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근신하라 

2026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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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의 의미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의지의 속박”의 여덟 번째 글입니다.

‘임직(ordination)’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떤 이들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떠올린다. 로마 가톨릭은 성직자를 세우는 ‘서품(ordination)’이 서품을 받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성사라고 가르친다. 종교개혁 이래 개신교회는 성경을 근거로, 그와 같은 가톨릭의 가르침에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해 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임직’이라는 말에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한다. 임직, 곧 장로나 집사의 직분을 감당하도록 그들을 구별하여 세우는 예식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도, 당시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성경이 가르치는 임직이란 이 두 극단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임직’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지만, 그 개념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난다. 간단히 말해, 임직이란 하나님의 교회가 한 사람을 직분자로 권위 있게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임직의 사례를 볼 수 있다. 구약에는 아론이 제사장으로 세워진 일(출 40:12–15; 레 8–10장 참고),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진 일(신 34:9 참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진 일(삼하 5:1–5 참고), 엘리사가 선지자로 세워진 일(왕상 19:16,19–21 참고)이 기록되어 있다. 신약에서는 사람들이 교회의 직분자로 세워진 일(행 6:6; 13:3; 딤전 4:14; 딤후 1:6 참고)과 사람들을 교회의 직분자로 세우라는 명령(딤전 5:22; 딛 1:5 참고)을 볼 수 있다.

임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교회의 모든 사람이 직분자로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장로나 집사의 직분을 감당할 만한 은사를 인정하여 부른 사람들이 임직의 대상이 된다. 교회는 이런 직분에 필요한 은사를 갖춘 사람들을 확인한 후, 그들을 해당 직분자로 선출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교회의 직분자가 아니다. 교회의 장로들이 그 직분을 위해 이들을 구별해 세워야 한다. 이러한 직분자로 세워지는 일에는 기도와 안수가 따른다. 기도와 안수를 통해, 그들은 직분자로 구별되어 세워진다. 이로써 그들의 수고 가운데 주님의 복이 임하기를 구하며 주님께 그들을 맡기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행전 6장에서 직분자를 세우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이 본문은 신약 교회에서 집사라는 직분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열두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제자를 불러”(2절) 모으고는 이렇게 지시한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3절). 그러므로 집사의 직분을 맡을 사람들은 은사를 갖추었다고 인정받을 뿐 아니라 교회의 선택도 받아야 한다. 이어서 사도들은 교회에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3절)라고 말한다. 즉, 교회의 말씀 사역자인 사도들이 그들을 집사로 세우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했다. 교회는 자격을 갖춘 일곱 사람을 택하여(5절 참고), 사도들 앞에 세운다(6절 전반절 참고). 그러자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한다(6절 후반절 참고). 즉, 사도들이 이들을 집사로 세운 것이다.

신약을 더 읽어 가면, 장로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에게도 이와 동일한 방식이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딤전 4:14; 딤후 1:6 참고)를 상기시킨다. 디모데는 장로로서, 다른 장로들과 함께 ‘안수하는 일’, 곧 교회 안에서 은사를 갖추고 선택된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딤전 5:22; 딛 1:5 참고).

그렇다면 임직은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한 교회의 직분을 맡을 일이 결코 없을지도 모르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임직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규례로, 비록 교회가 직분자를 선택할지라도 그 직분과 그에 따르는 권위는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교회에 일깨워 준다. 그들의 권위는 그들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의 권위는 교회로부터 나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이와 같은 임직은 모든 교회의 직분자가 그리스도 앞에서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온 교회에 일깨워 준다. 직분자는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자 힘써야 한다. 그러하기에 직분을 받는 이들은 임직 예식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헌신하겠다고 공적으로 서약한다. 또한 같은 이유로, 이 예식에서 회중 역시 직분자들에게 주 안에서 마땅한 모든 존경과 순종을 보이겠다고 서약한다(살전 5:12; 히 13:17 참고).

둘째, 임직은 직분자가 교회를 섬기기 위해 큰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들의 사역에서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회에 일깨워 준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자신의 사도적 사역을 돌아보면서,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6)라고 묻는다. 그러고는 몇 구절 뒤에 그 질문에 대답한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5,6).

그러하기에 임직에는 기도가 수반된다(행 6:6; 13:3 참고). 기도를 통해,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주시고, 이들을 통해 교회에 복을 주시기를 간구한다.

교회가 걸어온 길에서 흔히 보듯이, 그리스도는 직분을 맡기시는 이 평범한 행위를 통해 자신의 백성에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다. 무엇보다 임직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를 계속 다스리시며, 그들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선한 선물들을 주신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엡 4:7–16 참고). 요컨대 임직은 교회가 반갑게 맞이해야 할 ‘새로 고침(reset)’이다. 다시 말해, 임직은 우리의 눈이 하늘을 향하도록, 그리하여 언제나 머물러야 할 곳, 곧 부활하사 통치하시는 우리의 구주만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훈련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가이 워터스

가이 워터스

가이 워터스(Guy Prentiss Waters) 박사는 미시시피 잭슨에 있는 리폼드 신학교의 James M. Baird Jr. 신약학 교수이자 미국장로교의 강도장로다. 그는 How Jesus Runs the Church 및 The Life and Theology of Paul 을 포함한 여러 책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