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성읍과 탑
2026년 02월 24일
바벨의 성읍과 탑
2026년 02월 24일

출애굽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잘 알려진 성경 이야기 설명하기”의 두 번째 글입니다.

출애굽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세오경이라는 맥락에 주목해 그 책을 살펴보아야 한다. 출애굽기는 창세기에 기록된 족장들에 관한 서사를 이어 가는데, 창세기에서는 애굽에 거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매우 적었던 반면(창 46:26,27 참고), 모세가 태어날 무렵에는 그들이 매우 번성하게 되었다(출 1:7 참고). 그러면서 애굽 사람들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이주해 온 이스라엘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 사이에 흐르던 우호적인 분위기가 적대감으로 바뀌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강조한다. 애굽의 잔혹한 압제 아래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필요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전능하신 능력과 펴신 팔로 자기 백성을 인도해 내실 수 있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였으나(출 2:12 참고), 그와 같은 인간적인 방식으로는 종살이하는 백성을 결코 해방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이런 구속의 패턴은 신구약의 신학에서 근간을 이룬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고 귀환한 것은 제2의 출애굽으로 간주된다. 또한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모세 및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면서, 자신의 죽으심으로 성취될 ‘떠남(헬라어로 ‘exodos’)’을 언급하셨다(눅 9:31 참고).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속사의 중심에 언약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출애굽이란 단지 이스라엘이 해방되는 사건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백성이요 “내 소유”(출 19:5)로 삼으려 하셨다. 여기서 ‘내 소유’로 번역된 히브리어 ‘세굴라(segullah)’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귀중하게 여기시는 존재를 가리킨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약 관계를 맺으심으로써 이 일을 이루셨다. 이 일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것이었으며(창 15:13,14 참고), 모세가 백성의 지도자로 세워질 때도 다시 한 번 선포되었다(출 6:6–8 참고). 비록 구속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지만, 그 어디서도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실제로 대가를 지불하셨다고 시사하지는 않는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것도 구속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굳게 결속시키는 새로운 언약 관계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입양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했다.

하나님은 바로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게 하려고 ‘표징과 이적’, 곧 재앙들을 내리셨다. 그 재앙들은 표징으로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것들은 이스라엘과 그들을 압제하던 애굽 사람들이 뚜렷이 구별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출 8:23 참고). 또한 그 재앙들은 이적으로서,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인간의 노력으로는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했다. 출애굽 사건에 예표된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주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도 이와 같은 표징과 이적이 나타났다. 오순절에 사도 베드로는 설교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그들 가운데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푸심으로 그분을 확증하셨다’고 사람들에게 상기시켰다(행 2:22 참고).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가운데 일어난 기적들은, 갈보리에서 이루어질 위대한 구속 역사에 주목하도록 이끌었다.

출애굽 사건 자체는 두 가지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 14장 26-31절은 사건을 직설적으로 서술하는 산문 형태로 되어 있다. 그리고 15장에서는 구원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노래가 이어진다. 이 노래는 개인의 고백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화답하면서 자신들에게 베풀어진 구원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출 15:1,2). 이처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양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모습은 이후에 다시 나타나는데, 구약에서는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면서 찬양으로 반응하고(시 126편 참고), 신약 곳곳에서는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신자들이 그 구속의 은혜를 찬양한다(엡 1:3–6 참고).

바로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또는 섬기게) 하려고 그들을 해방시키고자 하셨다(출 7:16; 8:1 참고).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정식으로 언약을 맺으실 때(19장 참고),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열 가지 계명’을 규범으로 주셨다. 이 말씀은 구속받은 백성을 다스리는 구속주의 주권을 선언하면서 시작되며, 이어서 그분께 복종하는 삶의 핵심적인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에 동반된 표징들(“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출 20:18])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임재하신 것을 확증했고, 그래서 백성은 경계를 넘어 너무 가까이 나아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출 19:21–25 참고). 흔히 ‘신현’이라 일컫는 하나님의 현현은 훗날 엘리야가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다시 나타난다(왕상 19:11,12 참고). 또 하나의 예로, 갈보리에서 예수님이 죽으실 때 임한 어둠과 지진을 들 수 있다(마 27:45–54 참고).

‘열 가지 계명’(출 20:1–17 참고)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규범으로 주어진 율법이다. 사건의 흐름 속에서 그 계명들이 주어진 시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들은 애굽에서 탈출하기 전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 계명들에 순종하는 것이 이스라엘을 구속한다는 암시도 전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이 먼저 이루어지고 나서야 언약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규정들이 뒤따른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분의 백성을 구원해 낼 구속자로 사용하실 것이라 생각했다(행 7:25 참고).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능력으로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다. 구속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이루어졌다.

한편 출애굽기 21장이 시작되면서 내용이 전환된다. 열 가지 계명은 ‘~하라/하지 말라’는 형식을 취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근본적인 법을 제시한다. 그분의 백성들은 이 계명들에 순종함으로써, 자신들을 구속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왕권에 충성한다는 것을 나타내야 했다. 그러다가 21장부터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또 다른 용어로 지칭하는데, ‘법규’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쉬파팀(mishpatim)’이다. 이 부분에서는 여러 단락이 ‘만일’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다시 말해, 각 단락은 다양한 상황을 기술하고, 서로 다른 형편에 그 법규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열 가지 계명이 기본적인 규범을 제시한다면, 이어지는 본문은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그 규범을 적용하는 판례법을 제시한다. 이 판례법들은 십계명의 원리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 주는 체계를 이룬다.

신약은 이런 출애굽 개념을 이어받는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그리하여 모두가 정죄 아래 있다(롬 3:19–23 참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육체적인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탄에게 매인 영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이다(갈 3:24 참고).

끝으로, 신약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닌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출애굽 당시 사용된 구약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온다. 사도는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출애굽을 겪는 동안 주어진 모든 가르침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안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되었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앨런 하먼
앨런 하먼
앨런 하먼 (Allan Harman) 박사는 호주 멜버른에 있는 장로교 신학대학의 구약학 연구 교수로, 이전에 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