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례는 왜 중요한가?
2026년 01월 07일
왜 설교는 은혜의 방편인가?
2026년 01월 07일왜 세례는 은혜의 방편인가?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제자도의 기초”의 여덟 번째 글입니다.
언젠가 한 그리스도인 가정이 고(故) 존 거스너(John Gerstner) 박사를 찾아와 갓난아기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예식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의 어머니가 세례 받을 때 입힐 흰 예복을 마련할 때까지 잠시 미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거스너는 어머니에게 그 예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아기가 죄 없다는 것을 상징하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거스너가 다시 물었다. “아기에게 죄가 없다면, 왜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까?” 이 일화는 세례의 본질에 관해 널리 퍼져 있는 혼란의 단면을 잘 보여 준다.
세례를 단지 종교적이고도 의례적인 절차로만 여기는 이들이 많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외적 행위인 세례에 지나친 효력을 부여해, 그것 자체가 세례 받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은혜를 수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세례는 단순하면서도 복합적인 행위이다. 세례는 주 예수님께서 제자 된 표로 제정하신 것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씻기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단순하다. 반면 그 본질의 엄밀한 의미와 세례의 대상, 효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복잡하다. 세례가 하나님 백성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세례라는 행위의 본질을 살펴보아야 한다.
옛 언약 아래서 대응되는 할례와 마찬가지로, 은혜 언약의 ‘표’와 ‘인’인 세례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가되는 하나님의 의의 약속을 가리킨다(롬 4:11 참고). 세례는 그 너머에 있는, 성령의 중생하게 하심과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하심이라는 약속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표이다. 또한 세례는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약속의 진실함을 확증하시는 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세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표이며,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의 인이다. 바로 이것이 세례를 은혜의 방편이 되게 한다.
세례를 은혜의 방편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먼저 그것이 신적 행위임을 인정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새 언약 안에서 자기 백성에게 이 표와 인을 적용하신다. 많은 이들이, 세례를 무엇보다도 자신이 행한 일, 즉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신앙 고백이라는 행위의 표로 여기는 잘못을 범한다. 그러고는 세례를 ‘내적인 신앙 고백의 외적인 표’라고 부른다.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예수님께 순종하는 제자도의 표식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분명하지만(마 28:18–20; 고전 7:14 참고), 이 언약의 표가 우선적으로 우리가 한 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례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하기로 약속하신 바를 가리키는 표이다. 세례가 어떻게 은혜의 방편으로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려면, 이 사실을 확고하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례는 새 언약 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는 표이다. 개인이 세례의 표를 받을 때, 하나님은 그를 보이는 교회의 울타리 안으로 들이신다. 이로써 그는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권징의 사역 아래 함께 살아가는 예배 공동체의 지체가 된다. 그렇다고 세례를 받는 모든 사람이 이 표와 인이 나타내는 은혜를 소유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이는 표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는 소유하지 못할 수 있다. 마술사 시몬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행 8:9–24 참고). 그런데도 세례는 새 언약에서 세례와 짝을 이루는 성찬과 마찬가지로 빈 표가 아니다. 세례는 참으로 은혜가 속한 자들, 곧 택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푼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8장 6절)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례의 효력은 그것이 집행되는 그 순간에 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규례를 바르게 집행함으로써, 약속된 은혜가 성령에 의하여 제공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뜻하신 계획에 따라 (장년이든 유아든) 그 은혜가 속한 사람들은 그분이 정하신 때에 실제로 그 은혜를 받는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세례의 효력에 관한 이 교리적 진술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밝힌다. 첫째, 세례의 효력은 그것이 집행되는 순간에 매이지 않는다. 성례는 그것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은혜를 수여하지 않는다. 둘째, 세례라는 성례는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 은혜를 수여한다.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영적 중생과 조명하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면, 말씀과 성례는 개인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지 못한다. 셋째, 세례의 효력은 “(장년이든 유아든) 그 은혜가 속한 사람들”에게만 미친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자들은 성례에서 오직 택자에게만 하나님의 은혜가 수여된다고 선언한다.
은혜의 방편으로서 세례는 성령의 주권적인 중생을 통해 택자의 삶에서 유효해진다. 이 중생은 “장년이든 유아든” 개인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택자의 마음에 자유롭고도 값없이 베푸시는 사역을 통해 택자의 삶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아 세례를 받았으나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구원 얻는 믿음과 회개에 이르렀다면, “회개할 때 그 세례가 유효해졌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물론 이것은 회개와 믿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그의 영혼에 적용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로 말미암는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