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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근신하라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의지의 속박”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첫 번째 서신의 끝부분에서 중대한 말씀을 전한다. 바로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고 강력히 촉구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서로를 대할 때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고 권면한 직후에 이어진다(벧전 5:5–7 참고). 베드로는 내면의 겸손을 살피고 나서 외적인 것으로 시선을 돌려, 교회가 현재 맞닥뜨린 위험한 원수인 마귀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8절 참고).

그는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실재하는 인격적인 원수를 묘사한다. 그 사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오류 중 하나이다. 물론 피조물인 마귀에게는 하나님께만 있는 속성인 전능함과 전지함, 편재성이 없다. 그러나 마귀는 신자들에게 큰 해를 입힐 수 있는 만만치 않은 대적이다. 실제로 베드로가 ‘대적’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헬라어(antidikos, 안티디코스)에는 법정에서 맞서는 상대방을 가리키는 법률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하는 강력한 고발자임을 일깨워 준다(계 12:10 참고). 예를 들어, 스가랴의 환상에서 마귀는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 곁에 서서, 그의 죄를 고발하면서 그를 합당하지 않은 자로 몰아가려 한다(슥 3:1 참고). 마찬가지로 사탄은 우리의 죄를 들추어 참소하여, 우리를 의심과 절망에 빠뜨려 무력하게 만들고자 한다. 이는 성령의 사역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실 때,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우리 안에 회개하고 더욱 굳건히 믿으며 감사함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새로운 열망을 일으키신다. 반면 사탄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멀어져 수치와 패배감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려고 한다. 베드로는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말한다. 참으로 생생하고도 두려운 비유이다. 사탄의 포효는 참소, 박해, 거짓 가르침, 또는 기만적인 유혹의 목소리로 나타날 수 있다. 그 형태가 어떠하든, 사탄의 목적은 언제나 한결같다. 교회를 공격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하려는 것이다. 마귀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일 뿐 아니라 간교하고도 잔인하다. 사탄은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연약한 사람과 고립된 사람, 부주의한 사람을 살핀다. 그는 단지 유혹하려는 것이 아니라 삼키려 한다. 곧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분열을 조장하며, 영혼을 파멸로 몰아넣으려 한다.

그러하기에 베드로는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어라”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들은 정신이 명료하고 영적으로 경계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신약성경 곳곳에 나타난다(마 26:41; 살전 5:6; 딤후 4:5 참고). 여기서 “근신하라”(nēphō, 네포)는 단지 술 취하지 말라는 뜻만이 아니라, 진리에 순복하며 절제하는 정신 상태를 유지하라는 뜻도 담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 마음을 두고, 교만함과 안일함과 세상에 사로잡혀 영적으로 둔감해지지 않도록 맞서 싸우라는 의미이다. “깨어라”(gregoreō, 그레고레오)는 잠들지 않고 깨어서, 위험과 유혹과 거짓 가르침을 영적으로 경계하라는 뜻이다. 즉, 우리 마음을 지키고, 악한 자의 궤계를 주의 깊게 살피라는 말이다. 이것들은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며, 오히려 영적 전쟁을 위해 능동적으로 힘써 실천해야 할 일이다.


또한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을 보여 준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사탄의 능력을 과소평가해 비극을 초래했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마 26:31). 이에 베드로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33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려 주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4절). 믿을 수 없다는 듯 불쾌한 기색을 내비친 베드로는 더욱 강하게 장담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5절) 바로 그날 밤,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그는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사탄의 힘을 과소평가했다. 이제 노년에 이른 베드로는 고난받는 젊은 교회에 편지하면서,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무게를 담아 권면한다. 그는 아무 준비 없이 대적을 마주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사탄을 당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우리를 두려움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는다. 바로 다음 구절에서 그는 신자들에게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9)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원수 앞에서 무력하지 않다. 우리는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음으로써 사탄을 대적할 수 있다. 믿음을 굳건하게 한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에 뿌리를 내리고, 그리스도의 의의 호심경을 붙이며,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싸우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홀로 서 있지 않다. 베드로는 교회에 이 권면을 전하면서 격려를 덧붙인다.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9). 우리에게는 함께하는 형제들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의 백성과도 하나가 된다. 포효하는 사자는 고립된 자를 노린다. 그러나 목자장이 돌보시는 가운데 함께 머무는 양 떼는 보호를 받는다. 그리스도는 지역 교회 안에 허락하신 은혜의 방편들과 성도의 교제를 통해 자기 백성을 원수의 아가리에서 지켜 내신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기 양 떼를 보호하시는 선한 목자를 신뢰해야 한다. 우리가 사탄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찬가지로 사탄도 그리스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롬 8:33,34; 요일 4:4 참고). 그리스도 역시 의로우시며 자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미 승리하신 ‘사자’로 묘사되신다(계 5:5 참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유다 지파의 사자가 이기지 않으셨더라면, 누가 우는 사자의 이빨을 피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스도는 사탄에게 밀처럼 까불린 베드로를 회복시키셨다.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벧전 5:10) 하실 것이다. 근신하고 깨어 있기를 힘쓰면서,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자.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마이클 브라운

마이클 브라운

마이클 브라운 (Michael G. Brown) 목사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리폼마타 필라델피아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URCNA 소속 선교사다. 그는 , 렉시오 콘티누아(Lectio Continua) 시리즈의 디모데후서 주석 등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고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