주일 출석하는 교회를 넘어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를 바라보게 한다.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날까지, 우리가 지역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그 너머에서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고전 15:58)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조엘 스미트

조엘 스미트

조엘 스미트(Joel E. Smit) 목사는 조지아주 스미르나에 있는 스미르나 장로교회(Smyrna Presbyterian Church)의 담임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