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는 위선자들로 가득한가?
2026년 08월 11일
새 다윗이신 예수님
2026년 08월 15일평범함에 안주하는 탁월한 능력
나는 『의미를 향한 갈망』(The Hunger for Significance)에서, 우리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망을 탐구한 바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이 지닌 존엄과 가치, 존재 의미의 근거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 책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인은 고통스러운 공허함을 안고 산다. 우리가 느끼는 공허함은 새 차나 더 나은 직장, 더 큰 집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 각 사람의 삶이 의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 우리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현대인이 존재 의미와 인간의 존엄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세계관에 절망의 기운이 깊이 스며들어 우리를 압도하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인간 존재가 진흙 같은 원시 물질에서 운 좋게 흘러나온, 우주의 우연적 산물에 불과하다는 말을 거듭 듣는다. 즉, 우리의 기원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소멸하는 것을 우리의 운명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절망스러운 두 지점 사이에서도, 절박한 마음으로 존재 의미와 존엄을 찾고자 노력하곤 한다.
『테이블톡』(Tabletalk)의 이번 호에서는 탁월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살피는데, 그것은 많은 경우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우리의 근본적인 열망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탁월함을 추구하는 동기는 다양할 수 있으며, 때로는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탁월함을 추구하는 일은 단순히 자신이 하는 일에서 탁월해지고 싶다는 갈망에서 나올 수 있다. 한편으로, 이런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은 경쟁에서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동기에서 비롯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혜 있는 인간)’라는 용어로 인간다움을 규정해 왔다. 19세기의 허무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인간 존재를 가장 뚜렷하게 규정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sapiens)가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 곧 정복하려는 의지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폭군과 독재자를 움직이는 권력욕을 일반적으로 악한 것으로 여기지만, 니체는 그것을 미덕으로 간주했다. 니체에게 초인(Übermensch)이란 무엇보다도 정복자였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권력에의 의지를 억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것을 탐욕스럽게 부추기는 사람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권력에의 의지는 흔히 조직의 사다리를 올라가 권위와 권력의 정점에 이르러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더 약한 사람들 위에 주권을 행사하면서 그들을 지배하려는 경쟁적 욕망은 본래적인 인간다움이 아니라 그 인간다움의 타락상을 보여 준다. 즉, 그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부패가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낸다.
다른 한편으로, 탁월해지고자 하는 강한 열망은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목표 의식에서 비롯될 수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내재해 있으며, 그 열망 자체는 죄악된 욕구가 아니다. 나는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이런 열망을 주셨다고 믿는다. 우리는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로서, 우리가 지닌 존엄이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닌 존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치 있는 존재로 선언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가치와 존엄을 가진다. 하나님은, 가능한 한 최고의 탁월함을 추구하고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힘쓰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이 세상에서 사용할 은사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탁월함을 추구하는 우리의 열망은 그 은사들을 신실하게 사용하려는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존재 의미를 찾으려는 열망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 약동하는 이 가치 있는 열망도 얼마든지 빗나갈 수 있다. 존재 의미를 찾으려는 열망이 경건한 윤리로 제어되지 않으면, 그것은 니체식 권력 의지로 변질되기 쉽다.
목적한 바를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탁월함을 추구하는 정당한 동기이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된 가장 중요한 목적, 곧 하나님의 영광을 증언하는 것이다. 평범함에 중독되어 현 상태에 안주하며 흡족해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증언하지 못한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높은 부르심,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높은 부르심을 추구하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나태함에 빠져 뒹굴 때는 그 높은 부르심을 결코 이룰 수 없다. 나태함과 게으름은 거룩한 성경이 한결같이 단호하게 정죄하는 쌍둥이 악덕이다. 우리가 탁월해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탁월함에 이를 만큼 기꺼이 수고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가치 있는 어떤 일에서든, 부지런하고도 절제된 수고 없이 탁월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태함은 성취를 가로막는 적이다. 여기에 덧붙여, 가장 높은 수준의 성화를 이룬 인간의 마음이라 하더라도, 탁월함을 추구하는 일에는 언제나 부패한 교만이 섞여 들기 마련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목표를 이루고, 전례 없는 방식으로 인간 성취의 정점에 오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기껏해야 무익한 종일 뿐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구속 외에는 그 무엇도 자랑할 권리가 없다.
그러므로 탁월함을 추구하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가능한 한 가장 탁월해지기 위해 힘이 닿는 데까지 우리 자신을 밀어붙이자. 동시에 교만이라는 악한 충동이 우리 수고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훼손하지 못하도록 늘 깨어 살피자. 열심히 수고하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탁월함을 이루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