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를 잃은 슬픔에 임하는 하나님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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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2026년 02월 27일바벨의 성읍과 탑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잘 알려진 성경 이야기 설명하기”의 첫 번째 글입니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 이후, 하나님은 온 땅을 뒤덮은 물 가운데서 ‘그때의 세상’을 다시 세우셨다(벧후 3:5,6 참고).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악했지만(창 6:5; 8:21 참고),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겠다고 작정하시고, 이 뜻을 모든 피조물에게 일반은총의 언약으로 선포하셨다(창 8:21-9:17 참고). 그러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라고 명령하셨다. 태초에 사람에게 주셨던 통치 명령을 다시금 부여하신 것이다(창 9:1-3,7; 1:28 참고).
창세기에서 홍수 이전과 이후의 두 세계를 제시하는 서사는 이름들에 초점을 맞춘다. 5장에서는 아담부터 노아와 그의 세 아들에 이르기까지, 홍수 이전 세대들의 이름을 기록한다. 마찬가지로, 10장 전체에는 홍수 이후 세대인 노아의 세 아들(셈, 함, 야벳)과 그 후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가 10장의 끝부분에서는 셈과 그의 계보로 시선이 모아지며, 11장 10-30절에서는 데라와 그의 아들들, 특히 아브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창세기 12장부터는 아브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창세기 11장 1-9절에서는 홍수 이후 펼쳐지던 노아의 계보에 관한 서사가 끊어지고, 바벨탑 사건이 나온다. 익숙하고도 생생한 이 이야기는 분명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노아에서 아브람으로 이어지는 서사에 끼어든 만큼, 그에 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지 하나였던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여러 개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에 불과한가? 11장 1–9절이 실제로 서사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언어가 나뉘게 된 일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이미 10장 5절과 20절, 31절에도 그 사실이 어느 정도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바벨 이야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통치 명령에 주목해, 그것이 “시날 평지”(창 11:2)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1장 1–9절에는 우리의 주의를 끄는 몇 가지 쟁점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첫째는 흩어짐이다(4,8,9절 참고). 새롭게 주어진 통치 명령은 홍수 이후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해야 한다고 분명히 선포한다(1,7절 참고). 하나님께서 생물과 식물을 사람의 손에 맡기셨을 때(2,3절 참고), 여기에는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일이 함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일을 완수하려면, 책임 있게 경작하고 돌볼 뿐 아니라 기술과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있는 시날 평지와 같은 지역에는(창 11:2; 10:10; 14:1; 단 1:1,2 참고), 사자나 표범,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이 서식했고, 따라서 방어를 위해 성벽과 성읍을 건설해야 했다.
그러므로 성읍을 건설하는 일(4절 참고)은 통치 명령에 완전히 부합하는 듯 보인다. 구운 벽돌과 타르 기반의 모르타르를 결합한 기술은 돌에 필적할 만큼 강도가 뛰어난 건축 자재를 탄생시켰다(3절 참고). 오늘날 우르의 지구라트 같은 유적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술적 발전은 주님께서 인간에게 통치 명령을 주실 때 의도하신 바와 정확히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창세기 11장 4절에서 사람들이 한 말에는 함정이 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시날의 성읍 건설자들은 구운 벽돌과 역청 모르타르라는 최상의 기술을 사용해, 단지 방어와 공동체를 위한 일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온 땅을 채우라는 통치 명령을 거부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것은 단순한 성읍이 아니라, 온 땅에 생육하고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명령을 거스르는 인간의 요새였다. 그들은 흩어져 나아가기보다,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이 인간의 도성에 세워진 탑에 관해서는 잠시 후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창세기 11장 4절에 나타나는 이 성읍의 목적에 주목해 보자. 그것은 바로 그 건설자들의 ‘이름을 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창세기의 초반부는 이름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시날의 성읍과 관련해, 창세기에서 최초로 인간의 도시를 건설한 자가 가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그 도시를 에녹이라 불렀으며, 바로 그 계보에서 살인을 저지른 오만한 라멕이 나왔다(창 4:17–24 참고). 또한 10장 10절에서는 함의 계보에 속한 니므롯(저주받은 가나안의 친족)이 “시날 땅의 바벨”에서 자신의 나라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11장 1–9절의 사건이 전개되는 바로 그곳이다.
구약성경의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창세기에도 언어유희가 가득하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노아는 자신의 장자를 축복하면서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 9:26)라고 말했다. 여기서 ‘셈(shem)’은 ‘이름’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이다. 시날의 성읍에 거주하던 함의 후손들은 ‘셈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보다(창 4:26; 12:8; 13:4 참고), 자기들을 위해 ‘셈’, 곧 이름을 내고자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성읍에 머물러 앉아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해 한데 뭉쳤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 땅을 다스리라는 명령에 맞서려고 했다.
시날 평지의 성읍은 이 유명한 탑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탑은 아마 망루가 아니라 한 면 또는 여러 면에 계단이 있는 지구라트 형태로 설계되었을 것이다. 후대의 이방 종교 자료들에 따르면, 이 탑은 (흔히 생각하듯)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다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점은 창세기 11장 1–9절의 이야기를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든다. 성읍을 건설하는 자들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힘썼고(4절 참고), 신들이 내려오도록 높은 탑을 세웠다. 그런데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계략을 보시고, 정말로 내려오셨다(7절 참고). 그러고는 그들이 ‘이름(셈)’을 내려고 하나로 뭉쳐 세운 이 성읍을 ‘혼잡’을 의미하는 “바벨”(9절)이라고 명명하셨다. 이렇게 그들의 잘못된 연합은 해체되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8절; 9절에서도 이 말씀이 반복된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는 혼잡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님께서 그렇게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그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습 3:9). 바벨 사건 직후, 창세기 10장 21–32절에서는 셈의 계보가 다시 이어져, 11장 10-30절에서 마침내 아브람과 사래에 이른다. 하나님은 아브람 안에서 온 땅에 복을 베풀기로 계획하셨다(창 12:3; 갈 3:8 참고). 그러나 아브람은 “세상의 상속자”(롬 4:13)가 되기 위해 고향인 우르와 하란을 떠나, 장막에 거하는 나그네로 살아야 했다. 아브람과 그의 모든 상속자는 결국 한 성에 정착하게 될 것이다. 그 성은 바벨과 달리,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히 11:10; 8–16,40절 참고)이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실 것이며(계 21:3 참고),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을 것이다(계 22:4 참고). 아브람의 이야기도 이름을 내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님께서 친히 그 일을 이루신다. “내가……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창 12:2). 이 복은 아브람의 자손으로 오신 위대한 분의 이름 안에서 성취된다(마 1:1; 갈 3:16 참고). 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새 이름을 주신다. “너를 헵시바라 하며”(사 62:4; 1–4절; 계 3:12 참고).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