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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07일왜 설교는 은혜의 방편인가?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제자도의 기초”의 아홉 번째 글입니다.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당신이 내가 말하도록 하지 않으면,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런 말이 오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말하기와 듣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소통이 이루어진다.
성경의 중심에는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이것이 우상들과 현저히 대조되는 점이다. 즉, 하나님은 소통하신다.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의 말대로, “그분은 거기 계시며, 침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자신을 알리시며, 우리는 그분이 지으신 것들에서 그분의 영광과 위엄과 아름다움의 한 조각을 본다. 그분은 이렇게 세상에서 거스를 수 없는 능력을 드러내시지만, 우리는 창조 세계를 통해서는 그 이상의 것을 알 수 없다. 그대가 하늘을 향해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라고 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할 것이다.
성경을 펼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말씀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선포하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첫 장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라는 후렴구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분의 말씀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한다. 우리는 맨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능력과 권위를 본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과 행하심을 통해 다른 모든 신들과 구별되는 자신을 보여 주신다. 이사야 55장 11절은 이것을 잘 요약한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우리는 성경의 첫부분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그 말씀으로 그분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면 빛이 존재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한 백성을 불러내 구속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그들을 인도하신다. 그분은 선지자를 보내 자신의 율법과 메시지를 백성에게 선포하고 자신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다스리신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구원과 심판의 소식을 전한다.
또한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 아들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자체로서 곧 하나님이시며,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며,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요 1:1-4 참고). 그리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 1:14 참고). 주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설교자시다. 예수님은 당대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는 분으로서 가르치신다. 그분은 단순하고도 명료하며 심오하게 설교하신다. 그분의 말씀은 무리를 사로잡는다. 그분의 음성은 죽은 자를 살리고, 폭풍을 잠잠하게 하며, 귀신을 내쫓고, 질병이 낫게 한다. 그분은 하나님을 알려 주신다. 또한 그분은 설교자들을 보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게 하시며, 그들은 그분의 권위로 말한다. 사람들이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곧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진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일을 통해, 택자들을 불러 모으고 그분의 교회가 세워진다.
나이 든 사도 바울은 자기 생애 너머를 내다보면서 사도 시대 이후의 교회를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디모데에게 가장 핵심적인 한 가지 명령을 전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하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말씀하는 하나님이시며, 오늘도 선포되는 설교를 통해 말씀하신다. 설교에 대한 우리의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근간으로 하여 뿌리내려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설교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을 너무나 자주 잊지 않는가? 설교란 하나님의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자기 백성에게 복을 베푸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선언하도록 특정한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고 그들을 설교자로 부르셨다(구별하여 세우셨다). 물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사람들을 사용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메시지나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말하는 대언자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기 위해 준비하고 연구하는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안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은 은혜의 방편이 된다. 하늘과 땅의 주권자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신다는 것은 큰 복이요 특권이다. 로마서 10장에서 바울은 설교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4,15절).
하나님의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우리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때, 그것은 생명을 준다. 성경의 하나님은 말씀하는 하나님이시며, 설교자는 그분의 대언자다.
하나님의 말씀 선포는 우리에게 그분의 값없는 은혜를 주시는 은혜의 방편이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해 복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89문답은 바로 이 점을 분명히 밝힌다. “하나님의 성령은 말씀을 읽는 것, 특별히 말씀 선포를 효력 있는 방편으로 사용해 죄인을 깨닫게 하고 회개시키며, 거룩함과 위로로 그들을 세워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갈 때,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받으려는 기쁨과 기대를 가져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시편 95편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나아가야 한다.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7,8절).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