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예배
2026년 0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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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7일자신을 어디까지 점검해야 하는가?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진정한 기독교”의 여덟 번째 글입니다.
시험은 어떤 형태든 불편하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SAT와 ACT처럼 엄격한 평가를 즐기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정기 검진을 비롯해, 되도록 미루고 싶은데도 6개월마다 돌아오는 치과 검진, 더 중대한 건강 검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것들 역시 부담스럽다. 하물며 영적 점검은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 130:3) 그런데도 주님은 자녀들을 거룩한 자기 점검으로 적극 부르신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고후 13:5). 성경에서 이런 명령과 요구를 마주하면, 우리의 마음이 동요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의아해하면서, ‘내가 믿음 안에 있는지 나 자신을 시험해 보라고? 생각만 해도 불편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음 안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것보다는 더 확실한 결론에 이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바로 여기서 문맥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자신을 점검하는 목표는 의심이 아니라 확신에 이르는 것이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한다.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5절). 그는 이를 통해 신자들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를 기대한다. 베드로도 비슷한 취지로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 성경적 자기 점검의 목적은 우리를 의심과 불신과 두려움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상태로 이끄는 것이다. 자비로운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진리 안에 굳게 서기를 원하시지, 그러지 못할까 봐 걱정하다가 기진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또한 이렇게 자신을 시험하고 점검하는 일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적어도 함께 모여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 곧 ‘이것을 행하여 주를 기념할 때마다’ 자신을 살펴야 마땅하다(고전 11:25 참고). 물론 교회마다 주의 만찬을 지키는 빈도는 다르지만, 이렇게 자신을 점검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28절 참고).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 성례를 제정하셨을 때, 곧 최후의 만찬이 행해지던 그 엄숙한 밤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합당하게 자신을 살피라고 요구하셨다. 그리고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그들 중 한 사람이 주님을 배반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열한 제자는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음모를 꾸미러 나간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정직하게 자기 마음을 살피면서, 한 사람씩 “주여 나는 아니지요”(마 26:22)라고 예수님께 물었다. 그와 동시에 멸망의 자식인 유다도 겸손한 척하면서 같은 질문을 던졌다(25절 참고). 식탁에 앉은 신자들은 성경적으로 자신을 점검했지만, 믿지 않는 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믿는 제자들이 자신을 살핀 것은 자기 믿음을 뒤흔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굳게 세우려는 것이었다. 신실한 자기 점검은 우리를 지나친 의심과 걱정과 두려움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참으로 믿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이처럼 신실한 자기 고찰과는 달리, 우리 모두가 피하고자 힘써야 할 지나친 자기 점검도 있다. 첫째,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우리를 믿음 안에서 더욱 굳게 세우시려는 하나님을 놓칠 수 있다. 신자가 자기 자신만을 들여다보면, 그런 자기 점검을 통해 기르고 강화해야 할 우리 아버지와의 수직적 관계를 도리어 무너뜨릴 수 있다. 둘째, 더 흔히 일어나는 일로, 자기 점검의 필요성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점검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청교도들은 종교적으로 과도하리만큼 엄격하게 자신을 분석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유명했다. 존 번연(John Bunyan)은 이런 경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랑받는 작품인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에서, 크리스천이 절망의 수렁에 빠지는 대목을 통해 그토록 중요한 경고를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번연은 그 수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 진창 같은 수렁은 결코 메워질 수 없다. 이곳은 ‘절망의 수렁’이라 불린다. 이곳이 죄를 자각할 때 뒤따르는 찌꺼기와 더러움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는 골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죄인이 잃어버린 바 된 자신의 상태를 깨달을 때마다 그의 영혼에서 수많은 두려움과 의심과 낙심에 빠지게 만드는 생각들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자신의 죄와 죄책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이 끔찍한 곳에 갇혀 있다가, ‘도움’이라는 이름의 조력자가 와서 손을 내밀 때에야 비로소 거기에서 빠져나온다. 도움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기 점검의 늪에서 우리의 주인공 크리스천을 끌어내기 전에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디딤돌을 찾지 않았소?” 번연은 독자에게 자기 점검 자체를 다시 점검해 보라고 재치 있게 권한다. 그는 우리가 수렁 속에서 공연히 허우적거리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비참할 정도로 자기 죄와 씨름에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라고 권한다. 그러고는 지나친 자기 점검이라는 진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단순한 길,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여 준다. 신자는 어떻게 디딤돌을 밟고 올라가 지나친 자기 점검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디딤돌’을 찾지도 않은 채 주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만을 오래 응시한다면, 자기 점검이 지향하는 올바른 목적에서 벗어나고 만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한목소리로 전하듯이, 성경적 자기 점검의 목적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완성하신 사역 안에서 자신이 안식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번연은 청교도들이 자기 영혼을 지나치게 살피는 경향이 있음을 간파했고, 오랜 세월 검증된 해결책을 제시했다. 곧 복음을 바라보며, 자신이 그 복음을 믿는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을 점검하는 일이 오히려 진창으로 끌어내리는 소용돌이로 향하는지, 아니면 그 참된 목적지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주목하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자신을 살피고, 자신의 믿음이 진실함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