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과 겸손의 정의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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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겸손의 정의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교만과 겸손”의 두 번째 글입니다.

교만과 겸손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속성이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의 전형적인 관점은 이 두 속성을 뚜렷이 대조하여, 교만은 악한 특성이고 겸손은 선한 특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성경은 여러 증거로 이 관점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잠언 3장 34절 말씀(야고보서 4:6과 벧전 5:5에 인용)은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로 이 두 속성 사이를 명확하며 간단하게 대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늘 이런 식일까? 겸손은 항상 미덕인가?

우리는 교만은 언제나 악하고 겸손은 언제나 선하다는 빠르고 쉬운 답을 원하지만, 교만과 겸손도 상황에 따라 미덕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교만과 겸손이 어떻게 둘 다 악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다음 어떻게 둘 다 미덕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악이 되는 교만과 겸손

교만과 겸손이 함께 악의 범주에 속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거울을 들여다봐야 한다. 먼저 자신을 바라보란 뜻이다. 자신이 교만과 겸손의 근원이라면, 이 둘은 이기적인 악이 된다.  

성경에서 교만은 주로 이기적인 악으로 제시된다. 성경에서 교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대개 경고나 견책을 위해서다. 교만의 악은 자신을 자랑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번영 신앙같이 우리의 번영을 자랑삼고, 성공적인 전도를 자신의 공로로 돌리며, 자신을 훌륭한 학자라고 스스로 대견해하는 것이다. 교만의 죄는 이 모든 유익의 근원이신 하나님(하나님의 섭리, 지혜, 은혜)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에게로 공로를 돌릴 때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고려해 보면 우리 자신에 대해 자랑하거나

우리가 성취한 것을 자랑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주님만을 자랑해야 한다.

자아에 대한 교만은 우리의 분명한 본성이며 우리 안에서 죄악으로 작용한다.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자기 의에 대한 교만을 경고하셨을 때, 그들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눅 18:9)이라고 묘사하셨다. 우리의 죄와 비참함의 무게를 깊이 느끼게 될 수록 이기적인 교만은 재빨리 사라진다. 바울을 생각해보라. 자신의 모든 업적과 공로를 자랑하는 대신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로 묘사하며 서신을 시작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이기적인 교만과 자랑은 우리 마음에 설 자리가 없게 된다. 호라셔스 보나르(Horatius Bonar)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는 사랑하고, 그가 사시기 때문에 나는 산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비에 생명을 빚진 자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교만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뿌리를 둔 겸손을 경계해야 한다. 잠시 후에 살펴보겠지만 겸손에 대한 성경의 주된 가르침은 미덕의 겸손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에 근원을 두는 겸손은 이기적인 교만과 같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겸손이 자기중심적이 되면 미덕이 곧 악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자기 중심적인 겸손은 악이며 이것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자기 비하, 비겁함, 거짓 겸손이 겸손처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신앙이 좋은 분에게 장로나 집사로 섬겨 달라고 요청했는데, “겸허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섬길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하자. 이 대답은 겸손하게 들리지만, 사실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단순한 자기 비하와 겸손의 혼동에서 온 것일 수 있다. 우리는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비하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또한 겸손이 악이 되는 경우는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침묵하는 비겁함을 보일 때이다. 우리가 악에 맞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평화를 위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침묵은 겸손의 미덕이 곧 비겁함의 악으로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 중에 기독교를 조롱하거나 오랜 친구들이 모든 종교는 다 똑같다고 말할 때 겸손의 이름 아래 침묵하는 것은 사실 비겁함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교만보다 더 악한 거짓 겸손을 경계해야 한다. 교만의 악은 적어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거짓 겸손은 교만을 둔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유명한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보자. “제가 일 년 동안 다섯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가족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언뜻 듣기에는 겸손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사실 감사를 표하기보다는 자신의 성취를 드러내고 찬사를 구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우리는 자기 비하, 비겁함, 거짓 겸손처럼 자신을 위장하고 있는 겸손의 악을 벗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이런 악을 멀리하고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미덕이 되는 교만과 겸손            

교만과 겸손 둘 다 우리 자신에서 근원을 찾을 때 악이 되는 것처럼, 자신에게서 눈을 떼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이 두 속성은 미덕이 된다. 주님을 바라볼 때 교만과 겸손 둘 다 진정한 미덕이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미덕이 되는 교만의 적절한 예들이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롬 15:17) 여기서 자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기초하며 하나님을 섬기려는 동기에서라는 것을 주목하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자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을 자랑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고려해 보면 우리 자신에 대해 자랑하거나 우리가 성취한 것을 자랑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주님만을 자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학위를 마쳤을 때, 우리의 신앙을 대변하는 토론을 했을 때, 자녀가 기독교인과 결혼했을 때 정당하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자부심의 근거가 우리의 지혜와 말주변, 우리가 해 준 결혼에 대한 조언이 될 수는 없다. 우리의 자랑은 항상 주님 안에서만 찾아야 한다. 바울은 예레미야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전 1:31) 하나님의 주권적인 말씀은 우리를 인도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근원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한다.

둘째, 우리가 받은 구원의 선물을 자랑할 수 있다. 히브리서 3장 6절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다. 우리의 구주를 자랑하는 것은 선한 것이다. 선지자, 제사장, 왕이라는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은 결코 구원을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을 자랑해야 한다. 우리는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는 진리를 자랑스럽게 선포해야 한다. 이런 교만의 예들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렇게 미덕의 교만이 주님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것처럼 미덕의 겸손도 주님을 바라보는 데서 온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겸손하게 된다. 죄에 대한 인식과 주님이 주신 은혜는 둘 다 미덕의 겸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죄의 무게를 인정할 때 겸손의 열매가 자란다. 우리는 타락한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났으며 영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죄와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이는 참으로 겸허한 진리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기 비하와 거짓 겸손으로 향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성도라고 불리는 죄인들의 교제로 연합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라도 다른 그리스도인보다 더 낫거나 못하지 않다. 겸손은 모세, 바울,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공유하는 우리의 공통된 자질이다(민 12:3; 고후 10:1). 따라서 베드로는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벧전 5:5)고 말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들로서 겸손을 입으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아이작 왓츠(Isaac Watts)는 “자신의 공허함과 가난함을 보는 겸손한 영혼은 복이 있다. 그들은 은혜의 보물을 받았고 하늘에서는 기쁨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결론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교만과 겸손을 멈추고, 경건한 방식으로 교만하고 겸손하라는 부르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미덕이 성장할 수 있도록 악을 경계해야 한다. 악을 벗고 미덕을 입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이다. 우리가 주권자이신 주님께 기도할 때 진정한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우리는 겸손하게 뉘우치며 기도해야 한다. 아들을 통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주권자이신 우리 아버지를 자랑해야 한다. 기도는 죄인인 우리를 겸손하게 하며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준다. 그러니 계속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나아가자.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자부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러주시니 겸손함으로 나아가자.

우리의 죄와 비참함의 무게를 깊이 깨닫는 순간 이기적인 교만은 속히 사라질 것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로버트 갓프리
로버트 갓프리
로버트 갓프리(W. Robert Godfrey) 박사는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강사진이며,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명예 총장 겸 교회사 명예 교수이다. 그는 또한 Saving the Reformation을 포함한 6부작 리고니어 티칭 시리즈인 A Survey of Church History 및 여러 책들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